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충격은 데이터 시각화로 나타낸 화물차들의 한 달 시간표를 보았을 때 찾아왔다. 2022년 봄, 교통정책을 연구하는 한상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와 데이터 분석·시각화 전문가인 김승범 VWL 소장과 함께 화물차 DTGDigital TachoGraph, 디지털 운행기록장치 데이터를 분석하는 기획을 함께 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제공받은 화물차 5만9296대의 한 달 치2022년 4월 DTG 데이터를 바탕으로 화물차 운전자들의 노동 패턴과 동선, 그와 관련된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 문제를 살펴보자는 취지였다.
명확한 가설을 세워놓고 들어간 기획은 아니었다. 데이터를 갖고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데이터에 나타난 수치를 단순히 더하고 곱하고 나눠서 평균치로 나타내면 많은 이야기들이 뭉개지고 사라질 것 같았다.
우리는 ‘그림’을 살폈다. 그 그림 안에 나타난 노동자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동그라미로 시각화한 화물차 수만 대의 한 달 치 운행 시간표를 한 폴더 가득 받아놓고, 며칠 동안 하나씩 하나씩 그림을 넘겼다. 동그라미 하나가 화물차 노동자의 한 달 삶이었다. 2시간 이상 주행은 노란색, 2시간 초과 연속주행은 빨간색, 15분~8시간 미만 정차(단기 휴식)는 회색, 8시간 이상 연속정차퇴근 혹은 충분한 수면는 검은색으로 나타냈다.
정상적인 노동이라면, 빨간색과 노란색이 전체 동그라미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어느 수준 이하에 머물러야 했다. 정상적인 삶이라면, 무채색 영역이 어느 정도는 주기적으로 두껍게 반복되어야 했다. 동그라미로 나타낸 운전자들의 시간표가 만약 트럭 타이어라고 상상해본다면, 검은색과 회색 부분이 어느 정도는 규칙적이고 충분하게 분포돼 있어야, 타이어가 터지지 않고 안전하게 굴러갈 수 있다. 두껍고 반복적인 빨간색, 미약하고 불규칙한 검은색으로 점철된 시간표들이 너무나 많았다. 한 달에 한두 번 아니, 한 번도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시간표들도 보였다.
시간표들은 또한 운전자들마다 각각 다 너무나 달랐다. 생각해보라. 같은 직군 비슷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한 달 노동 시간표를 그린다면 대부분 비슷한 그림이 나와야 한다. 그게 당연하다. 일의 패턴이 있고 루틴이 있다. 그런데 화물차 기사들의 시간표에는 그런 ‘규칙성’이 아예 부재했다. 그 불규칙성을 보며 혼란에 빠졌다. ‘이들의 삶과 노동, 건강과 안전을 도대체 어떤 말로 요약하고 정리해서 기사로 전달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 의문을 풀기 위해 찾아간 화물차 기사들의 노동 현장에서 두 번째 큰 충격을 받았다. 후에 ‘24시간 화물차 동승 르포’로 독자들에게 전달되었지만 사실 24시간까지 계획하고 들어간 취재가 아니었다. 화물차 기사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하고 어떤 곳에서 건강과 안전의 위협을 받고 또 시민들에게 주기도 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짧은 인터뷰로는 부족했다. 실제 일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노동의 특성을 이해해볼 기회를 얻고 싶었다. 화물차 기사님을 섭외해 낮 11시경 화물차 조수석에 앉을 때만 해도 이 취재가 밤을 꼴딱 새고 다음날 오전까지 이어질 지는 몰랐다. ‘적당히 노동의 ‘한 텀’을 돌고 기사님이 휴식을 취할 때쯤 취재를 끝내야지’라고 계획했다. 가족에게도 좀 늦을 순 있겠지만 저녁쯤 퇴근할 거라고 얘기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기사님은 24시간 내도록 퇴근을 하지 못했다. 한 탕, 두 탕, 세 탕, 네 탕…. 하차와 상차 사이 시간 또한 기사님이 조율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분명 운전은 그가 하고 있는데 그는 그의 운송 노동에서 철저히 ‘객체’로 보였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운전대 위에 발을 올리고 단 1시간 쪽잠을 자는 시간 외 그는 내내 쫓기고 있었다. 화주와 운수업체의 재촉 전화, 도로 위 교통 정체, 임금 얼마가 찍힐지 모를 다음달 월급 통장 등이 그를 쫓는 수많은 불안 요소들 중 하나였다. 그렇게 내달리다 보면 어느새 화물차 기사들은 ‘도로 위 흉기’로 불리는 비난과 공포의 대상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흉기의 칼날은 양방향이어서, 시민의 안전과 동시에 노동자 스스로의 안전과 건강 또한 심각하게 위협한다.
24시간 뒤, 취재팀은 퇴근을 했지만 화물차 기사님은 퇴근하지 못했다. 그는 잠시 차에서 두어시간 눈을 붙인 뒤 다시 24시간의 노동을 이어나갔다. 그게 매일의 삶이고 일 년 내내의 노동이다. 정상이 아닌 줄 알면서도 쫓겨가며 일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업계 바깥의 사람들은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 왜 구태여 그런 공부를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아주 분명하게 답을 할 수 있다. 그들뿐 아니라 우리의 안전, 그리고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니까.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덜 다치고 덜 죽을 가능성을 높이는 길이니까.

“노동 안전과 건강은 노동자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만의 이슈가 아닙니다. 내 가족 내 일상 내 세계의 핵심 의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