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국회 ‘인권’ 성적표를 공개한다-19대 총선 인권정책 공약 이행률 점검
신하영,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회원
지난 2016년 2월 말 진행된 국회 무제한 토론, 필리버스터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이하 “20대 총선”)의 서곡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필리버스터 정국”은 국회의원들의 무제한 토론 릴레이라는 포맷 자체에서 큰 화제를 모았고 특히나 테러방지법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했다. 그러나 이것만이 아니다. 19대 국회의원들은 인권관련 다양한 법안을 다뤘다.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테러방지법과 국가보안법부터 북한인권법, 인권교육지원법까지,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의 손에서 인권의 법제화와 인권정책의 향방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었다. 그래서 돌아봤다. 그들은 자신의 의정활동 안에서 어떻게 인권을 녹여냈을까?
빠지면 섭섭한 인권정책?
지난19대 총선 당시에 정당별로 어떤 인권정책을 내세웠을까? 인권정책과 관련한 공약은 명시적으로 ‘인권’을 내세운 경우는 적었으나 다문화 정책, 모성보호 및 아동청소년 정책 등을 통해 인권적 가치가 반영된 정책 추진의 뜻을 밝히는 경우가 많았다.
정당별10대 기본정책을 살펴보면, 선거에 나온14개 정당 중 “인권”의 키워드는 핵심공약에 등장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인권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한 소수자 및 소외계층 관련 정책을 살펴봄으로써 정당별 정책 방향을 알 수 있었다. 19대 총선에서 지역구 의원을 배출한 4개 정당의 10대 기본정책 중 인권영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정당 | 10대 기본정책 | 인권이슈 |
새누리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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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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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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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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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년간 이 약속들이 얼마나 잘 지켜졌는지 보자.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19대 국회의원 공약이행을 평가한 결과를 발표하였다. 19대 국회의원의 의정활동 성적표라 할 수 있다. 지역구 국회의원 239명(전체의원 중 공석, 사고 제외)의 8,481개 공약을 평가한 결과, 공약이행 완료 비율은 51.24%에 그쳤다. 말 그대로 ‘반타작’ 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확인해보니, 19대 국회 회기 동안 접수된 18,843개 의안 중 직접적으로 ‘인권’을 법안 명에 포함한 것은 총 65건이었다.[1] 이중 입법안 그대로 통과된 원안가결은 총 11건으로 16.9%였으며, 6%에 해당하는 4건이 부결되거나 폐기되었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법안은 국가인권위원회 관련 법안으로 총 38건으로 58.5%를 차지했다. 그 밖의 27건 중에는 “북한인권법”을 포함한 북한 인권 및 탈북자 보호 관련 법안이 12건(18.5%)으로 개별 인권 이슈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다음으로 “군 인권개선 및 병영문화혁신 과제의 조속한 이행 촉구 결의안”을 포함한 군 인권 개선을 위한 법안이 9건(13.8%)으로 뒤를 이었다.[2]
정당의 기본정책과 공약사항을 검토해본 결과, 후보자 및 정당의 인권정책과 인권 이슈에 대한 입장은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 있다.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와 노동인권 등으로 범위를 넓혀 본다면, 소수자에 대한 정책은 복지 및 노동 정책으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기는 하다. 인권정책이 주요 정책과 공약에 포함되지 못했다는 사실은 국회의원들의 향후 행보에서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입법 활동을 기대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직까지 인권정책이 경제와 복지정책에 비해, 대표 공약이나 기본정책으로 채택되기는 힘들다. 국회의원이 지역구를 챙겨야 하는 것은 알지만 정당의 기본정책과 직결되는 인권 이슈에 대한 입법 활동에 책임감을 갖고 의정활동에 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인권정책은 ‘지는 정책’인가?
정치권에서 인권정책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는 정당은 진보정당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리고 인권정책에 관심을 갖고 주요 정책기조로 채택하는 것은 사회운동가, 인권변호사 출신의 정치인들에게만 기대할 수 있었다. 인권을 내세우기 보다는 지역구에서 강력한 지역개발 정책을 모색하는 것이 선거를 승리로 이끄는 쉬운 길로 선호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인권정책은 지역구 의원에게 승리를 가져다 줄 수 없는가. 2015년에 선출된 캐나다의 트뤼도 총리의 경우,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선언과 함께 양성 결과의 평등을 보장하는 파격적인 내각 구성으로 화제를 모았다. 선거 캠프 시절부터 총리 당선 이후 행보까지 그가 추진한 여러 정책들이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트뤼도는 백인 남성에, 이성애자이며 동시에 캐나다 전 총리를 아버지로 둔 소위 ‘이기는 정치인’이었다. 그는 페미니스트가 될 필요도 없었고 소수자와 연대할 필요도 없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진 트뤼도 총리가 소수자와 약자를 위한 정책을 공약으로 내걸자 그의 정치 저변이 확대되었고, 당선 후 캐나다 역시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과 “Yes We Can!”을 함께 외치던 이들은 유색인종, 저소득계층, 소수자였다. 그리고 그는 두 번이나 이겼다. 인권은 ‘지는 정책’이 아니다.
“당신의 국회의원에게 투표하세요!”
최근 엄청난 화제를 모았던 예능프로는 묘하게도 총선과 닮은 점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같은 꿈을 가진 101명의 어린 소녀 중 단 11명만을 뽑아 ‘국민 걸그룹’으로 만드는 이 프로에서 소녀들의 꿈을 이루어주는 것은 제작자도, 모자를 눌러쓰고 ‘공기반 소리반’을 외치는 심사위원이 아니다. ‘국민 프로듀서’라고 시종 고개 숙여 표를 간구하게 되는 시청자들이다. 시청자들은 “당신의 소녀에게 투표하세요!”라는 간절한 문구를 접하고, 자신의 취향을 저격한 소녀에게 한 표를 던진다. 선거철에 막을 내린 이 프로그램은 아이러니하게도, 투표의 힘을 보여주면서도 또 투표가 얼마나 왜곡되기 쉬운지를 보여주었다.

지난 2016년 3월 16일 한겨레 그림판에 실린 권범철씨의 만평. 약간 보기에 거북할 수는 있지만 슬프리만치 현실을 잘 보여준다. © 한겨레
선거도 마찬가지다. 앰네스티인의 취향을 저격할 인권 정책을 가진 이들은 찾기가 힘들다. 300명의 19대 국회의원 중 246명의 지역구 의원들의 선거운동과 공약은 대부분 정책선거의 양상보다는 지역선거의 양상을 보였다. 정당의 10대 기본정책이 국가적인 과제를 다루고 있는 것에 비해 지역구 의원들은 소위 ‘5대 공약’, 즉 지역경제, 일자리, 복지, 재개발·재건축, 유치·조성·건립으로 나타나는 지역 현안을 국회의원 활동의 방향으로 제시했다.[3] 직접적인 지역의 발전을 약속하다보니 오히려 장애인 시설, 노숙인 및 학교밖 청소년 보호시설 등의 복지시설에 대한 기피가 드러나는 경우도 있어 오히려 인권의식 증진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공약이 일부 끼어있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보자와 선거유세단은 “Pick me Pick me Pick me up(국회로)”를 외치며 실제로 ‘춤을 추고’ 노래도 하고 허리를 숙여 인사도 한다. 정책으로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당색, 계파에 따라 후보 자리를 얻고 유권자의 표까지 얻어가려는 이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마치 시청자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춤과 노래를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 비주얼이 압도적인 연습생이 걸그룹에 합류하게 된 거대 오디션 프로그램 같다.
20대 총선을 일주일 남짓 남겨둔 시점에서 “앰네스티 인(人)에게 총선이란?” 물음이 나에게 주어진다면, 인권감수성을 가진 국회의원이 뽑히는 것을 꿈꿔본다. 자신이 내세운 인권 정책을
추진하며 적어도 한국의 인권상황을 후퇴시키지 않기를 기대한다.
※ 다음 글에서는 20대 총선 인권공약 분석이 이어집니다. (4월 2째주 업데이트 예정)
[1]2016년 3월 29일 기준. 출처: http://likms.assembly.go.kr/bill/
[2] 19대 국회 접수의안 처리 현황 자료. 출처: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3] 19대 지역구 국회의원 공약이행 평가 결과보고서. 출처: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