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집회 구호 외치면 처벌받는 사회
김희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
지난 2월 24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광화문광장에서 홀로그램 영상을 활용한 ‘유령집회’를 열었다.
현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유령집회’는 하나의 새로운 이벤트였을 테고 우리에게는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좋은 기회였다. 사전에 촬영된 집회 현장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유령집회’에서 당시 경찰은 실질적인 ‘집회 참가자’가 한 명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 나타날지도 모를 ‘불법 행위자’를 잡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누군가 구호를 외치면, 경찰은 그를 처벌하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행사의 주최자였던 필자 역시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누구든지 그 상황에 놓인다면 “내가 왜 다른 사람의 특이 행동까지 책임져야 하나?”라고 반문하겠지만, 지금까지 많은 집회 주최자들은 같은 이유로 형사처벌을 받아 왔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민주노총
지난해 11월 14일, 서울 도심에서 수만 명이 운집한 민중총궐기 집회가 열렸다. 거리로 나온 대부분의 사람에게 주최자가 누구인지, 누가 경찰에 집회신고를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외치는 구호와 정부를 향해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보다 절실했을 것이다. 하지만 검경은 달랐다. 집회가 있은 후 참가자 1500여 명에게 소환장을 발부했으며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에게는 민중총궐기를 포함한 세월호 추모 집회 등에서 불법 행위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징역 8년을 구형했다.
집회의 사전적 의미는 ‘다수의 사람이 특정의 목적을 가지고 특정의 장소에 일시적으로 모이는 것’이다. 집회의 주최자는 순조로운 개최와 안전상의 필요한 조치를 경찰과 협력하기 위해 사전에 신고할 의무를 가진다.
국제인권 기준에서 주최자는 준비하고 협력하는 단위일 뿐이지만, 국내에서는 집회에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을 경우 이에 대한 책임을 주최자에게 부과하고 있다.
주최자에 대한 형사처벌은 집회 개최의 부담으로 작용하며 결국 집회의 자유를 축소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 같은 내용으로 지난 17일 열린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의장국인 한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비판받기에 이르렀다.
7월 4일 오후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선고가 있을 예정이다. 당시 집회 현장에 있지 않았던 그는 다른 참가자들의 불법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었다. 반면 같은 날 벌어진 사고로 인해 죽음의 문턱에 있는 백남기 농민에 대해서는 7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명의 책임자도 언급되지 않았다. 권력의 안위보다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정부의 기본적인 역할이자 임무이다. 시민사회와 언론, 국제사회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책임을 묻고 문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 마련에 고심하는 정부의 태도를 기대한다.
※ 이 글은 경향신문 7월 4일자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