블로그 인터뷰

오로지 인권에 의해서 살아가는 곳, 감옥 _ 병역거부자 성민의 편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김성민(활동명 들깨)이 앰네스티 한국지부에 보낸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2014년 12월 레터나잇 행사에 참여하신 분들께서 성민을 위해 평화의 꽃을 들고 사진을 찍고, 크리스마스 카드를 써주셨고 이를 엮어 사진책으로 만들어 성민에게 보냈습니다.

사실 사진책이 성민의 손에 닿기까지 약간의 진통이 있었는데요, 다행히 잘 전달이 되었습니다. 사진책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지난 번에 탄원엽서와 함께 보낸 볼펜은 끝내 반입이 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구치소에 반입되지 못하는 물품들은 생각보다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사진책을 전달받은 성민은 ‘정성껏 찍고 만들어주신 사진책을 잘 받았다’며 일일이 답장을 다 쓰려다 출소 때까지 감사인사를 못 드릴까봐 새해 인사도 드릴 겸 편지를 적어 앰네스티 한국지부로 답장을 보냈습니다. 편지지 4장에 빼곡하게 쓴 편지를 옮겨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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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에게 쓴 크리스마스 카드들과 사진으로 만든 책

To. 앰네스티 한국지부

레터나잇은 저도 매번 가서 영상도 찍고 사진도 찍고 했는데 올해엔 제가 못 가고 사진이 걸렸다니 신기하면서도 잘 상상이 안 가더군요. 친구들도 몇몇 편지로 ‘양심수’라고 제 사진이 걸려있으니 기분이 묘하더라고 얘기를 하더군요. 근데 여기선 성탄절이건 새해건 별 색깔 없이 지나가는 덕분에 세월 가는지 모르고 있다가 카드들과 사진책을 받으니까 뭔가 비로소 실감이 나더군요.

사실 양심수라는 게 벼슬도 아니고 상 탄 것도 아닌데 뭔가 부끄럽고 어색한 느낌은 여전합니다. 요새 굴뚝에, 옥상에 거리에서 고생하시는 분들도 많고 정권 덕에 일복이 터진 사무국 국원들도 많이 계실 텐데 뭔가 방구석에 편히 앉아서 대접? 받는 것 같아 죄송하고 무력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네요. 그저 한국이라는 군사화된 국가에서 ‘사나이로 태어나서’ 생긴 묘한 풍경이려니 생각해 봅니다.

ⓒAmnesty International

2014년 12월 12일 레터나잇 @정동 산다미아노 카페ⓒAmnesty International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무튼, 많은 분들의 격려와 걱정 덕에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잘 지낸다는 말을 할 때마다 고민이 조금씩 되기도 해요. 저 자신은 병역거부자로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고 분명 잘 지낸다고 하면 뭔가 걱정에 보답하는 기분이긴 한데요. 한편으로 저는 저 말고도 다른 병역거부자들에겐 지지자이기도 하고 병역거부운동을 하던 활동가이기도 했는데 그런 위치에서 ‘감옥생활이 편하고 즐겁다’, ‘할만하다’라고 말하는 게 뭐랄까 이 문제의 심각성 이라든가 분명 존재하는 수감생활의 괴로움이나, 감옥에 간다는 사실 자체의 무게를 너무 가벼운 것으로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됩니다.

가령, 여기서 만나는, 그러니까 수감생활로만 병역거부자들을 만나는 다른 수감자들은 병역거부의 맥락에나 한국에서 군대를 거부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고민 없이 군대보다 편하고 짧은 실속있는 결정으로만 생각하기도 해서 곤혹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감옥으로서만 병역거부를 생각하는 위험이라고나 할까요? 저보다 훨씬 고생을 할 군인들이나 각박한 사회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하기가 좀 애매한? 기분을 표현하고 싶은데 전달이 쉽진 않네요.

저로서는 감옥은, 병역거부를 선택하기까지의 유예된 고민의 시간들과 출소 이후의 전과자로서의 불안한 미래. (병역기피자로 신상공개도 된다고 하네요. 전 이미 공개가 돼 있지만, 일베나 서북청년단의 테러 대상이 될 수도..) 사이에서 잠시 (좀 길고 답답하지만) 멈춰가는 시간인 것 같아요. 물론 마냥 잘 지내는 건 아닙니다. 바깥에서 ‘감옥’하면 떠오르는 어둡고, 밀폐되고, 폭력적이고, 추운 그런 이미지는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고충은 있습니다. 감정의 파도, 단절의 고립감, 기다림의 시간.. 등등 뭔가 잘 설명할 수 없는 괴로움들이 있어요. 요즘은 그래서 전달할 수 없는 막막함에 말의 한계를 느끼곤 합니다. 출소해서 천천히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요. 올해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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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이 앰네스티 한국지부에 보낸 편지

오로지 인권에 의해서 살아가는 곳, 감옥

아! 감옥은 소위 ‘인권의 사각지대’이지만 역설적으로 오로지 인권에 의해서 살아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제가 입는 옷, 식사, 제공되는 편의, 이곳에서 제가 영위하는 거의 모든 것들은 제 취향이나 개성, 선택이 아닌 ‘권리로서만’제공되는 것이요. TV소음으로 괴로워할 때도 제가 보지 않는 TV소음에서 벗어나는 것이 권리냐 아니면 개인의 특이한 취향이냐가 관건이 됐고 말입니다. 안전과 예산이라는 제약 외엔 오직 권리에 기대서만 하루하루를 살면서, 다시 말해 인권 외엔 거의 아무 여지가 없는 이곳에서 또 인권에 대해 생각해보고 새삼 인권을 위해 일하는 분들께 감사하게 됩니다. 요새 ‘땅콩회항’때문에 갑자기 구치소의 생활이 주목받고 있던데 출소하고 나서도 감옥인권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살아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잡설이 길었네요. 보내주신 사진책과 카드는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큰 힘이 되었습니다. 태어나서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꽃을 받은 건 처음이네요! 일일이 답장을 다 쓰려다 출소 때까지 감사인사를 못 드릴까봐 새해 인사도 드릴 겸 이렇게 편지를 적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해도 건강하게 활동하시길. 올해의 레터나잇엔 언제나처럼 회원으로 참석할게요!

앰네스티 한국지부 화이팅!

2014. 1. 6.

서울구치소에서 성민 드림.

2015년 2월 6일 오후, 성민을 만나러 서울구치소에 다녀왔습니다. 성민이 편지에서 잘 지낸다고 말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잘 지낸다고 했던 것 처럼, 성민을 직접 만나니 좋아 보인다고 말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좋아 보였습니다.

제주해군기지 관련 집회 재판은 상고로 넘어가 재판에 출두할 일은 없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언제 어디로 이감될지 모르기 때문에 매일 불안한 아침을 맞이한다고 합니다.

성민에게 답장을 보내실 곳  경기도 군포시 군포우체국 사서함 20호 3723  김성민 (인터넷으로 서신 보내기)

• [블로그] 구체적인 감옥, 구체적인 인권_병역거부자 성민의 편지

• [르몽드디플로마티크] 감옥에서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총 권하는 사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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