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comfort women)’와 ‘성노예(enforced sex slave)’라는 용어 사용에 대한 완전한 합의는 없습니다. 국제법상 가해 국가의 책임을 명확히 밝히려면 ‘일본에 의한 성노예제(sex slavery by Japan)’가 바람직하겠지만 직접적인 표현이 피해 당사자에게 끼칠 정신적인 고통과 감정을 고려해 ‘위안부’가 선호되기도 합니다. (관련기사)
수요시위의 성격을 고려해 이 글에서는 현재 정대협을 비롯한 한국 시민사회에서 가장 널리쓰이고 있는 표현인 ‘위안부’를 차용하였음을 밝혀둡니다.
한낮에도 손발이 꽁꽁 시리던 지난 2월 6일 수요일, 앰네스티 14기 인턴 5명은 제1060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다녀왔습니다. 수요시위는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전 일본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되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이행 등 문제 해결과 함께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요구해왔으며 어느덧 1060번째를 맞이했습니다. 날씨만큼이나 차가운 우리 역사입니다.
이번 수요시위는 특별히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대학생네트워크(이하 앰대)에서 주관했습니다. 그 외에도 예산여고 나라사랑동아리, 성도미니코 선교수녀회, 충주여고, 국민대 언론학회, 마포구 우리동네 청년회, 성가소비녀회, 이화나비, 극단고래에서 소녀상과 김복동 할머니의 곁을 지키기 위해 함께 했습니다.
앰대 회원들은 이번 수요집회를 위해 몇 주 전부터 아이디어와 율동, 무언극, 그림 편지 등을 준비하며 분주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회원들은 정성껏 준비한 이 시간이 일본 정부에는 강한 압력으로, ‘위안부’ 할머니들께는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는 심정으로 사뭇 진지하고 결연한 표정이었습니다.
‘바위처럼 살아가 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열두 시가 지나자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는 ‘바위처럼’ 노래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청년들은 음악에 맞추어 몸짓으로 노래했습니다. 추운 겨울날씨와 대치하는 일본대사관의 냉랭한 풍경이 무색할 만큼, 참가자들의 열기는 뜨거웠습니다.
이번 수요시위의 하이라이트는 전 세계 국제앰네스티 지지자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 연대하는 메시지가 담긴 무언극이었습니다. 앰대 회원들은 극 해설을 통해 일본이 공개적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사죄와 보상을 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했습니다. 또한, 증오와 폭력으로 복수를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증언자로서 펜을 들어 평화와 인권의 메시지를 전하며 새로운 평화의 역사를 만들어나갈 것을 다짐했습니다.

앰네스티 대학생네트워크가 준비한 무언극의 한 장면
이어지는 자유발언 시간에서 여고생 참가자들은 발랄하고 씩씩하게 발언을 해주었습니다. 학생들은 자신보다 어린 열세 살 나이에 겪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끔찍한 악몽, 그리고 명백한 잘못을 외면하는 일본만큼이나 침묵으로 일관하는 한국의 정치인에 대해 너무 화가 난다고 말했습니다.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을 받지 못해 할머니들의 슬픔을 너무 늦게 알게 되어 안타까웠지만, 다른 나라의 전쟁 여성 피해자를 비롯한 모든 상처받은 여성들에게 꾸준한 관심으로 연대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일본대사관을 향해 목청껏 외쳤습니다.
“당신들이 있어야 할 곳은 대사관 사무실 의자가 아니라 바로 여기 소녀상 옆 빈 의자입니다!”
2차 세계 대전 전범국, 두 나라의 엇갈린 역사의식
후손들은 지난 세대의 과오에 대해 올바르게 기억하고 그에 따르는 책임을 다할 의무가 있습니다. 대한민국도 과거 베트남전쟁의 과오에 대하여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해 공식적으로 사과를 표명하기도 했습니다. 독일과 일본의 모습은 어떤가요? 독일인들은 나치의 범죄를 생각하면 부끄러움 속에 몸을 숙입니다. 나치 시대의 범죄를 결코 잊지 않고, 어두운 시기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방지해야 할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치가 자행한 범죄와 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들 그리고 홀로코스트에 영원한 책임을 갖고 자손 대대로 그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역사적 과오를 모른체하고 책임 회피에 여념이 없는 일본 정부의 모습과 대비됩니다.
‘침묵으로 얻은 평화, 너와 나의 무관심을 노래해 줘’
홍대에서 활동하는 여성 뮤지션들이 중심이 되어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음악앨범 ‘이야기 해주세요’에 담긴 가사입니다. 할머니들은 옛날 옛날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들려주듯, 실제로 있었던 그날의 악몽을 들려주십니다. 그 악몽에서 금방 깨어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할머니의 탄식은 분노와 함께 내 자신을 부끄럽게 합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이야기로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할머니들의 아픔조차 너무나 익숙해 져버렸는지 모릅니다. 몸은 그 자리에 있지만 마음은 미처 함께하지 않는 것, 평화를 향한 간절함 없이 영혼 없는 외침만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해결되지 않은 할머니의 고통은 곧 우리의 고통이며 숙제입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여성들은 폭력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작은 관심과 행동이 그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여성들이 끔찍한 악몽에서 해방되어 나비처럼 자유롭게 훨훨 날아오를 수 있도록 당신의 힘을 보태주세요!
글) 문지숙, 윤경빈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14기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