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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희망버스 후기 – 희망버스, ‘더불어 인간답게 살 권리’를 일깨우다

참가자들의 면면

7월 30일, 3차 희망버스가 서울 시청 앞에서 출발했습니다. 전체 참가자들의 성격은 잘 모르겠지만, 제가 탄 버스에는 정말 평범하고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특별한 점은, 참가자들 중 다수가 한진중공업 사태에 대해 일종의 동질감 및 책임감을 가졌다는 점이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탄 버스에는, 과거 해고를 경험했던 사람, 회사의 구조조정 결정에 맞서 소송 중인 사람, 명예퇴직자 등 현재 한진중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것과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고생하는 누군가를 위해서, 혹은 누군가를 동정해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일할 권리, 해고 당하지 않을 권리를 보편적 인권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한진중 사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우리 사회의 변화가 느껴졌습니다.

<김진숙씨가 계시는 85호 크레인이 보이네요.>

시위장소에 가기까지

오전 10시 30분에 출발한 버스는 저녁 6시쯤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경찰이 영도로 진입하는 모든 통로를 검문하고 있다는 소식이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습니다. 버스는 부산역 근처에서 내려 시내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아직 다른 차량들이 도착하기 전이라 부산 시민들에 섞여 시내 버스를 타고 영도까지 진입하기는 비교적 쉬웠습니다.

그러나 분위기는 충분히 위압적이었습니다. 시내버스는 별다른 검문 없이 영도로 진입했으나, 영도 진입로에서부터 85호 크레인 부근까지는 수많은 경찰 차들로 긴장감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85호 크레인 앞에는 내리지 못하고 청학성당 근처에서 내려서, 85호 크레인 앞 신도브레뉴 아파트까지 이동을 시도했습니다. 청학성당에서 신도브레뉴 앞까지는 걸어서 10분이 채 안 걸리는 거리입니다. 그러나 막아서는 경찰들 때문에 30분 넘게 실랑이를 해야 했습니다. 고작 서른 명 조금 넘는 참가자들을 이렇게 많은 공권력으로 막는 것은 결코 물리력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집회의 자유는 당연한 권리가 아니다 라고 못박는 경고였습니다. 권리를 권리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데는, 법적 제재 없이 위협을 주는 것만으로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경험이 반복된다면, 사람들은 시위에 참여할 때마다 경찰의 저지를 받고 협상을 하여 ‘허락’을 얻어내는 것이 으레 거쳐야 하는 절차처럼 여기게 될 것입니다.

이미 도착해 있던 사람들의 도움으로 전경 저지선을 뚫고 신도브레뉴 옆 좁은 통로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가톨릭 사제, 개신교 목사, 불교 스님들이 모여 각 종파의 종교 행사를 열었습니다. 행사 중간 중간 85호 크레인의 사람에게 환호와 메시지를 보냈을 때, 캄캄한 하늘 저편에서 불빛이 깜박거렸습니다. 저기 사람이 있음을 알렸던 그 불빛이었습니다.

<저 멀리서 밝혀오는 김진숙씨의 불빛>

문화제에서

희망버스 참가자 1만 5천 명이 청학성당 부근에 모여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경찰이 85호 크레인 앞 도로에서의 집회를 불허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김진숙 씨가 보이는 도로는 아니지만, 거기서 조금 떨어진 청학성당 부근에서 문화제가 열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문화제 장소로 가기 위해서 왔던 길로 되돌아가야 했으나, 신도브레뉴 앞 도로는 전경들이 완전히 점거해 버린 상태였습니다. 아파트 뒤 산동네를 통해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그 와중에 산동네를 돌아서 가는 길은 참가자들에게 뜬금 없는 낭만과 바람 같은 휴식을 선사했습니다. 멀리서 굽어 보는 영도 조선소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고, 언덕 위로는 시원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여기가 김진숙 씨가 해고를 당한 뒤 힘겹게 월셋방을 찾아 다녔던 곳”이라고 누군가 말해줬습니다. 김진숙 씨가 지은 <소금꽃나무>에 등장하는 대목이라고 합니다. 조선소의 아픈 사연들을 간직한 장소이겠지만, 그날 우리가 목격한 것은 아직 인간다움을 잃지 않은 동네였습니다. 시위대에게 길목을 막고 있는 경찰을 피해 갈 수 있는 샛길을 가르쳐 주기도 했고 화장실을 알려주기도 했으며, 밤늦게 자기 구역을 침범한 시위대에게 싫은 소리 하는 분도 없었습니다.

이날 집회 장소로 옮겨갈 때마다 눈에 띄었던 건 노란 완장을 찬 사람들이었습니다. 노란 완장이라…누구일까요? ‘인권침해 감시단’이었습니다. 중무장을 한 경찰들을 감당하기에는 사실상 역부족이었으나, 시위대가 이동할 때마다 경찰들에게 “사진 찍지 마십시오!”와 “나중에 소송 걸 겁니다”라고 외치는 그들 덕에 조금은 든든했습니다.

<3차 희망버스 기획단의 모토, 깔깔깔 웃으면서 재미나게 집회를 즐기자!>

문화제가 열리는 장소에 도착하자 많은 깃발과 참가자들이 보였습니다. 전경 저지선을 두 번이나 뚫고 오느라 지쳐있던 우리는, 문화제가 열리는 장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누군가 기타를 꺼냈고, 함께 노래를 부르며 못다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리처럼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무리, 중앙에서 구호와 함성을 선도하는 무리, 문선을 연습하는 대학생들 등 집회는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85호 크레인의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는 곳이라는 사실이 아쉽고 화가 났지만, 소리는 영도 전체를 흔들고 남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집회 문화의 한계를 지적하고 집회의 투쟁적 성격을 회복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습니다만, 시위에 있어 저항의 세기가 성과를 보장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되도록 많은 사람의 보편적 공감을 얻을 때 시위나 운동이 실제적 힘을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희망버스에 진정으로 희망을 실어주신 분들입니다.>

새벽까지 노래와 구호, 공연이 계속 됐습니다. 집회의 하이라이트는 풍등 날리기 행사였습니다. 갓을 씌운 등에 불을 붙여서,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염원을 담아 하늘로 날려 보내는 퍼포먼스였습니다. 누군가 말하길, 풍등이 신기하게도 모두 85호 크레인이 있는 쪽으로 날아갔다고 했습니다.

떠나오며

3차 희망버스는 그 자체로 훌륭한 인권 교육의 장이었습니다. 희망버스를 타고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는 서로의 배경이나 가진 것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배경과는 상관 없이 몸뚱이 하나로 그 자리를 스스럼 없이 즐길 수 있는 능력이 곧 힘이었습니다. 희망버스가 인권 교육의 장인 또 다른 이유는, 사람들이 보여준 약간의 자발적인 기여와 배려 때문입니다. 저는 세면도구와 옷가지, 돗자리나 물 같은 생필품을 하나도 챙겨가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나중에 조금 뻘쭘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커다란 배낭에 뭔가를 바리바리 싸온 사람들을 보며 뭘 저렇게까지 싸왔을까 생각했으나, 그건 자기 자신을 위해서 챙겨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돗자리를 두 개씩 챙겨와서 옆 사람에게 자리를 제공하고, 물에 과즙까지 싸와서 지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이불을 가져와서는 자고 있는 누군가를 덮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살 권리가 인권이라면, 희망버스는 인권의 원리를 사람 사이에서 체험할 수 있게 한 경험이었습니다.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해 달라고, 그 원리를 몸소 보여줌으로써 시위하는 것이 희망버스의 본질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진중사태는 분명 복잡한 문제일 것입니다. 사측의 입장이 있을 테고, 경영의 복잡한 상황이 있을 테지요. 그러나 한 쪽만의 극단적인 희생으로 상황을 타개하는 것 외에 다른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것이 희망버스의 입장일 것입니다. 각자의 입장에 서 있되, 서로에 대한 조금씩의 자발적인 배려를 통해서 다수가 인간다운 삶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공동체의 몫 아닐까 싶습니다.

희망버스의 주제는 우리사회에서 특정 계층의 문제라고 여겨져 왔던 노동 문제라는 점에서 그간의 집회와 조금 다릅니다. 희망버스 집회 중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가 있었습니다. 그곳에 모인사람들 중 실제 해고 경험이 있는 분들과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의 경우 해고의 위협에 대해 상대적으로 더 공감하는 듯했습니다. 희망버스가 이만큼의 관심을 불러모은 것은 이제 사람들이 노동이나 빈곤의 문제를 존엄성이라는 주제, 즉 인권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일 겁니다. 국제앰네스티는 2009년 새로운 통합전략계획(ISP)를 세우며, 노동·여성·빈곤에 관한 사회적 권리를 인권 개념안에 포괄한 바 있습니다. 희망버스는 아직 시작 단계에 있고 한진중 갈등 해결에 얼만큼의 기여를 할지 모를 일이나, 적어도 인권 개념의 외연을 넓힌 공동 경험중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nar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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