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캐나다의 수도인 오타와 여행을 다녀왔어요. 수도라서 정부 건물이 많더라구요. 그리고 퀴어 프랜들리Queer-friendly한 바에 가서 드랙Drag 공연을 봤어요.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RuPaul’s Drag Race의 엄청난 팬이라 토론토에서는 해당 출연진들이 나오는 공연을 보러 다녀오기도 했는데요, 오타와에서 본 공연도 너무 재밌었답니다.
정말 놀라고 감동받은 시설이 많았어요. 몇 년 전, 제가 대학에서 학생회의 일원으로 맡았던 사업이 배리어프리 사업이라 더욱 눈에 띄었나 봐요.
1. 배리어프리Barrier-free
우선, 학내 강의실 호수마다 점자 표기가 있어요. 건물 안내도도 글자용과 점자용이 나란히 벽에 붙어 있고요.

학내 점자 사진 1

학내 점자 사진 2
복도 가장 잘 보이는 공간에는 화재 시 휠체어 이용자가 대피할 수 있는 방법이 안내되어 있어요. 갑작스럽게 불이 나면 어디에 전화해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등이요. 안내판이 굉장히 크고, 문구도 상당히 큼직하게 적혀 있던 점이 인상 깊어요. 누구에게나 당황스러운 위급 상황에도 눈에 잘 들어오도록 만든 것이구나 싶었거든요.

화재 시 휠체어 이용자 대피 방법 안내판
나는 이 모든 걸 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지?
유튜버 달려라구르님의 채널을 구독하는데요, 휠체어 이용자이신 달려라구르님께서는 교내 재난 훈련 때마다 훈련에 참여할 수 없어 그냥 교실에 앉아 계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영상을 본 뒤로, “그럼 휠체어 이용자와 함께 있는 상황에서 화재가 나면 나는 어떡하지?”, “위급상황에 대해 휠체어 이용자는 왜 교육받지 못하지?”, “나는 이 모든 걸 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지?”라는 생각을 하던 차였어요. 복도에 크게 적인 대피 가이드를 보고 ‘아하!’ 싶었죠. 모든 질문에 대한 아하 포인트가 되었어요.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싶어서요.
캐나다가 한국보다 휠체어 이용자의 수가 많은 게 아니라, 그만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상을 누릴 환경이 조성된 게 아닐까요
또,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교내에 굉장히 많아요. 도시의 식당 등 학교 밖 건물에서도 많이 볼 수 있고요. 휠체어를 이용하는 분들을 하루에 한 두 번 이상은 꼭 마주쳐요. 한국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도 못 뵌 것 같은데 말이예요. 캐나다가 한국보다 휠체어 이용자의 수가 많은 게 아니라, 그만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상을 누릴 환경이 조성된 게 아닐까요?
네, 일단 입구부터 달라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밀거나 당기는 문이 아니라, 버튼을 누르면 열리는 형태가 많아요.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버튼만 누르면 화장실 입구가 열리도록 말이죠. 그리고 화장실 내부가 정말 넓어서 휠체어를 돌리고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하고요.
2. 퀴어 프렌들리Queer friendly
또, 여자 화장실Women’s washroom에는 여성woman과 트랜스젠더, 트랜스섹슈얼, 논바이너리, 젠더퀴어, 젠더 다이버스gender diverse 등으로 자신을 정체화한 사람trans person이 이용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어서 감동받았어요.
교내 헬스장에는 여성 전용 시간이 있어요. 한국에도 여성 전용 헬스장이 있으니 헬스장에 여성 전용 시간이 있다는 것은 크게 놀랍지 않았지만, 남녀 공학인 학교의 헬스장에 여성만을 위한 시간이 있다는 점이 신기했어요. 그렇지만 히잡 등 종교적인 이유로 남성 앞에서 자신의 신체를 드러내는 것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시스템이지 않나 싶더라고요. 생각지도 못했던 점들을 이곳에서 또 배웠답니다.
수영장에는 여성 전용 시간대와 ‘trans people positive’라는 시간대가 매일 별도로 배정되어 있어요. ‘trans people positive’ 시간은 트랜스젠더와 트랜스젠더에 우호적인 사람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에요. 혐오적인 시선이나 언행 등 다양한 이유로 어떤 분들은 자신의 몸을 타인과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에서 드러내는 것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는데요. 수영은 자신의 신체를 많이 드러내는 운동이니, 그런 분들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시간이라고 느껴졌어요.
학교 밖에서도 퀴어 프랜들리한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면, 이곳에서 제가 본 교회의 80% 정도는 건물에 무지개 깃발이 걸려 있었어요. 모두를 환영한다는 식의 문구도 적혀 있고요. 교회 뿐 아니라, 상점이나 음식점 또는 길거리 등에서 프라이드 깃발이나 스티커를 정말 흔하게 볼 수 있어요. 그때마다 ‘이곳은 굉장히 안전한 공간이구나’라고 느끼죠.

킹스턴 여행 사진 (무지개)
큰 것이 아니더라도, 선택지 하나를 더 주는 것뿐인데도,
‘내가 지금 안전한 공간에 있구나’라는 느낌을 주더라고요.
아! 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회원가입을 하거나 학교 등록, 학생증 신청 등의 상황에서 개인정보를 입력해야 할 때가 있잖아요. 그런 경우 대개 성별을 기입하는 란이 있고요. 한국에서는 거의 대부분, 특히 공공기관에서는 ‘여성’과 ‘남성’으로만 분류되는데 이곳 토론토는 대부분 female과 male 외에도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더 있거나 자신이 직접 자신의 젠더를 기입할 수 있어요. 학교와 같은 공공기관에서도 그렇게 선택지 하나를 더 볼 수 있다는 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어요. 큰 것이 아니더라도, 선택지 하나를 더 주는 것뿐인데도, ‘내가 지금 안전한 공간에 있구나’라는 느낌을 주더라고요. 큰 공동체에서도 이런 문화가 자리 잡혀 있어서 여러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분위기가 참 좋았습니다.
한국에서는 마이너리티하게 여겨지는 분야가
이곳에서는 각각 하나의 장르로 인정되고 있는 것 같아요.
서점에서는 책을 구분하는 코너들이 참 인상 깊었어요. 흑인 인권 역사, 흑인을 주인공으로 하거나 흑인 작가가 쓴 소설, LGBTQ, 여성학 등 한국에서는 마이너리티하게 여겨지는 분야가 이곳에서는 각각 하나의 장르로 인정되고 있는 것 같아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퀴어 퍼레이드에 가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2년째 온라인으로만 퀴어 퍼레이드(이하 퀴퍼)에 참여하다 보니, 내년에는 꼭 오프라인으로 참여하고 싶어 이 테마를 떠올렸어요. 대면으로 참석했던 2019년의 퀴퍼를 잊을 수가 없거든요. 이렇게 많은 퀴어 혹은 앨라이가 내 주변에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일년 중 유일한 날이잖아요. 그때 느꼈던 해방감과 자유로움이 너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이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저처럼 퀴퍼에 참여하셨던 분들은 그 날을 추억하면서 앞으로 맞이할 퀴퍼를 상상하고, 아직 참석한 경험이 없으신 분들은 그 설렘을 만끽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안하였습니다.
네, 저는 공교육에 최적화된 사람이었거든요. 공교육 제도 내에서 정해진 규칙과 규율을 잘 따르고, 뭐든지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학생이요. 지금 돌이켜 보면, 부당함에 맞서거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사실은 당연한 게 아니라고 사고할 수 있는 공간이 아예 없던 것 같아요. 언어에서 주는 위계감도 분명히 있고요.
학교라는 구조 안에서 마주하는 부당함이 있을 때,
이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방법을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아
학내에서도 차별적인 일들은 많이 일어나거든요. 그런데 그런 일들이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당연히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분위기와 시스템이 이미 형성되고 정착되어 있어요. 학교라는 구조 안에서 마주하는 부당함이 있을 때나 시스템 내에서 오류가 있을 때, 이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방법을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기도 하고요. ‘나의 인권’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3. 유스 인권
‘학교는 교사와 학생 간의 위계관계가 뚜렷한 집단인데, 해당 관계에서 부당한 일이 발생했을 때 학생인 내가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문제 상황에 처했을 때 학생은 이를 교사에게 말하는 방법이 보편적인데, 그 교사가 해당 문제제기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학생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조치는 무엇일까?’ 뒤늦게 수면 위로 올라온 스쿨 미투 사례들을 보면서 여러 질문이 들더라고요.
네. 권력을 가진, 발화 권력이 있거나 미디어에서 주류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요. 청소년과 정치에 관해서는 “학생은 공부나 해라”나 “기특하다”에요. 물론 후자의 경우 긍정적인 차원에서 하는 칭찬의 말이겠지만, ‘기특하다’라는 말은 자신보다 아랫사람이라고 여기는 표현이잖아요. 저희가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인권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누군가의 아랫사람으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하는 건데 말이예요.
‘청소년들, 주체적으로 사고하라’ ‘학생 주체’
청소년이나 학생에게 실제로 주어지는 권리는 무엇인가?
청소년들에게 ‘주체적으로 사고하라’라고 말하거나, ‘학생 주체’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청소년 또는 학생들에게 실제로 주어지는 권리는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어요. 선거권이 없을 때는 ‘청소년의 본분’, ‘학생의 본분’ 등의 이름으로 사회나 정치 참여에서 배제하다가, 갑자기 선거철이 되면 20대의 낮은 투표율을 문제 삼아요.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것도 단순히 나이를 이유로 전혀 다른 잣대가 주어지는 분위기에 대해서 ‘이게 맞나?’ 싶어요. 허상이 가득한 ‘청소년 주체성’을 강요하다가, 투표권을 행사하는 나이가 되면 갑자기 ‘정치적 주체’로서의 책임감을 요구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고 무책임해요.
네, 100% 이상 충족시켜 주었어요.
인권 이야기를 가볍고 또 무겁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커뮤니티
지금 제 환경에는 차별이나 인권 이야기, 또는 인권 콘텐츠에 대해 재밌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가 없거든요. 캔라클이 저에게는 거의 유일한 인권 커뮤니티였어요. 캔라클은 속하신 분들과 제가 일상에서 느꼈던 불편한 점들, 인권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정기적으로 가볍게 또는 무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라서 정말 좋았어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하고, 위로하고, 의견을 나누는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가능한 커뮤니티
온라인으로만 뵌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각자 자신의 일상과 차별, 인권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하고, 개인이 불편했거나 부당했던 경험을 말하면 서로 위로하고, 어떤 때는 한 주제를 두고 의견도 주고받을 수 있는, 이런 일련의 과정이 모두 가능한 캔라클 덕분에 정말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많이 많았어요.
구성원들과의 대화를 통해 생각이 좀 더 트이는 계기
인권에 관심이 많아도 이런 정보나 지식을 개인이 혼자 받아들이는 데에는 한계가 많잖아요. 그런데 매주 캔라클 구성원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 똑같은 상황을 겪었을 때 생각해 보지 못했던 관점을 깨닫게 되기도 하고, ‘내가 미처 해보지 못한 생각인데 너무 필요한 사고다’라는 인상을 받을 때가 많았거든요. 제 생각이 좀 더 트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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