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이 차별받지 않고 인간다운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행동해 온 앰네스티의 정신에 맞게,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1997년부터 인권 보호에 기여한 언론인과 매체를 선정하여 그 공적을 기리고 언론의 책무를 강조하는 언론상을 수여 해 왔다. 올해로 24회를 맞은 국제앰네스티 언론상은, 인권과 표현의 자유 보장, 사형제 폐지, 군대와 비정규직 및 이주노동자의 인권 상황 개선 등을 위해 애써온 언론 매체를 격려하고 여성과 성 소수자,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 침해와 차별을 고발하고 난민을 위한 국제적인 여론 환기 등을 위해 노력해온 언론인을 기념하며 세계인권선언의 날 주간에 시상식을 하였다가, 2021년부터는 3월 28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창립기념일에 즈음하여 시상식을 진행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올해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창립 50주년을 맞는 해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 코로나 19라는 전 세계적인 팬더믹 상황이 2년째 계속되는 가운데 빈곤 계층과 비정규직, 장애인 그리고 여성과 아동, 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 상황은 오히려 악화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런 사회적 약자들의 기본권 침해를 고발하고 이들의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온 많은 언론인이 올해도 많이 응모하여 총 71편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30편의 기사들을 분석해보니, 해가 갈수록 권력 기관에 의한 인권 침해 사례나 고발 기사, 그리고 과거사 문제 등은 눈에 띄게 줄어든 반면, 노동 인권을 비롯해 아동, 청소년 문제와 빈곤층 등 사회적 취약 계층에 대한 불평등과 차별을 다룬 기사가 많이 늘었으며 특히 군대 내 성폭력 은폐를 비롯해 여성 인권 침해를 다룬 젠더 이슈의 기사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였다. 코로나로 인해 더욱 힘들어진 아동/청소년의 식탁과 용돈 문제와 특성화고 청소년들의 노동 인권 그리고 기후 위기로 인한 인권 문제 등도 주목할 만한 기사였다.
지난해에는 초유의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심야 노동을 비롯한 살인적인 과로에 시달리는 택배 노동자, 요양병원에서 갇혀 있다시피 한 노인 및 정신질환자와 산업 재해와 과로사로 희생되는 택배 노동자들의 현실을 고발하는 기사들이 많았다면, 상대적으로 올해엔 여성 인권 등 젠더 문제와 아동 인권, 그리고 사회 불평등에 대한 기사가 많아짐을 알 수 있다.
모든 출품작을 놓고 예심, 본심 그리고 최종심까지 세 차례에 걸쳐 심사가 진행되었으며, 방송과 신문, 학계를 아우른 총 8명의 언론상 심사위원단이 본심과 최종심을 진행했다. 본선에 올라온 30편의 작품을 놓고 ‘시의성과 참신성, 완성도 그리고 사회적 반향’이라는 언론상 심사기준을 고려하고, 심사위원들의 치열한 토론을 거쳐 총 7편의 수상작이 결정되었다. 아울러 한 분의 특별상 수상자를 선정하였다. 예년과 비교해 밀도 있는 기사 내용과 탄탄한 완성도를 갖춘 좋은 기사들이 많아 본심과 최종심의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의 고뇌와 토론이 많았음을 밝힌다.
수상작 (가나다순)
공군 성폭력 사망 은폐 사건
철저한 계급 사회에, 일반인의 시선이 차단된 군 내부에서 벌어진 성추행. 더구나 용감하게 문제를 제기했지만 수사기관까지 진실을 외면하면서 비극을 불렀다. 제보에서 시작된 취재이긴 하지만 관계자들에 대한 끈질긴 설득, 그리고 수많은 진술을 검증하면서 조심스럽게 진상에 접근한 점이 돋보였다. 특히 이 사건을 통해 군 내부의 성추행과 은폐라는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고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벼랑 끝, 홀로 선 그들 – 2021년 청소년 트랜스젠더 보고서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인권 실태를 드러내는 중요한 기획으로 평가된다. 특히 한국의 경우 학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살아가게 되는데 학교 안에서의 차별이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드러냈고, 당사자와 앨라이들의 목소리를 충실하게 담아냈다. 법제도적 한계 역시 세심하게 지적하여 어떤 문제를 다루어야 할지에 대해서도 잘 보여주었으며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용돈 없는 청소년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양극화 속에 경제약자인 빈곤 청소년들은 미래를 꿈꾸기 어렵다. CBS 씨리얼팀 <용돈 없는 청소년>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노동현장에 뛰어들고, 무거운 빚을 짊어진 채 성년을 맞이하고, 돌봄이 필요한 나이에 오히려 병든 가족을 돌봐야 하는 ‘영케어러’ 청소년 당사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영상 콘텐츠로 담아내며 그간 우리 사회가 놓쳤던 청소년 인권문제를 짚어낸다. 불평등 사회를 해소하기 위한 첫 걸음은 앞으로 우리 사회의 핵심이 될 10대 청소년들에게 충분한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일깨운다.
전자정보 압수수색 시대
검찰이 개인정보 데이터 14만건을 서버에 저장하고 있음을 폭로하고, 수사기관의 무차별적 전자정보 압수 수색의 문제점을 다룬 작품이다. 여러 국가에서 범죄를 방지한다는 이름으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본래의 목적 뿐 아니라 정부를 견제하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데에도 쓰일 수 있으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자기정보의 관리 통제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따른다. 계속해서 새롭게 떠오르는 인권의 사안들을 밝혀내고 언론으로서 감시해 줄 것을 기대한다.
젠더 데이터, 빈칸을 채우자
한겨레의 <젠더 데이터, 빈칸을 채우자> 는 성별로 나누지 않고 있는 기존 통계의 미비점을 지적한 연속 기획 기사다. 성별 분리가 되지 않은 채로 방치된 젠더 데이터를 데이터 저널리즘을 통해 제시해 호평을 받았다. 보도 그 자체에 그치지 않고 제도 개선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기사였다.
중간착취의 지옥
메이저 리그의 대표적인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가 선수들을 대행하여 고액연봉을 확보해주고 받는 수수료가 5%다. 조선 시대 악명 높았던 소작제의 소작료는 소출의 50%였다. 그런데 파견업체를 통해 취업하는 노동자의 임금 중 40%~70%를 수수료, 관리비 명목으로 업체가 떼는 믿기지 않는 실상이 2022년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원청은 관리의 편리함과 고용의 유연성 때문에 파견업체에 맡기고 파견업체는 파견법의 허점을 악용하고 정부의 감독은 늘 그렇든 성긴 그물일 뿐이다. 그 틈을 타 파견업체들은 플랫폼 앱 등을 통해 착취구조를 더욱 정교하게 하고 있다. 한국일보의 “중간착취의 지옥도”는 이와 같은 파견노동자들의 임금착취 실태를 1년 넘게 취재하여 구체적이고 실증적으로 보도한 점이 매우 돋보였다. 파견노동의 현실이 단순한 인권탄압, 임금착취가 아니라 임노동 약탈이라는 것을 입증한 취재진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탈시설: 당신 곁에 내가 살 권리
중증 장애인들이 모여 살았으나 운영자에 의해 폐쇄된 시설 ‘향유의 집’을 거쳐간 사람들, 가족들을 직접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구성, 취재한 닷페이스의 <탈시설: 당신 곁에 내가 살 권리>.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애정과 관심을 가진 취재의 시선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잘 보여주었다. 장애인들이 시설에 머물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자립의 의미에 대해 많은 이들이 직접 프로젝트에 참여해 알리고 나누고 체득하게 되는 과정을 택한 것은 수고로웠던 만큼 땀내나는 취재였다. 묻히기 쉬운 이슈를 끈질기게 파고든 의지가 빛났다.
‘마지막 해고 노동자’인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은 한진중공업의 전신 대한조선공사의 유일한 여성 용접사로 일하다 1986년 노동조합 활동으로 해고당했다. 그녀는 그 뒤 부당해고에 맞서 법적 소송과 복직 투쟁을 이어왔으며, 2011년 정리해고의 부당함을 알리려고 309일 동안 크레인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자 당시 시민단체 등이 김 지도위원을 응원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희망버스’를 타고 현장 방문을 하기도 하는 등 사회에 큰 울림을 주었다. 그 뒤 36년을 해고자이자 노동운동가로 현장을 지키다 마침내 36년 만에 복직을 실현해 우리나라 해고노동자 역사의 한 획을 긋고 그간 한국의 노동자 인권 향상을 위해 애쓴 공로를 기려 앰네스티 언론상 특별상을 수여 한다.
아쉽게도 수상작에 오르지 못했지만, 출품작 모두 한국사회의 인권침해와 차별의 실태를 고발하고 이의 극복을 위한 대안을 제시한 수작으로 평가한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인권 향상을 위해 좋은 콘텐츠를 제작해주신 언론인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와 격려의 말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