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카 코스타 리바, 유럽 여성인권 상임활동가
합의 없이 이루어진 성관계는 강간이다. 간단한 이야기다.
그러나 법정을 비롯한 우리 사회 전반에는 강간 및 합의에 대한 낭설과 젠더 고정관념이 만연히 퍼져 있다.
실제로 합의 없는 성관계를 강간이라고 법적으로 규정한 나라는 유럽에서만 단 8개국에 불과하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용감한 여성들이 유럽 각지에서 투쟁하고 있다.
아는 것이 힘이다. 강간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강간에 관련된 다섯 가지 진실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1. 강간 가해자의 대부분은 피해자와 아는 사이다.
강간은 대부분 낯선 사람이 저지르는 것이라고 흔히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 강간 사건 중 대다수는 피해자의 지인이 저지른 것이었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친구, 동료, 가족이거나 파트너, 혹은 전 파트너일 수도 있다. 이러한 ‘낯선 사람 설’ 때문에 피해자와 아는 사이인 사람이 성폭행을 저지르면 강간이 아니라는 잘못된 인식이 퍼지고 있다. 지난 2016년, 성폭력에 대한 EU 국민들의 태도를 알아보기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중 11%라는 충격적으로 높은 비율의 사람들이 파트너와의 강제 성관계는 불법이 될 수 없다고 의견을 밝혔다.
2. 강간 피해자는 신체적으로 저항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법적으로도, 실제로도 피해자가 신체적으로 저항하지 않은 것을 합의의 표시라고 추정해서는 안 된다. 어떤 여성이 눈에 띄는 부상을 입지 않았거나, ‘안 된다’고 말하지 않고 저항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때문에 강간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일반적인” 강간 피해자는 가해자에 맞서 저항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피해자가 성폭행을 당하는 상황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는 것은 흔히 나타나는 생리적, 정신적 반응으로 인정되고 있으며, 이 때문에 피해자는 공격에 저항하지 못하고 부동 상태에까지 이르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2017년 스웨덴의 한 임상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강간 생존자 여성 298명 중 70%가 성폭행을 당하며 “무의식적 마비”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3. 허위 강간 신고는 매우 드물다.
허위 강간 신고가 흔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전혀 없다. 오히려 강간은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 또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실제보다 극도로 적게 신고된다. 강간 피해 사실을 신고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게 신고를 하더라도 여성들은 왜 가해자를 자극했는지, 또는 그런 상황을 왜 자초했는지에 대해 반복적으로 질문을 받으며 비난을 받고 수치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생존자들은 신뢰받아야 할 자격이 있으며, 이들의 신고는 철저한 조사를 거쳐야 한다. 이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지원 역시 받을 수 있어야 한다.
4. 여성의 옷차림은 아무 관계가 없다.
여성의 옷차림 때문에 남성이 강간 충동을 일으켰을 것이라는 추측은 남성과 여성의 성별에 관한 고정관념에서 파생된 것이다. 정작 여성들은 어떤 옷을 입고 있더라도 강간이나 폭행의 대상이 됐다. 성관계를 유도하거나 합의를 암시하는 옷차림이란 없다. 여성이 강간을 당했을 당시 입었던 옷은 사건과 전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강간은 절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 강간 피해자의 2차 피해를 일으키는 사회적인 시선을 바꾸려면, 가장 먼저 합의 없는 성관계가 강간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5. 술과 마약은 절대 강간을 정당화할 변명거리가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술이나 마약 때문에 합의가 불가능한 상태의 사람과 성관계를 맺는 것 또한 분명히 강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