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김조광수 감독의 결혼발표가 있었다. 영화 제작사 [청년필름]의 대표이자 ‘올드 미스 다이어리’, ‘조선명탐정’, ‘두결한장’ 등 여러 영화의 제작자이기도 한 김조광수 감독 ‘그런데 그의 결혼이 왜 인기 검색어에 올랐지?’ 라며 의문을 갖는 사람들을 위해 부연설명을 하자면 그에겐 열 아홉살 연하의 동성애인이 있고, 오랜 연애와 기다림 끝에 양가의 허락을 얻어 이번 가을에 결혼식을 올린다. 한국 사회에서 동성결혼이 법과 제도적으로 인정 받지 못하는 현실이 못내 아쉽지만 그를 향해 ‘축하한다’는 내용으로 많은 글들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성 소수자들의 존재를 무시하며 지내온 과거에 비해 세상이 참 많이 변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은 이성애자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성 소수자들에겐 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에겐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사랑하는 이들에게 사랑한다고 표현 하는 것 조차 조심해야 하니깐. 김조광수 감독이 결혼 발표를 하게 되기까지 지나온 삶은 결코 쉽지 만은 않았을 것이다. 오랜 세월을 건너 마침내 남은 삶을 함께 할 사람을 찾았고, 많은 이들이 모인 자리에서 함께 하기로 약속하기까지 참 많은 고민들을 하였을 것이다.
지인들과 이야기 하다 보면 가끔 “내 주위에는 성 소수자가 없다”고 단정짓는 사람이 있다. 과연 그러할까? 단지 알아채지 못했을 뿐 분명 우리 주변에도 우리와는 다른 성적 지향성과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삶을 꿈 꾸듯, 성 소수자들도 마찬가지다 단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살아가면서 감내해야 할 장애물들이 더 많을 것이란 것은 이미 이들도 알고 있다.
지난 겨울 힐링 캠프에 홍석천씨가 출연하였다. “정체성으로 고민하다 자살하는 동성애자들이 많이 있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이미 내 주변에도 세상을 등진 이들이 많다”며 눈시울이 붉어지는 그의 모습에 출연진 모두는 일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우리에게 그들의 사랑과 삶을 판단할 권리가 있을까? 자신이 믿고 있는 교리와 반대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저주받은 삶이라 말할 권리가 있을까?
2013년 4월의 마지막 토요일 밤 덕수궁 대한문 앞은 열아홉이라는 어린나이에 세상을 떠난 육우당을 추모하는 열기로 가득했다. 좋아하는 여섯가지 물건을 친구로 여기며 육우당이라는 호를 만들어 사용했다. 그가 아끼던 여섯 친구에는 묵주가 들어있었다. 그렇다 육우당은 천주교 신자였다. 천주교인이라면 자살이 큰 죄악 중에 하나라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왜 자살을 선택했을까? 어떤 일이 그를 죽음으로 이끌었을까?
빨.주.노.초.파.보 동성애를 상징하는 여섯 빛깔의 아름다운 무지개 깃발 아래로 사람들의 옷깃마다 작은 무지개가 달려있었다. 추모제에 함께 했던 이들은 나이와 성별, 소속과 옷차림은 모두 달랐지만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는 마음만은 하나였다. 이 자리에 함께 앉아 있기까지 그리고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는 잘 알지 못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이야기도, 나와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는 건 오로지 머리로만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정확한 계기가 언제였을까,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순간’ 임에는 틀림없다. 그 순간 ‘그들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가 사라졌다. 짝사랑에 아파하고, 사랑하는 이에게 받은 문자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이들을 보며 그 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많은 편견들이 오해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성 소수자 인권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후로 운동의 역사와 배경을 알아가는 과정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관련된 책이나 홈페이지를 볼 때마다 혹시 괜한 오해를 받지 않을까 하며 여러 곳의 눈치를 살펴야 했고, 집회에서 나누어주는 작은 책자들도 염려가 되어 집으로 가져 올 수 없었다. 나조차도 이런데 현실에서 자신의 성향을 숨긴 체로 살아가는 그들의 삶은 얼마나 불편할까? 주변 사람에게 아웃팅을 당하거나 실수로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는 것을 염려해야 하는 두려움에 늘 긴장하며, 이성애자 중심적인 사회에서 배려 받지 못하는 많은 상황들을 마주쳐야 하는 일상에서 존재하는 불편함과 당당히 인정받고 싶은 열망들까지, 이 모든 감정의 홍수를 겪어야 하는 것이 우리 주변의 성적 소수자들이 경험하는 일상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올라오는 국제뉴스 가운데 한 두 개는 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와 관련되어있다. 올해 초 러시아는 성소수자 차별을 합법화 하는 법안을 발의해 이들의 인권을 침해하였고, 지구 반대편 우루과이는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두 번째로 동성결혼 합법인 나라가 되었다. 대서양 건너 프랑스는 올랑드 대통령의 공약대로 동성결혼 합법화가 의회승인을 얻었고 몇 주전 미국은 동성결혼 법이 통과된 로드아일랜드 주를 포함해 이젠 총 10개의 주에서 동성결혼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렇듯 세계 여러 국가들이 LGBT 권리보호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보이는 것에 반해 몇몇 이슬람 국가와 대한민국은 시대에 역행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왼쪽:독일 나치정권 시대에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 가슴엔 역삼각형 표식이 달려있다. 오른쪽: 스톤월 항쟁이 일어난 Stone Wall Inn ⓒ동성애자 인권연대 웹진 랑
물론 앞서 이야기한 나라에서 성 소수자들이 권리를 찾아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눈에 띄는 성 소수자 탄압은 2차 세계대전 나치 치하에서 시작되었다. 유대인들의 가슴에 노란색 별을 달았던 것처럼 동성애자들의 가슴에는 분홍색 역삼각형이 달렸고,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사람들이 가스실에서 죽어갔다. 전쟁 이후로도 성 소수자들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크고 작은 운동이 지속되었다. 미국 뉴욕의 스톤월은 게이들의 출입이 허용된 바였다. 술집이었지만 주류 판매허가증이 없었기에 이를 눈감아 주는 대가로 경찰들은 습관적으로 뇌물을 받아갔으며 때때로 고객들을 상대로 한 불심검문으로 이어졌다. 1969년 6월 28일은 성 소수자 권리운동의 기념비 적인 날이 다. 이날 있었던 경찰의 기습적인 검문과정은 성 소수자 차별과 혐오가 섞인 발언이 난무하였고, 정도를 넘는 경찰들의 행동을 보다 못한 지역 주민들과 성 소수자들은 경찰을 향해 야유를 보냈다. 경찰의 비 인권적인 처사에 저항하는 이들은 짧은 시간 동안 이 천명이 넘게 늘어났다. 이러한 조직적인 대응은 새벽이 지나서야 진정되었지만 스톤월 항쟁은 그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온 성 소수자들이 세상에 목소리를 높이는 시발점이 되었다. 성 소수자 인권운동은 스톤월 이전과 스톤월 이후로 나뉘어진다. 이후로 소수자 권리운동은 미국을 포함해 프랑스, 네덜란드와 같이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미국 내에서 성 소수자들의 권리를 보장 받기 위한 움직임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진보적 성향의 서부 캘리포니아 주는 동성결혼 찬.반을 두고 지역주민들 간 많은 진통이 있었다. 동성결혼 합법화에 반대하는 진영에서 Proposition 8 이라는 동성결혼반대를 둘러싼 주민투표가 발의되었고, 언론에서는 찬.반 양쪽진영을 지지하는 캠페인이 넘쳐났다. 그리고 결국 주민투표의 결과로 동성결혼반대법안이 통과되었고 이 법안에 대해 합헌과 위헌 여부를 둘러싼 논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한국사회에서 성 소수자를 향한 인식은 지속적인 변화를 보여왔다. 홍석천씨의 커밍아웃을 시작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성 소수자들은 점차 양지로 나오기 시작했다. 몇 해 전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비롯해 지상파와 케이블은 물론 영화에서 성 소수자를 다루는 빈도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점차적인 인식의 변화와는 달리 보수세력은 동성애는 말도 안 되는 것이라며 “며느리가 남자라니 웬 말이냐”식의 반응은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성 소수자 들이 학교와 직장, 사회에서 받는 공공연한 차별과 혐오로부터 국가 차원의 제도적 또는 법적인 보호장치는 유엔이 마련한 기준에 못 미칠 정도로 미흡한 수준에 머물러있다.
성 소수자를 포함해 장애인, 노인, 아이들, 소수 종교인 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보호를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은 지난 참여정부 때부터 논의되어왔다. 2006년과 2007년 두 번에 걸쳐 차별금지법 제정이 무산되었고. 작년 가을 통합진보당의 김재연 의원을 시작으로, 올해 2월 민주통합당 김한길, 최원식 의원을 포함 총 70명이 넘는 의원들의 발의로 삶의 모든 영역에서의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 초안이 마련 되었다. 성별, 나이, 학력, 종교, 장애와 성적지향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적인 부분에서 발생하는 모든 종류의 차별로부터 법의 보호를 받기 위해 발의된 법안이지만, 지난 4월 19일 김한길, 최원식 의원이 발의를 철회하면서,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던 많은 이들의 소원은 무산되고 말았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내용의 법안이 발의되었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이슈화 되기 시작한 것은 ‘차별금지법 제정반대’ 운동을 벌인 ‘보수종교집단’의 움직임에서부터였다. 법무부의 입법 예고 알리미 게시판은 ‘동성애 조장 차별금지법 제정반대’, ‘동성애를 하면 에이즈 걸린다’, ’나라가 망해간다’라는 제목의 글들이 수많은 페이지를 장식했다. 더불어 이 법안을 발의했던 의원들의 사무실에 국내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걸려오는 항의 전화와 팩스 서한으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고, 다음 번 선거에서 낙선운동을 벌이겠다는 협박성 발언과 함께 메신져와 문자메세지로도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동성애가 만연한다’는 식의 주장을 내세우며 입법 반대를 종용하는 내용의 메세지들이 전달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을 견디다 못한 의원들은 지난 4월 18일 차별금지법 제정 법안을 철회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행동했던 많은 사람들은 차별금지법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차별금지법의 목적을 조금이라도 알아보려 노력하지 않고, 그저 ‘동성애가 조장되는 것에 반대한다’라는 비상식적인 거대한 흐름에 몸을 맡겨 버렸다. 이성보다는 감성이 사고를 마비시켰다고 해야 할까? 차별금지법과 관련한 한국 사회의 반응을 바라본 한 주간지 기고문은 “비 이성적인 두려움에 깊숙이 사로잡혀 다른 사람을 폄하하고 그들의 기본권을 빼앗을 권리에 집착한다” 라는 표현을 하였다.
행동하기에 앞서 한 번쯤은 내가 하려는 행동이 불러올 결과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의 권리가 중요한 만큼 다른 사람의 권리도 중요함을 잊지 않으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을 차별로 이어가지 않기 위해 우리 사회는 어디부터 변화가 필요한 것일까?
다시 육우당 추모집회로 돌아가보자 뮤지컬 RENT의 대표곡 Seasons of Love가 흘러나오며 집회의 시작을 알렸다. 이어진 추모 영상은 육우당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나와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들려주었는데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과 연대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이었음을 알려주었다. 마지막으로 우리 주변의 청소년 동성애자들에게 성적지향이나 성적 정체성으로 인해 고민하고 힘들어할 때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과, 같은 이유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고 당신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음을 잊지 말라”는 따듯한 당부와 힘이 되는 응원을 남겨주었다.
한국 성적소수자 문화인권센터의 한채윤씨가 발언을 이어갔다. 단상에 오른 그녀는 짧은 소개에 이어 육우당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실은 저도 육우당을 잘 모릅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였지만 한 번도 만나본 적은 없네요. 그렇습니다. 지금 이 자리는 그를 실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 같네요. 하지만 그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고민들과 차별 그리고 비슷한 기억과 어려움들을 공유하는 우리들이 있기에 육우당을 향한 애도와 추모가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비슷한 기억과 어려움들을 공유하고 있다’는 말은 동성애자 자녀를 둔 어머니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아픔일 것이다. 자녀의 커밍 아웃을 받아들이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았지만, 동성애에 대한 당신의 무지에서 비롯된 실수와 차별들이 사랑하는 자녀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음을 깨달았다며 커밍 아웃이 행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니 행복해지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어머니의 마지막 당부는 세상의 많은 성 소수자들에게 행복을 느끼며 살아달라는 것이었다.
보통 ‘추모제’는 엄숙함과 진중함이 깃들어있지만 이 날의 추모제는 조금 달랐다. ‘즐겁다’라는 뜻과 함께 동성애자를 나타내는 ‘gay’ 라는 단어처럼, 재미와 끼가 넘치는 무대들이 이어졌다. 성 소수자로 살아오며 경험했던 차별과 분노, 슬픔, 즐거움과 사랑을 노래와 춤에 녹여내어 추모제에 모인 사람들이 함께 일어나 노래하고 호흡할 수 있게 만들었다. 더불어 이 날의 공연은 6월 1일에 ‘홍대 걷고 싶은 거리’에서 펼쳐질 ‘2013 퀴어퍼레이드’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주었다. 세상의 차별에 맞서 만들어가는 연대행사들이 이렇게 즐겁다면 앞으로 이어질 집회들도 기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아이다호 데이를 맞아 한국 게이인권단체 [친구사이]에서 성소수자 혐오에 반대하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어느 멋진 날: One Fine Day“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살아있었다면 올해로 스물 일곱의 청년이 되었을 육우당. 그의 죽음은 주변 사람들은 물론 비슷한 고민과 어려움을 가진 이들에게 커다란 안타까움과 절망이었다. 하지만 이는 산발적인 목소리를 내던 소수자들을 하나로 결집시켜 차별에 맞서 함께 연대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꽃 비가 내리던 4월의 밤, 이 날은 육우당만을 위한 추모제가 아니었다. 사회의 시선과 차별이 두려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홀로 고민하며 힘들어 할 이 세상의 많은 성 소수자를 위한 자리였다. 그리고 그 자리엔 육우당의 일곱 번째 친구가 되길 원하는 이들이 모였다. 더 좋은 세상에 대한 기대와 작은 희망이 믿으며 행동하는 수많은 지지자들이 함께한 시간이었다. 나는 육우당을 잘 알지 못한다. 그래도 이 곳에 모인 그의 친구들에게서 그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웃는 모습이 아름다웠다던 육우당의 잔잔한 미소가 그려지는 따듯한 밤이었다.
Tips
#1. 대한민국에서 열리는 ‘2013 퀴어퍼레이드’는 홍대 걷고 싶은 거리 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공식적인 행사는 6월 1일부터 16일까지 이며 공식 슬로건인 “The Queer, 우리가 있다” 를 주제로 마포구와 홍익대학교 주위에서 다양한 행사가 있을 예정이다.
#2. 제 13회 ‘서울 LGBT 영화제’는 종로구에 있는 서울아트시네마와 인디스페이스에서 6.6~13일까지 열린다.
자세한 사항은 2013 퀴어문화축제 홈페이지에서 http://www.kqcf.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