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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탄원, 고용노동부를 만났습니다

아침부터 비가 억수같이 내렸습니다.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실에서 과천에 있는 고용노동부까지 갈 생각을 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때마침 비가 잦아들었고 12시쯤 사무실을 나섰습니다. 가방에는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하 이주노조)의 합법적 지위를 인정하라는 1025명의 탄원서명과2009년 발간한 ‘일회용 노동자’ 보고서가 들어 있었습니다.

대법원 상고, 이미 4년인데 아직도……

이주노조가 설립이 된 건 2005년 입니다. 한국 나이로 치면 일곱 살이네요. 그러나 아직 이주노조는 합법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2005년 당시 노동부는 이주노조가 등록이주노동자뿐만 아니라 미등록 이주노동자들까지 가입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아 노동조합 설립신고를 반려했습니다. 그 뒤로 지난한 법적 싸움이 진행되었습니다. 2007년 서울고등법원은 미등록이주노동자도 노동자로 인정된다며 이들도 노동조합을 가입, 결성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결론 내리고, 이주노조의 합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습니다. 드디어 이주노동자도 노동조합을 만들고 가입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당시 노동부는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 상고를 했고, 벌써 4년이 흘렀습니다.

국제앰네스티는 2009년 ‘일회용 노동자’ 보고서를 통해 “이주노조의 설립과 가입을 방해하는 장벽을 즉각 제거하고, 모든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선택에 따라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가입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하라”는 권고를 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현실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조합 결성과 가입의 권리를 누리기란 요원해 보입니다.

이에 국제앰네스티는 121주년 노동절을 맞아  고용노동부에 이주노조의 합법적 지위를 인정해 대법원 상고를 취하하고,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을 존중할 것을 탄원하는 캠페인을 전개했습니다.

“1000명이 함께 외쳐요!! 이주노동자들에게 마/땅/히 노동조합을 허하라”

1025명이 힘을 모아주셨습니다

5월 1일 노동절 당일 거리로 나가 종로 보신각 주변 시민 400여 명의 서명을 받았습니다. 애초 1000명을 모으겠다는 목표의 절반에는 못 미쳤지만 한 달여 캠페인을 진행하겠다는 계획이어서 힘을 냈습니다. 한국지부 홈페이지에도 포스터를 걸고 탄원 서명 동참을 요청 드렸습니다. 그리고 SMS를 통해서도 이주노조의 합법적 지위 인정을 바라는 문자서명을 받았습니다. 6월 10일까지 이렇게 모아진 것이 모두 1010명.  탄원이 종료된 후에도 홈페이에서 서명을 해 주신 열 다섯 분까지 모두 1025명이 탄원에 참여 해 주셨습니다.

원래 계획은 6월에 고용노동부에 서명을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임 고용노동부 장관 취임으로 탄원 전달이 늦어졌고, 7월 12일로 약속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탄원 서명은 ‘고용노동부 장관께’로 진행이 되었지만, 실제 면담과 탄원서명 전달은 이주노조 관련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노사관계법제과 과장 및 담당 사무관과의 면담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고용노동부 “이주노동자를 내국인과 같이 대우할 수는 없다”

고용노동부와의 면담을 통해서 가장 크게 느낀점은 정부 정책에 있어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여전히 뿌리가 깊다는 점입니다. 특히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제약하는 것에 대해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고 당연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국제앰네스티는 2009년 ‘일회용 노동자’ 보고서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줄이기 위한 정책을 이행함에 있어서 한국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권리가 완전히 보호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할 것”이라는 권고를 한 바 있습니다.

면담에서 한국지부 박진옥 캠페인사업실장은 “체류지위와 상관없이 모든 이주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가 주어져야” 하며,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을 가입대상으로 한다는 것이 이주노조의 합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데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2007년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을 존중할 것과 대법원 상고를 취하해 줄 것”을 요청 드렸습니다. 이 탄원은 국제적 기준에 따른 것이며, 한국사회도 이제 국제적 인권기준에 맞추어 나가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이주노조의 법적 지위를 인정해 줄 것”을 요청 드렸습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 노사관계법제과장은 이주노조 법적 지위 인정 관련해서 “이미 대법원에 상고한 만큼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특히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문제와 어느 정도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할 것인가 라는 문제는 여전히 논쟁이 되고 있는 부분인 만큼 법원의 판결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면 그에 맞게 정책을 시행할 것”이라는 점을 말했습니다.

이미 “미등록이주노동자도 산재보상과 임금체불 등의 구제를 받고 있고, 이 점은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주노조 인정부분에서는 왜 노동자성 인정이 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노사관계법제과장은 산재보상, 임금체불은 “소급”에 대한 문제이지만, 노동조합은 “앞으로 일어나는 것에 대한 문제”라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며, 미등록이주노동자들에게 산재보상을 해주고, 임금체불 구제를 해 주는 것은 “법 규정에 따른 것이라기 보다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이주노동자들에게 “모든 권리를 다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며 “결사의 자유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담당 과장이 설명했습니다.

특히 미등록이주노동자에 대해서는 내국인 노동자와 동일한 권리를 보장해 줄 수 없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담당 과장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 모든 권리를 다 주면 누가 고용허가제로 들어오려고 하겠나. 고용허가제(EPS)를 안착화 시키기 위해서라도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줄어들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습니다.

결국,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고용허가제를 안착시키기 위해서 미등록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 특히 노조를 설립하고 가입할 수 있는 권리를 불가피하게 제약할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또, 고용노동부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을 인정하는 문제는 사용자로 하여금 의무를 수용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 이주노조를 인정하는 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덧붙여 설명했습니다.

“전 장관 비서실에 있을 때 영어로 된 팩스 많이 받았다”

신임 노동부 장관 취임이후 바쁜일정에도 직접 노동부 담당자를 만나 탄원을 전달하고  고용노동부의 입장을 직접 들을 수 있어 한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면담이 평행선을 달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특히 안타까운 점은 담당 과정도 알고 인정하듯 고용노동부가 국제인권기준과 권고에 대해서 알고 있는데도, 일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은 비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또는 다른 이유로 국제적인 인권기준이 존중하지 않고 있으며, 정책에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 지부는 탄원과 1025명의 탄원과 ‘일회용 노동자’ 보고서를 전달하고 이주노동자 관련 국제앰네스티의 우려사항을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주노동자 인권증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일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면담 도중 반가운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이번 이주노조 인정을 요청하고, 대법원 상고 취하를 요청하는 탄원은 한국지부 뿐만 아니라 국제앰네스티 모든 회원들에게 제안된 캠페인이었습니다. 다행히 많은 지부에서 관심을 보였는지, 담당 과장이 5월 경 전 노동부 장관 비서실에서 일할 당시 영어와 알지 못하는 언어로 된 수 많은 탄원엽서를 받았다는 말을 전해 주었습니다. “영어로 된 것도 있고, 잘 모르는 말도 있던데 다 똑 같은 말을 써 놨더라구요”라는 말과 함께. 이 말을 듣고선 ‘아, 이번 탄원에 많은 다른 나라의 국제앰네스티 회원이 호응했구나’라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인종과 국적을 이유로 한 차별이 당연시 되는 세상, 이 “불편한” 시대의 지배적 상식을 뒤엎는 데는 연대가 최고입니다. 그 연대가 어느 광고에 나오는 말처럼 “역사는 바뀐다”는 말을 가능케 하고, 차별과 배제가 없는 모두가 인권을 함께 누리는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1000명이 함께 외쳐요, 이주노동자에게 마/땅/히 노동조합을 허하라” 캠페인에 참여해 주신 회원 및 시민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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