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멸종 말고 별종 잔치> 기후위기 시대의 서늘함과 열렬함: 시 창작 워크숍 참여자들의 단체 사진
정안나, 국제앰네스티한국지부 지지자
2018년 비건 지향을 시작한 뒤로 나는 줄곧 단체적 외로움에 목말라 있었다. 연구에 따르면 외로움은 세 가지 차원으로 나뉜다고 한다. 사적 외로움, 관계적 외로움, 그리고 단체적 외로움. 사적 외로움은 애인이나 아주 가까운 친구처럼 깊은 유대를 나눌 사람을 갈망하는 것, 관계적 외로움은 직장에서의 동료애나 보편적인 우정을 원하는 것. 마지막으로 단체적 외로움은 목적의식과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나 커뮤니티를 갈구하는 것이다.
사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주변에는 나의 신념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그런데도 나는 자주 외로웠다. 나는 늘 이해받기보다는 나를 애써 이해시킬 필요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보는 것과 같은 세상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면 종종 좌절을 느꼈다. 그냥 한 번쯤 나와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믿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딘가에 연결되어있다는 느낌을 받기를 원했다.

<멸종 말고 별종 잔치> 기후위기 시대의 서늘함과 열렬함: 시 창작 워크숍 진행하고 있는 하리타 작가
그런 의미에서 <멸종 말고 별종 잔치>는 충격적이게도 내가 새로 태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이 나라고 알고 있는 내가 아니라, ‘기후위기를 고민하는 나’라는 정체성이 전면으로 스위치 되니, 꼭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왜,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지면 페르소나도 달라진다고 하지 않는가. 어학연수를 갔을 때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며 새로운 사람이 되었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가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다들 같은 마음으로 이 자리에 있는 것이라 생각하니 그저 반가웠다. 더군다나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이, 마음이 서로 통한다는 사실이 이렇게 신날 줄이야!

기후위기 시대의 서늘함과 열렬함: 시 창작 워크숍에 참여하고 있는 “별종”들
하리타 작가님의 시 창작 워크샵에서 참가자분들의 자기소개를 듣는데 갑자기 눈물이 고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동족을 만났다는 흥분으로 들떠있었는데, 이번에는 눈물이라니. 나조차도 좀 당황스럽긴 했는데 그냥 이 자리에 함께 모인 사람들과 눈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났다.
말을 하면 울 것 같아서, 내 얘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듣기만 했는데, 나도 말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언어로 나의 이야기를 듣는 듯했다. 그건 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했던 순간들이나, 식당에서 받았던 별나다는 눈초리, 유난이라며 나를 불편해하는 시선들 속에서 나는 별종이 됐지만, 여기서는 별종이 아니었다. 모두가 같은 무늬를 가지고 있다면, 그 무늬는 더이상 별종이 아니다. 동족들 사이에서 나는 쪼그라들거나, 침묵하거나 할 필요 없이, 그냥 나로서 당당하게 존재할 수 있었던 시간.
자기소개를 마친 뒤에는 접지(grounding)를 했다. 맨발로 바닥을 밟고 음악을 들으며 조용히 현재에 집중하는 시간. 자기소개를 듣는 동안 꾹 눌러왔던 눈물을 그때 펑펑 쏟았다. 모두가 눈을 감고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여기에 있어서 다행이다. 이 자리에 오기로 결정하기를 참 잘했다. 비슷한 타인의 존재를 눈으로 확인하니 안심이 되었던 것 같다. 없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많았구나. 혼자가 아니었구나.
시 쓰기를 통해 우리의 감정을 서늘하게 해체하고 열렬하게 조각했다. 어떤 분노는 차갑고 서늘한데, 마음속 뜨거운 불덩어리는 뭉클하고 열렬하다. 마지막에 각자 완성한 시를 함께 낭송하는 경험도 감동적이었다. 각자가 2연과 3연을 쓰지만, 마지막 4연을 통해 다시 하나로 모인다는 것. 지금 우리가 하는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하다 보면, 그 일들이 모여 언젠가 다시 내게 와닿는 것. 마치 처음부터 하나의 시였던 것처럼, 사람들의 입을 통해 흐르는 시어들이. 조각보처럼 이어지던 아름다운 순간.
지향점이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어서 반갑고, 훌륭한 활동가분들 사이에 있어 부끄럽기도 했다. 그러나 이 문제에 진심인 사람들과 이 자리에 함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고 위로가 되었던 시간이었다. 우리와 같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같은 말을 하는 별종들이 점점 더 늘어나길. 그리고 우리가 별종이 아닌 기준이 되길 바란다. 나비의 날갯짓이 거대한 태풍을 만드는 것처럼, 우리의 미약한 움직임이 언젠가 거대한 변화와 희망을 만들어내기를. 되도록 빠르게!

멸종 말고 별종 잔치의 마지막 프로그램 “기후가 웃기니?” 스탠드업 코미디 참여자들의 단체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