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나 같은 지구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고 있지만, 각자가 처한 환경에 따라 배고픔과 질병에 시달리며 언제 퇴거 당할지 모르는 불안한 주거시설에서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통틀어서 ‘빈곤’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알아야 할 더 중요한 문제는 빈곤의 정도가 심한 국가일수록 국민들에 대한 인권침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이 인권을 침해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고, 그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게 이들이 처한 현실이다. 그래서 10월 17일, <세계빈곤퇴치의 날>을 맞아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보기 위해 아이린 칸 국제앰네스티 전 사무총장의 저서 『들리지 않는 진실』에 담긴 빈곤과 인권문제의 연관성, 그리고 인권문제 해결이 어떻게 빈곤 완화에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슬럼(Slum), 강제퇴거(Forced Eviction), 영양실조(Malnutrition), 기아(Starvation)
아이린 칸은 여러 빈곤국을 방문하면서 각국 국민들의 박탈과 불안, 폭력과 차별을 공통적으로 발견했고, 따라서 빈곤을 퇴치하려면 이 네 가지를 한꺼번에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박탈과 불안, 폭력과 차별이 바로 빈곤을 정의하는 조건들이다. 그것들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이 중 한 가지라도 지속된다면 다른 것들을 이겨내는 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빈곤을 퇴치하려면 이 네 가지를 한꺼번에 해결해야 한다. 인권이라는 틀이 빈곤의 네 가지 차원 모두에 걸쳐 필요한 행동을 규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국제법이라는 기반이 그런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p134~135)
<빈곤, 이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살기 위해선…>
또한 학자들이 경제성장을 통해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후에 인권을 향상시키자는 주장을 오랫동안 해왔지만, 현재 경제성장이 민주주의 발전을 이끌었다는 뚜렷한 증거도 없고 오히려 인권은 더욱 쇠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제 문제는 경제성장이 삶의 수준을 끌어올리는가에 대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많은 나라에서 삶의 질이 크게 향상되었다. 하지만 그 반대로 빈곤문제가 그대로 정체되어 있거나 확산되고 있는 경우도 많다. 성장과 빈곤퇴치의 상관관계는 아직까지 명확하지 않지만 그것은 단지 문제의 일부분일 뿐이다. “(p145)
결국 이 부분에서 저자는 경제성장이 삶의 질 향상에는 일부분 기여했지만, 빈곤퇴치와의 상관관계는 미약하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제 목소리’ 내기
아이린 칸은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평등과 불안정의 종식이 소외된 계층에게 ‘제 목소리’를 돌려줄 수 있고 이것은 궁극적으로 인권의 존중을 의미한다고 보고 있다. 또한 인권으로서의 주택, 의료, 일자리 그리고 교육은 단순히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의미를 넘어 가난한 사람들의 존엄을 회복시키는 과정으로 인식되어야 하며, 결코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는 인권의 한 부분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빈곤과 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핵심적인 방법은 당사자들이 스스로 힘을 키워서 권리를 주장하게끔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빈곤은 그들이 힘이 없어서 생긴 일이기 때문이고 따라서 이들이 주체가 되어 권리를 가지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노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을 ‘합법적 권한부여’라고 말한다.
<아프리카 앰네스티 회원들과 아이린 칸>
아이린 칸이 살펴 본 빈곤과 인권문제의 연관은 결국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 당당히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게 하고, 이들이 주체가 되어 자신들이 부당하게 당하고 있는 상황을 개선할 것을 당국에 요구함으로써 빈곤의 심각성이 완화된 상황에서 살아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국제 NGO와 관련 국제기구들의 협력과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이러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 위해선 국제구호NGO, 인권NGO와 함께하는 캠페인에 참여하거나 지지를 보냄으로써 작은 손길을 내미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들리지 않던 진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