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리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없다_영화 ‘셀마’

매월 첫째주 수요일 저녁, 작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앰네스티 수요극장>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그동안 책이나 강의로 인권을 ‘공부’ 해 오셨다며, 극장에 앉아 영화 속에 숨겨진 인권의 이야기를 직접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지난 9월 2일 수요일 <앰네스티 수요극장>에서는 열 한번째 영화 ‘셀마(Selma, 2014)‘ 가 진행되었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많은 분들 가운데 신하영 후원회원님께서 후기를 보내주셨습니다.

*글의 특성상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없다.

이 영화의 제목이 <마틴 루터 킹>이나 <킹 박사>가 아닌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마틴 루터 킹이 아니고, 흑인 인권 운동의 한 획을 그은 셀마 행진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면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다, 에드먼드 페투스 다리 위에 대치하고 있던 백인 경찰들을 향해 묵묵히 팔짱을 끼고 행진하는 흑인 인권운동가들과 군중들의 행진이 기억에 남을 겁니다.

한편으로 이 영화는 전설적인 흑인 인권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에게 덧입혀져 있던 영웅적 서사들을 사정없이 깨부수어 버립니다. 영화에서 ‘목사님'(pastor)로 불리기 보다는 ‘박사님'(doctor)로 불립니다. 종종 킹은 교단에서 가슴 뜨거워지는 연설을 하지만, 그만큼 실수하고 또 비난 받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인물임이 여실히 드러나는 그의 전략의 실패, 도덕적 추락, 인간적 나약함이 영화 곳곳에서 불편한 진실로 다가옵니다. 그야말로 킹은 이 영화에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그려집니다. 어린 시절 위인전에서 배웠던 더없이 완벽했던 “I have a dream”의 영웅이 아닙니다.

대신 영화는, 그의 곁을 지켰던 그의 동지들과 그보다 앞서 인종 차별주의자들의 혐오 범죄의 희생양이 되었던 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이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래서 영화는 킹의 인생에서 중요한 시점이 아니라, 1965년 3월 7일 셀마 행진을 앞둔 시점에서 행진을 준비하는 모두의 시점에서 시작하고 끝납니다. 셀마 행진의 준비과정에서 이들은 갈등하고, 논쟁하고, 머리를 맞대고, 동지애를 다지고, 준비 과정에서 죽음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유권자 등록을 거부당했던 흑인 여성 애니 리 쿠퍼부터 시작해서 1차 행진 중에 죽음을 맞이한 제임스 포맨을 포함해서 셀마 행진 현장에 있던 많은 “평범하고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영화를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셀마

ⓒ네이버 영화

변화를 만들어내는 진짜 힘은 기꺼이 셀마 다리 위에 섰던 많은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나왔으니까요. 

저는 “그날, 셀마를 행진한 것은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것이 이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난 후, 앰네스티가 지향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특별한 세상”이 떠올랐습니다. 백인 경찰들에게 비폭력 저항의 원칙 아래 무참히 짓밟힌 것은 알라바마 주의 평범한 흑인 민중들이었고, 셀마 행진의 도화선이 폭탄테러의 희생자는 수다떨기를 좋아한 평범한 흑인 소녀들이었습니다. 행진에 앞장섰던 흑인운동가들 역시 서로 질투하고, 두려움을 아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심지어 마틴 루터 킹 조차 여전히 꿈을 꾸는 인권운동가지만 한편으로는 셀마 다리 위에 있던 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미국 판 영화 <셀마>의 포스터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뒤돌아서 있습니다. 사실 그 뒷모습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셀마 다리 위에서 무장한 백인 경찰들을 마주보고 있는 것은 같은 시선을 공유했던, 그 다리 위에 있던 민중들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심지어 자신의 목숨과 기득권을 내놓은 백인들도 있었지요(그리고 영화에서는 양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그들의 희생을 무게 있게 다룹니다). 신화화된, 흠결없는 영웅이 사라진 자리에는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영화가 제게 보여주는 희망은 이 지점에 있었습니다. 영웅적인 인권활동가와 함께 팔짱을 끼고 행진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셀마 행진이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설사 앞장섰던 누군가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힘을 잃을 때도 행진은 계속됩니다. 변화를 만들어내는 진짜 힘은 기꺼이 셀마 다리 위에 섰던 많은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나왔으니까요.

※ 이 글은 국제앰네스티 신하영 후원회원님께서 작성해주신 리뷰입니다. 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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