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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 캠페인] ReSET: 우리는 이 사회의 ‘그 방’들을 불태워버릴 것이다

2022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국제앰네스티는 <WWW: We’re the Watching Witches #마녀들의 시선>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동시대의 지배적인 성 고정관념을 뒤엎는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은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우리는 움츠러들지 않고 ‘마녀’가 되기로 했습니다. 여성을 옥죄어온 시선에 움츠러들지 않고,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와 그가 사는 세상을 노려볼 것입니다. 아래의 글은 이와 관련한 ReSET의 기고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회의 ‘그 방’들을 불태워버릴 것이다.

리셋 ReSET

2020년 11월 13일 서울법원종합청사 서관 앞, 우리는 33개의 상자를 분주히 옮기고 있었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주요 가해자들인 조주빈 일당의 1심 선고가 다가오고 있던 참이었다. 그 날 우리가 재판부에 제출한 ‘엄벌 탄원서’는 총 8만여 장. 그러나 시민들의 엄벌 의지를 몸으로 느끼며 팔이 뻐근할 정도로 상자를 옮기고 나서도 우리는 그 남성들이 마땅한 벌을 받게 될 것이라 확신할 수 없었다. 다양한 유형의 성착취가 무분별하게 이루어지던 ‘그 방’에서 가해자들이 했던 말들이 자꾸 떠올랐다. “걱정마라, 잡히지 않는다. 잡혀도 1년쯤 쉬다 온다고 생각하지, 뭐.”

‘그 방’에서 여성은 사람이 아니었다. 유포된 성착취물 속 여성들은 부위별로 뜯어져 등급이 매겨졌다. 설날 연휴에는 잠든 친척들의 사진이 밤새도록 올라왔다. 지인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보내 줄 테니 ‘능욕’해달라는 놈, 소셜미디어에서 피해자의 동의 없이 불법으로 가져온 사진을 가공·합성해 줄 ‘작가’를 찾는 놈,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알려달라며 사례를 걸고 의뢰하는 놈 등 범죄가 범죄가 아닌것 마냥 예사롭게 이야기가 오고갔다. 이른 오전부터 새벽까지 그 방에서는 수많은 가해자들이 활개를 치며 피해자들을 양산했고, 자고 일어나면 ‘그 방’에서 온 수천 수만 개의 읽지 않은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이제 와서야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사실 ‘그 방’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가해와 피해가 수없이 반복되는 ‘그 방’을 또렷하게 직시하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계속해서 보낸 신고 메일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텔레그램사의 무반응도 참담함을 느끼게 했다. 어쩌다 성착취 단체방 중 하나가 ‘폭파’되는 것을 보면 신고 메일을 보낸 덕분일까 추측하고 힘을 얻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폭파’가 소용없다는 것을 곧바로 알게 되었다. 가해자들은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은 채 그저 ‘폭파’를 대비하여 만들어 둔 다른 방으로 이동해 어제와 다름없는 가해를 계속했기 때문이다.

무용한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감이 들 때쯤, ‘국민동의청원’이라는 새로운 제도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바꿔야 하는 것들에 대해 밤새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 방’에 더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그 방’에 들어가 그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낱낱히 정리했다. 160페이지에 달하는 자료집을 만들어 여성가족위원회에 전달하고, 디지털성범죄 전담부서에 대한 신설과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 제정 등 가장 시급하다 생각되는 사항들을 요구하였다. 밤을 새 글을 쓰던 우리의 머리 속에 있던 것은 단 한 가지, 막아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2월 중순 청원이 성립되었고, 동시에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온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많은 변화를 요청했던 청원은 오로지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한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안건으로 둔갑해 버렸다. 우리의 청원은 ‘n번방 사건을 잘은 모르는’ 당시 법사위 위원들에 의해 성폭력 처벌법 제14조의2 ‘허위영상물 등 반포 등’에 관한 처벌의 단초가 되었고 그마저도 ‘목적범’만을 처벌하는 반쪽짜리에 불과했다. “자기만족을 위해 이런 영상을 갖고 나 혼자 즐기는 것까지 갈 것이냐, 자기는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만들 수도 있거든요”(정점식, 김인겸, 2020년 3월 3일 제376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라는, 가해자들을 선처해주고 피해자들의 권리 침해를 가벼이 여기는 그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주요 가해자들이 점차 검거되면서 그들이 ‘그 방’ 안에서 벌였던 일들은 세간에 한층 소상하게 알려졌다. 동시에 그 참상이 지속될 수 있었던 현실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연대자들이 늘어났다. 2020년 11월 법원 앞에 잔뜩 쌓여 있던 상자들은 ‘그 방’을 만들어낸 이 사회의 구태를 불태우기 위해 연대자들이 모은 땔감이었다. 다행히도 조주빈을 비롯한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알려진 가해자들은 종전의 디지털 성범죄 사건의 피고인들과는 다른 이례적인 중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이 사회가 과연 ‘그 방’을 벗어났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제 ‘그 방’을 모니터링하기를 그만둬도 되는 것일까?

지난 12월 여성신문을 통해 민변 여성인권위 성착취 대응팀의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이후 개정된 성폭력 처벌법이 적용된 대법원 판결 중 약 70%의 사건에 징역형이 내려졌지만 이 중 80% 가량이 집행유예였다는 개탄스러운 내용이었다. 이 사회는 ‘조주빈’이 아닌 알려지지 않은 가해자들에게 여전히 ‘1년쯤 쉬다 오는 것’보다도 못한 처벌을 반복하고 있었다. 신고 메일을 꾸준히 보내도 답 메일 한 통 없다 별안간 단체방을 하나쯤 폭파시키고 무마하던 특정 플랫폼 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사회가 바로 거대한 디지털 성범죄를 방관하는 플랫폼이었던 것이다.

텔레그램이나 디스코드처럼 디지털 성범죄의 온상지로 기능한다고 알려진 폐쇄적인 온라인 공간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클리어넷(다크웹이 아닌 표면웹)에서 가장 큰 커뮤니티 웹사이트에서도 공공연하게 디지털 성범죄가 일어나고 있다. 이 사회의 강간문화는 사람을 ‘즐길 거리’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는 당연한 가치를 사회적 합의의 영역으로 치부해 버리고 거리낌없이 가해자들의 변명과 방패가 되었다 . 디지털 성범죄는 일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다행히도 강간문화의 플랫폼인 이 사회에는 ‘그 방’에 숨어들었던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무수한 연대자들 또한 존재한다. 앞서 또렷하게 눈을 떴던 여성들이 있었고, 우리와 함께 외면하지 않고 이 사회를 바라보는 여성들이 있다. 우리 이후에도 뒤이어 눈을 뜨는 여성들은 끊임없이 나타날 것이다. 탄원서에 적힌 줄글과 청원 버튼을 누르는 손길,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분노하는 댓글도 모두 이 사회의 구태를 불태우기 위한 땔감이다. “디지털 성범죄는 범죄다”, “여성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당연한 상식이 통하지 않던 사회는 우리가 지켜보던 성착취 단체방과 다를 바 없지만, 여성들은 함께 이를 벗어날 문을 찾아냈다. 가해를 직시한 연대자들의 분노는 ‘국산 야동’이 ‘성착취물’이 되기까지, ‘몰카’가 ‘범죄’ 행위가 되기까지 끊임없이 전진해왔다. 우리의 분노는 우리의 삶보다 오래 지속되어 사회를 좀먹어버린 강간문화를 끝내 불태워버릴 것이다.

#리셋 ReSET

리셋 ReSET

참여소감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이후 약 2년, 우리와 같은 시선으로 현실을 자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한 번 목격해버린 현실은 눈을 감는다고 하여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디지털 성범죄가 일상이 되어버린 요즘을 여러분과 함께 똑똑히 지켜보고, 디지털 성범죄가 근절될 그날을 함께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국제앰네스티와 마녀들은 거대한 플랫폼이나 집단 속에 숨은 가해자들 모두에게 책임을 물을 겁니다. 국제앰네스티 뉴스레터를 구독해 또 한 명의 마녀가 되어주세요. 함께 가해자를 노려보고 그들에게 책임을 물으세요.


WWW: We are the Watching Witches
우리가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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