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무기거래조약 회의 준비위원회 2차 회의
2011년 2월 28일 아침 뉴욕 유엔 본부의 한 회의장이 유엔 회원국 정부 대표단과 시민사회의 활동가들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유엔 무기거래조약 회의 준비위원회(Preparatory Committee for UN Conference on the Arms Trade Treaty)의 2차 회의가 시작된 것이다.
강력한 무기거래조약을 수호하라
이번 회의의 첫 번째 세션이 시작되던 월요일 아침, 유엔 본부의 1층 로비는 NGO 출입증을 교부 받기 위한 무기통제캠페인의 활동가 50여명으로 북적거렸다. 5대양 6대주 곳곳에서 모인 활동가들은 분쟁지역에서 활동하던 의사부터 소형무기확산에 대항 하는 활동가, 종교계 운동단체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성향과 출신의 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이번 회의에서 논의되는 무기거래조약의 내용이 실효성이 있고 강력한 문안으로 성안되는 것을 담보하기 위해서다. 활동가들은 이번 준비위원회 회의에 참관인 자격으로 참여해 각 정부의 발언 내용을 모니터링하고 정책을 제시하고 각국 대표단과 공식·비공식 면담을 통해 이 조약에 대한 시민사회의 요구사항을 끊임 없이 상기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무기거래조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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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책임한 무기거래를 중단하라! – 100만명이 넘는 이들의 요구에 국제사회가 응답하다.
무기는 인류가 만들어 낸 발명품 중 유일하게 사람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려는 목적만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상품이다. 하지만 이러한 무기의 거래에 대한 규제는 매우 허술하다. 아직까지 국제 무기 거래를 규제하는 국제 공통의 기준은 마련되지 않았고, 이순간에도 무기는 자유롭게 국경을 넘어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삶을 앗아가고 있다. 매년마다 무력분쟁에서 평균 25만명 이상이 사망하고 무력분쟁 이외의 지역에서 총기와 관련된 무장폭력으로 인해 30만명 이상이 생명을 잃어간다.
거래되는 무기의 사용처에 대한 위험성 평가 없이 인권침해의 잠재적 가해자에게 무기를 쥐어주는 행위, 우리는 이것을 “무책임한 무기거래”라고 부른다.
http://amnesty.presscat.kr/fileup/cac_case_web.pdf
지난 2006년 10월은 무기통제 분야에서 활동하던 앰네스티의 활동가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근 3년간의 대대적인 캠페인 끝에 유엔 총회에서 무기거래조약의 제정을 공식적으로 논의하기로 결정하는 결의안(A/Res/61/89)이 채택된 것이다. 이 결의의 채택으로 유엔 총회는 무기거래조약의 체결을 위한 첫 걸음을 뗀 것이다.
2003년 국제앰네스티, 국제소형무기행동네트워크(International Action Network on Small Arms), 옥스팜 등 3개 단체는 무책임한 무기거래를 규제할 수 있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제 조약의 제정을 촉구하며 무기통제캠페인(Control Arms Campaign)을 결성했다. 2003년 무기통제캠페인의 활동가들이 무기거래조약의 제정을 각 국가들에 제안하고 나섰을 때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현실성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세계 곳곳의 활동가들이 조약 제정의 필요성을 피력하며 활동을 이어나간지 3년만인 2006년 12월 6일, 유엔 총회는 153개국의 찬성으로 무기거래조약 제정에 관한 공식적 논의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2009년 3월과 7월, 2주간의 논의를 바탕으로 유엔 회원국들은 2009년 10월에 열린 64차 유엔 총회 제1위원회에서 유엔 무기거래조약 회의를 2012년에 개최하기로 합의하고 모든 회원국이 참여하는 유엔 무기거래조약 회의 준비위원회(이하 준비위원회)의 소집을 결정했다.
무기거래조약의 제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2006년으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유엔 총회는 2012년 조약의 성안과 채택을 목표로 무기거래조약 준비위원회의 2차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회의의 공식 명칭은 유엔 무기거래조약 회의 준비위원회(Preparatory Committee for the UN Conference on the Arms Trade Treaty, 이하 준비위원회) 2차 회의이다. 지난 10월, 64차 유엔 총회는 준비위원회에 효과적인 무기거래조약에 포함되어야 할 요소들을 추리고 2012년 4주간의 일정으로 개최될 예정인 유엔 무기거래조약 회의에 대한 권고안을 유엔 총회에 보고할 수임사항을 부여했다. 이를 위해 준비위원회에는 2010년과 2011년에 걸쳐 총 4주간의 시간이 주어졌다. 2010년 7월 12일부터 2주간 열린 첫 준비위원회의 회의에서 회원국들은 세부목차, 조약의 목적과 원칙, 통제범위, 기준, 이행방안 등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으며 이번 이번 2월 28일부터 열린 준비위원회의 2차 회의에서는 조약의 통제범위, 기준, 국제협력 및 공조 / 피해자 지원에 관한 부분이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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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위원회에는 유엔의 모든 회원국이 참여한다. 한 국가 당 2명의 대표단만 보낸다고 해도 약 400명이 되며 시민사회 활동가들, 유엔 관련 부서 관계자 등을 더하면 회의장에는 약 400 ~ 500명의 사람들이 있는 셈이다. 아무래도 대규모의 회의이다 보니 회의의 진행은 생각보다 지루하다. 의장의 성향에 따라서 운영방식이 조금씩 다를 수는 있겠지만 각 의제에 대한 심층적인 의견 교환보다는 각 국가들이 돌아가면서 각 주제에 대한 자국의 입장을 발표하는 방식이다. 의장은 회의를 주재하고 각국의 입장을 통해 모아지는 총의를 정리해 회의의 결과문서를 작성한다. 따라서 결과문서가 NGO들의 기준에 만족하는 강력한 조약의 틀을 갖추기 위해선 가급적 많은 국가가 그러한 입장을 발표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국에서 온 활동가들은 회의 현장에서 각국의 입장을 모니터링하고 국가 대표단과의 면담을 통해 시민사회의 요구사항이 논의에 반영되도록 한다. 활동가들의 로비 활동이 단지 시민사회의 입장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것에 그치지는 않는다. 논의되는 의제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 제안과 그에 대한 근거자료들을 제시하고 이를 의제화하는 작업도 이루어진다. 오전과 오후 세션 사이에 열리는 부수행사들이 바로 그러한 장이 된다. 무기거래조약에 더욱 강력한 통제기준, 더 포괄적인 통제범위가 필요한 이유를 실증적으로 제시하는 현장 증언과 연구자료 발표도가 이어진다. 한 주 동안에만 약 10여개의 행사가 동시 다발적으로 열렸다.

국제앰네스티는 이번 1주일의 회의 기간 중 2가지 행사를 주관했다. 3월 2일 개최된 "무기거래조약으로 무장폭력 예방하기"라는 제목의 행사에서는 무기거래조약을 통한 무장폭력 예방에 관한 새로운 보고서를 발표했다.
유엔 총회의 결의에 따라 이번 준비위원회의 의사결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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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군축 관련 회의에서 컨센서스의 원칙은 많은 경우 주요 무기 수출국이 프로세스에 제동을 거는 도구로 활용되어 온 전례가 있다.
2010년 8월 발효된 집속탄금지협약의 경우도 최초에는 유엔의 틀에서 논의되다가 컨센서스 방식으로 인해 논의가 진전되지 않자 주도국들이 유엔 밖에서 새로운 프로세스를 통해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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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의에 앞서 준비위원회의 의장은 조약의 통제범위와 준거 기준을 담은 문서를 각국에 회람했다. 의장이 회람한 문서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이번 조약 성안 논의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무엇을”과 “어떻게”라고 볼 수 있는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어떤 무기와 거래의 종류”를 조약 상 통제대상으로 삼을 것이며 “어떤 기준으로 무기거래를 승인하거나 거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얼마나 치밀하게 조약의 문안을 만드느냐에 따라서 조약의 실효성이 가늠될 것이다. 이번에 의장이 회람한 문서는 두 가지 부분에 대한 뼈대를 잡은 초안문서였다. 회의의 첫날부터 이 문서를 기준으로 한 각국의 치열한 의견 제시가 이어졌다. 역시 조약의 기준과 관련한 논의에서 주요 쟁점은 “국제인권법과 국제인도법”을 기준으로 포함시킬지 여부에 관한 것이었다.
각국이 무기거래 승인여부를 결정할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무기 거래의 승인 기준과 관련한 앰네스티의 요구사항은 무기거래조약의 제정을 촉구하며 캠페인을 출범할 시점부터 한결같았다. 국제인도법이나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 행위에 사용될 실질적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는 허가 당국이 무기 이전을 승인하지 말아야 한다는 명확한 기준이다.
일부 국가들은 중국, 러시아, 파키스탄, 이집트 등 일부 국가들은 ‘인권이란 개념이 주관적’이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무기이전 결정을 내리는 것은 위험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었다. 일부 국가들은 유엔 헌장 51조를 인용하면서 그런 논리를 펼쳤는데, 51조는 각국이 외부의 침략에 대해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 인권을 무시하고 ‘죽음의 거래’를 이어가도 좋다는 권리를 이야기 하지 않고 있다. 국제인권법과 국제인도법의 포함 등 강력한 기준 설정에 반대한 일부 국가들 중에는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중 3개국인 미·중·러가 포함되어 있는데, 평균적으로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무기거래량이 전체 무기거래량의 80% 정도를 차지한다.
말말말!
중국: 무기거래조약으로 지속가능한 개발이나 인권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비현실 적이다. 이런 부분을 조약 상에서 다루는 것은 교섭을 복잡하게만 할 뿐이다!
이집트: (인권 논의는) 주관적이며 비현실적 추정에 근거하기 쉽다. 그래서 결국 정치적으로 남용되거나 주관적으로 이행될 수 있다.
러시아: (인권은) 국익, 경제, 정치적 선호 등 따라 의도적으로 주관적으로 해석 될 수 있다.
미국: (“각국이 아래 기준들을 적용해야 한다는 ‘강행 규정 보다는) “각국이 적합하다고 판단하는 선에서 아래 기준들을 고려할 것이다”라고 표현되는 것이 더 좋다.
포괄적인 통제가 빈틈없는 조약을 만든다.
또 다른 논의의 쟁점은 무기거래조약의 통제범위에 대한 것이었다. 의장이 제시한 목록은 통제할 무기의 종류와 통제할 거래의 종류를 나열한 것이었는데, 이는 다소 부족했다. 군용 장비만을 통제대상으로 삼거나 일부 소구경포나 일반 장갑차량이 빠지는 등 목록에 포함된 무기의 종류가 포괄적이지 못했다.
유엔 재래식무기등록 대상 무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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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할 무기의 목록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는 데 있어 여러 정부들이 마치 하나의 주문처럼 되뇌이는 공식이 하나 있다. “7+1″이란 용어인데 유엔 재래식무기등록제도의 7개 카테고리 대상 무기와 1(소형무기와 경무기)을 가리키는 것이다.하지만 재래식무기등록제도는 1993년에 도입된 제도로 현대화된 무기들을 모두 포함하지 못할뿐더러 소형무기조차 등록 대상이 아닌 불완전인 재래식무기 통제 체제다. 일례로 2006 ~ 2009년 소말리아 분쟁에서 분쟁 당사자 양측이 민간인 살해에 빈번하게 사용한 “테크니컬”은 중구경 기관총 내지는 대공포를 탑재한 군용 트럭을 일컫는 것인데, 이 “테크니컬”을 구성하는 그 어떤 장비도 재래식무기등록제도 상 카테고리에 들어가지 않는다. 2004년 수단 다르푸르 지역에서 민간인에 대한 폭격이 이루어진 것은 “군용 폭격기”가 아닌 일반 수송기를 통해서였다.
또 하나의 논란이 되었던 것은 “탄약” 통제와 관련된 부분이었는데, 미국이 현실적 어려움을 근거로 탄약과 폭발물의 포함에 적극적인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하지만 모순적으로 미국은 이미 자국의 수출통제 대상에 “탄약”을 포함하고 있다.
치열한 논의는 수요일 오후까지 계속되었고 의장은 목요일 오전에 새로운 문서를 회람했다. 전체 조약의 목차와 “기준”과 “통제범위” 등에 대한 수정안인 새로운 문서는 통제기준과 범위면에서 판단할 때 아쉽지만 필수적 내용은 포함되어 있는 수준이었다. 이번 준비위 2차 회의는 전반적으로 볼 때 시민사회의 강력한 요구 사항들이 대체로 포함된 의장 문서가 나왔다는 점에서 소기의 성과가 있는 회의였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
마지막 남은 준비위 회의와 2012년 무기거래조약 회의
이제 준비위원회는 7월 마지막 회의를 남겨두고 있다. 7월의 회의는 지금 보다 더 치열한 회의가 될 것이다. 여태까지의 논의를 종합해 향후 조약의 논의에 기초자료가 될 권고문을 채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2012년 4주간 열릴 유엔 무기거래조약 회의가 최종적으로 조약의 문안을 확정하고 이를 채택하는 “최종 교섭회의”의 역할을 할테지만 사전 교섭 역할을 할 준비위에서의 논의가 최종 회의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죽음의 거래’를 이어가고 싶어하는 이들은 더욱 더 회의의 진전을 가로막기 위해 갖은 논리를 다 동원할 것이다. 그에 맞선 우리들의 활동도 더욱 강력해져야 할 것이다.
이번 준비위 회의의 참석을 위해 출국 하기 전날, 나는 한 병역거부자에 의해 쓰여진 병역거부 관련서적의 출판 기념회에 다녀왔다.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 – 병역거부가 말했던 것, 말하지 못했던 것”이란 제목이 붙여진 이 책의 곳곳에서는 수 많은 이들은 왜 자신이 총을 들 수 없었는지, 왜 자신이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감옥에 가야만 했는지를 변론하고 있었다. 병역거부자의 시선에서 쓴 병역거부운동의 역사, 그리고 그를 넘어서 평화의 담론으로서의 ‘병역거부의 언어’를 이야기하던 그 자리에서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변론의 자리에 있어야 하는 사람들은 병역거부자들이 아니라 다수를 차지하며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살인 훈련을 하던 ‘우리’였다고. 병역거부자들을 ‘우리’의 범주에서 몰아내고 타자화했던 ‘우리’.
그리고 곧이어 참석한 유엔의 준비위의 회의장에서 각 국가의 대표단들은 외교적 수사를 동원해 자신들에게 “죽음의 거래”를 이어갈 권리가 있다고 강변하고 있었다.
폭력에 민감해 도무지 총을 들 수 없었다던 병역거부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이리 저리 까다로운 기준들을 피해서 죽음의 무기를 계속해서 판매하려고 외교적 수사를 동원하는 정부의 이야기, 이 둘 사이의 모순 속에서 나는 매우 불편했다.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강력한 무기통제를 요구하면서 변명의 자리에 서야 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고. 이태까지 나몰라라 죽음의 거래를 이어오고 죽음의 상인들, 그리고 그 거래를 통제하기 위해 별다른 노력을 기하지 않았던 국가들, 그들이 매년마다 죽어가는 55만명의 삶에 대해서 변론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