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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원하는건 인권 대통령

* 이 글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회원소식지 2013년 001호에 실린 글으로서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 글은 박근혜 정부 출범 전인 2013년 1월에 작성되었습니다. ⓒ Amnesty International

대통령중심제인 한국에서 대통령의 권한과 영향력은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막강하다. 인권도 예외는 아니다. 이명박 정권 초기, 대통령이 ‘법질서 확립’을 강조하자 경찰은 쌍용차 파업과 용산 철거민 농성을 불법으로 규정, 강제진압했고 그 후유증은 모두가 아는 바다. 첫 내정 당시부터 낙하산 인사 논란을 낳았던 국가인권위원회는 독립성을 잃었고 그 결과 청소년 인권 에세이 공모전에서 대상에 선정된 고등학생이 ”위원장이 인권을 끝도 없이 추락시키고 있는 인권위는 상을 줄 자격이 없다”며 수상을 거부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과반이 넘는 의석을 차지한 집권여당 후보로 출마해 51.6%의 과반 득표율로 당선된 대통령 박근혜의 영향력 역시 ‘제왕’에 가까울 것이다. 인권상황은 대통령이 어떤 의지를 갖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대통령 선거를 이틀 앞두고 열렸던 박래군 인권재단사람 상임이사와 나눈 대담을 바탕으로, 지난 대선에서 드러난 인권의 위상과 박근혜 당선자를 통해 본 향후 한국사회 인권전망을 분석해 본다.

[글: 박서연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캠페인팀]

 

대통령선거에서 인권이 중요한 이유

미국의 정신의학자 제임스 길리건은 자살·살인 발생률의 증감이 집권정당과 높은 상관성을 갖는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제임스 길리건의 저서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07년까지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미국에서 일어난 폭력치사(살인, 자살) 사건의 발생률 추이가 공화당 집권기에는 전염병 수준(인구 10만 명당 20명 이상)으로 증가했고, 민주당 집권시에는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공화당 정부가 길어질수록 폭력사망률 순누적 증가분이 커지고, 민주당은 그 반대이다. 정치와 자살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 길리건은 폭력치사의 원인을 빈곤으로 인한 자기 존중감 박탈에서 찾고 있다. 사회적 안전망과 복지예산 대신 경찰력과 군비를 증강하고, 경쟁을 부추기며, 낙오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 없이 낙인찍고 배제한다. 경범죄에는 칼같은 법치의 원칙을 들이대면서 기업가들의 탈세·횡령에는 ‘프렌들리’한 대응이다. 국가운영을 주도하는 정부에서 국민이 느끼는 박탈감은 폭력치사 사건의 발생환경을 조성한다는 것이 길리건의 주장이다.

한국의 경우,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1년 국내 강력범죄 발생비율은 지난 5년(2006~2010) 평균 대비 12.4% 증가했다. 자살사건은 하루 평균 42.6명, 1년에는 1만 5,566명으로 OECD 평균 3배이다. 한국의 폭력치사 사건이 위기에 달한 것은 굳이 수치로 증명하지 않아도 체감할 정도이다. 한국은 1995년만 해도 하루평균 10명대에 이르던 자살률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격하게 증가해 2003년 22.6명, 2011년 42.6명에 다달았다.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한 사회양극화의 골이 깊어질수록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인권재단사람 박래군 상임이사는 “억울한 죽음들 속에는 용산에서 6명의 죽음이 있고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 22명의 죽음도 있다. 또 그 속에는 해마다 150명 넘게 자살하는 초·중·고등학생들도, 산업현장에서 죽어가는 2500명의 노동자들도 있다”며 우리사회를 ‘살벌한 전쟁터’에 비유했다. 그는 이어 “사회권이라고 하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와 자유권이라고 하는 시민·정치적 권리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사회권이 무너진 사회에서 자유권의 가장 기본이 되는 생명권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빈곤층이 800만 명이라고 한다. 주택 보급률이 107%를 웃도는데 사람들은 살 집이 없다고 난리다. 임대주택 사업자 1명이 2,123채의 임대주택을 소유하고 있다. 10대 학생이 29채, 1살짜리 아이가 5채의 집을 가진 나라에서 서울시민 2만 명이 고시원, 쪽방, 비닐하우스 등 취약한 주거환경에서 살고 있는 것이 오늘 한국의 현실이다. 제대로된 현상인가? 자살률이 이렇게 증가한다는 것은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은 이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투박한 결론을 내리자면, 18대 대선의 결과가 어느 누군가의 생명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18대 대선이 끝난 직후, 한진중공업 노동자에 이어 현대중공업 노동자, 강정마을 인권활동가, 한국외대 노조 지부장과 그의 가족까지 모두 5명이 자살했다. 정부 5년 동안 비정규직, 주거권 보장을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그들이 죽음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잘살자’는 구호에서 ‘함께 살자’가 나오기까지

17대 대통령선거에서는 ‘잘살자’가 화두였다. 경제대통령의 ‘불도저’식 방식으로 묵살된 목소리는 삶과 죽음의 아슬아슬한 경계까지 내몰렸다.

2008년 남녀노소 좌우이데올로기를 막론하고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촛불을 들고 나선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인 과태료폭탄이 떨어졌다. 박래군은 “경찰의 폭력진압을 기억하지만, 그보다 끔찍한 것은 평화적인 집회 참가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집요하게 추적한 것이다. 수시로 전화하고 직장에 찾아오고 압수수색하고 소환한다. 이런 식의 무차별적 처벌은 국가폭력에 대한 공포를 불러오고 2008년 엄청난 사람들이 모였음에도 시민운동이 발전되지 못하고 흩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2009년 용산에서 주거권 투쟁을 하는 철거민에 대한 유례없는 강제진압은 하룻밤 만에 6명의 생명을 빼앗아 갔다. 박래군은 “용산참사가 일어났던 남일당 건물은 다 허물고 공터로 만들어놨는데 다음 공사가 진척이 안 되고 있다. 수십조의 기대이익으로 삼성물산, 대림, 포스코가 투자하고 계산이 안 나오자 포기한 것이다. 이럴 거 같으면 왜 그렇게 급하게 진압을 해서 사람을 죽게 만들었나”고 성토했다.

2009년 1월 20일 서울 용산4철거지구 남일당 빌딩. 참사 뒤 현재는 주차장으로 변해있다. ⓒsuntag

2009년 정리해고에 맞선 쌍용차 노동자는 “함께 살자”는 구호로 농성을 시작했고, 77일만에 무력으로 해산됐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는 노동자들의 죽음은 ‘함께’를 무시한 것에 대해 한국사회 전체가 치르고 있는 혹독한 대가이다.

방송 3사(MBC, KBS, YTN) 언론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파업에 나섰고 MBC 기자들의 170일이라는 유례 없는 최장기 파업은 닫혀진 대화채널을 상징한다.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언론계 문제

취임 당시부터 위원장의 자질문제에 대해 내외부 가릴 것 없이 전방위적 비판을 받았던 국가인권위원회는 1인시위직원 징계 등 자기분열적인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국내인권 이슈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며 자율성·독립성에 강한 의심을 받으며 국제사회의 걱정거리로 그 위상이 추락했다.

신뢰성을 잃은 국가인권위원회

5년 후 대선에서는 아무도 ‘잘살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이제는 살기 위한 근본적인 논의가 시작되었다. 다행스럽게도 18대 대선에는 부자 만들어 주겠다는 공약 대신 ‘사람’이 등장했다. 표(標)와는 관계 없는 줄만 알았던 인권이 유력 대선후보의 구체적인 10대 공약으로도 등장하였다. 5년 전처럼 국민들을 모두 잘살게 해주겠다는 허황된 약속은 사라지고 사람들이 겪는 구체적인 현실에 주목하기 시작한 점은 반가운 일이다. 18대 대선에 대해 박래군은 “17대 대선과 완전히 화두가 바뀌었다. 당시 박근혜 후보조차도 신자유주의 정책의 한계를 인식하고 경제민주화와 분배를 이야기한다”며 쟁점 자체가 바뀐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세계인권의 날에 10대 인권정책을 발표했던 문재인 전 후보

최초의 과반 득표율, 최초의 여성 대통령 당선

18대 선거의 투표율은 75.8%로, 2000년 이후 치른 선거에서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는 어느 때보다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유권자들의 절실한 기대를 담고 있다. 박근혜 당선자 역시 ‘최고의 가치는 국민의 삶’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의 인권전망이 낙관적이지는 않다. 400페이지에 달하는 박근혜 후보의 정책공약집에서 인권과 관련된 공약은 ‘북한인권법 제정’ 한 가지로, 분석이 무색할 정도로 빈약하다. ‘국민행복 10대 공약’이 곧 인권이라고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야당 후보처럼 인권을 전면에 내세운 공약을 내세우지 못했다는 것은 박근혜 당선자가 가진 인권에 대한 인식의 한계라고 볼 수 있다.

‘100% 대한민국, 함께 사는 대한민국’을 내걸었던 박근혜 당선자

지금까지의 행보를 봤을 때는 오히려 인권의식수준이 의심받고 있으며 우려되는 상황이다. 대선을 앞두고 열린 <18대 대선후보 인권공약 검증토론회>(주최: 한겨레신문사/주관: 인권정책연구소, 한국인권재단,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에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만 “야권 단일화 전에는 토론회 참석이 힘들다”며 불참했다. 구체적인 공약에 대해서도 사형제도는 “성폭행범에 대해 사형까지 포함해 아주 강력한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했으며 국가보안법은 “어려움 속에서도 지켜낸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매년 약 80명의 ‘아들’이 총 잡는 것을 거부하며 감옥을 택해야 하는 현실에서 ‘어머니’를 자처한 당선자는 대체복무제에 대한 계획이 없다. 인권활동가들은 지난 7월 박근혜 후보 캠프를 점거하며 국가인권위원회 정상화와 현병철 연임에 대한 입장을 밝혀줄 것을 요구하며 26시간 동안 점거농성했지만 끝내 대답을 듣지 못했다.

60일이 넘는 시간 동안 철탑에 올라간 쌍용차 노동자들과 농성 중인 강정마을 주민들, 용산 유가족들, 해직 기자들이 새 정부에 거는 기대는 어느 때보다도 절박하다. 박근혜 당선자가 대선 직후 잇따른 노동자와 인권활동가의 죽음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 송전탑 농성 현장

시민사회, 저항력을 키워라

박래군은 “인권운동은 여지껏 활동가 중심이었다. 현장에서 열심히 부딪히고 싸우지만 인권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라며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인권운동을 대중운동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시민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박래군은 “드라마 <추적자>에 ’정치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대통령이 누가된다 하더라도 만족할 수 없고 절망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인권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한발 한발을 같이 걸어가자고 당부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인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정치권에서도 인권을 표로 연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들을 등장할 것이다.

한편 인권이 ‘역주행’했다는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20개에 가까운 기초·광역자치단체에서 인권조례가 제정되었다. 회오리 치는 정치체제 속에서도 풀뿌리 인권운동의 싹이 튼 것이다. 고은태는 “인권을 정치체제의 핵심의제로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바닥의 힘을 다지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으며 박래군은 “우리는 흔히 복지국가로 북유럽 모델을 부러워하고 있지만 북유럽에서 사회복지가 가능한 힘은 70%에 달하는 노동조합 조직률에서 나온다. 한편 우리나라의 노조조직률은 10%를 밑돈다. 우리나라의 진보정당이 강화되기 위해서는 활동가 중심의 인권운동에서 대중적 운동이 되도록 만들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시민사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응답하라,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당선자는 인권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 20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인권전문가 포럼에서는 2012년 현재 한국사회가 당면한 과제를 바탕으로 18대 정부에 대해 인권을 위한 4대 목표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30개 인권과제를 도출했다. 30개 과제 중 박근혜 당선자가 가진 공약은 북한 인권 개선에 대한 정책이 유일하다.

차기정부가 특히 주목해야할 것은 첫 번째 목표, 보편적 인권의 체계적 도입과 실행이다. 선진국이라 자부하는 한국은 끊임없이 지표를 통해 세계적인 위상을 확인 받고 싶어하지만, 인권에 있어서는 전 세계가 합의한 보편적 기준인 국제조약조차 가입하지 않았거나 비준한 조약도 유보 혹은 철회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189개 가운데 겨우 28개만 비준한 것만 봐도 한국의 후진적인 노동권 수준을 방증한다. 비준했지만 유보 조항을 예외적으로 두며 사실상 실효성이 없는 조약도 있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퍼스트레이디 시절 학습한 국정운영 경험의 안목을 통해 인권의 ‘글로벌 스탠다드’에 대한 적극적인 이행과 국내법 정비가 요구된다.

인권국가를 위한 제18대 대선 인권정책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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