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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도 둥지가 필요하다

다큐멘터리 <새들도 둥지가 필요하다(Even a Bird Needs a Nest, 2012)>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의 부동산과 쌀 농장이 개발업자들에게 넘어가면서 많은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있다. 불도저가 멀쩡한 집을 부숴도 경찰은 뒷짐만 지고, 부패한 정부는 주민들에게 폭력과 위협이 가해져도 눈을 돌릴 뿐이다. 이에 여성들로 이루어진 한 단체가 강제퇴거를 반대하며 저항한다.

제18회 서울인권영화제 상영작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인권활동가 텝 바니 ⓒEven a bird needs a nest

 

크리스틴 샹수와 뱅상 트랭티냥-코르노, 두 프랑스인 감독의 다큐멘터리 ‘새들도 둥지가 필요하다(Even a Bird Needs a Nest, 2012)’는 캄보디아의 경제개발과 강제퇴거를 증언한다. 강제로 이주 당한 사람들과 부당한 이주를 거부한 사람들, 정부의 태도를 차례로 담담히 보여준다.

캄보디아는 한국을 경제 발전의 모델로 삼고 적극적이고 대대적인 기업투자 유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별히 한국의 전직 대통령들에게는 더욱 각별한 애정이 있는 듯하다. 새마을운동을 도입한 것은 물론,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0년부터 8년간 훈센 총리의 경제 고문을 지냈다. 어쩐지 낯익은 훈센 총리의 개발정책은 최적의 기후로 장점이 많은 농업 대신, 도시화를 택했다. 경제적토지양여(Economic Land Concessions, ELCs) 제도를 운용하며 대규모 농장이나 관광지 등을 목표로 평균 70년, 최장 99년까지 1만 헥타르 이하의 국유지를 기업에 임대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임대승인 된 비율 만 해도 캄보디아 전체 경작지의 50% 이상에 달한다. 선뜻 투자가 어려운 농업보다는 관광산업과 부동산 개발 활성화로, 투자자의 기회를 우선으로 고려한 맞춤식 개발이다.

 

2012년 많은 여성들이 시위중 강제 구금 당했다 ⓒEven a bird needs a nest

 

한편 개발의 모순된 양상은 정부가 정작 국민의 삶을 돌보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지금까지 42만 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강제퇴거 되거나 퇴거될 위험에 처했다. 해당 지역뿐만 아니라 캄보디아 전체 1,400만 인구 중 400만 명의 하루 수입이 천원 미만이다. 캄보디아 민중의 삶이 나아지면 더 이상 국제 원조를 받을 수 없으니, 정부로서는 그들이 잘 살기를 바라지 않는 것 같다며 하소연하는 주민들의 표정이 서럽다. 여러 NGO가 주민들을 위해 임시로 지낼 수 있는 집과 식량을 제공하고 있지만, 지난 5년간 집 잃은 서러움이 일상이 되어 더는 아무런 느낌이 없다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2008년 이후 경제 발전을 명목으로 진행되는 폭력적인 퇴거는 수도 프놈펜은 물론 농촌지역에도 영향을 끼쳤다. 강제로 이주당한 정착지에서 주민들은 물, 위생시설, 전기, 보건의료, 교육 등의 기본적인 공공서비스를 누릴 수 없으며, 오토바이 등의 이동수단이 없으면 직장조차 구할 수 없다. 평생 농사를 짓거나 어부로 살아온 이들이 전기노선을 만져야 하는 것도 서러운데, 정부는 법 절차에 무지한 주민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제퇴거라는 두려움을 통보하고 있다.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주거권 활동가 텝 바니 ⓒEven a bird needs a nest

카메라는 집을 잃고 무기력한 삶을 이어가는 주민들에 이어, 현장에서 경찰과 치열한 사투를 벌이며 주거권 운동을 하는 주민들로 시선을 옮긴다. 본격적인 매립이 시작되기 전, 마을 사람들은 벙깍 호수에 모여 초와 향을 띄워 수호신과 물고기를 위로하고 각종 탄압으로부터 그들을 지켜달라고 두 손 모아 기도했다. 매립은 끝났지만, 흔적조차 남지 않은 호수의 수호신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전히 100여 가구가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선을 위한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주민들은 거칠고 비협조적인 방식으로 진압하는 정부에 묵묵히 평화적인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다. 주로 여성들과 아이들로 구성된 시위대를 결성하고, 투표를 통해 두 명의 여성 대변인을 선출했다. 목소리가 작으면 묻힌다며 가능한 많은 사람을 시위에 동원하기도 한다. 두 손 모아 기도하고, 힘 없는 사람들을 모으는 것. 가난하고 배운 것 없는 그들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 두려움을 나누는 연대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서글프다.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목소리를 내기 위해 힘없는 여성과 어린이들이 시위에 앞장서고 있는데, 그 현장마다 귀 지끈거리게 서러운 우짖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오직 그들에게 허락된 것은 비 오는 날 법원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두 손 모아 함께 우는 것이고, 70명의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500명의 헌병대 무력시위 진압을 맨손으로 맞이하는 것이다. 곱게 전통의상을 차려입고 나서는 여성들은 때로 분을 못 이겨 가슴팍을 풀어헤치기도 한다.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는데 상황은 악화되고, 눈물은 도무지 마를 줄 모른다. 도대체 정의는 어디 있느냐고, 법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며 애원한다. 

 

프랑스 대사관 앞에서 비를 맞으며 기도하는 사람들 ⓒEven a bird needs a nest

 

부당한 국가의 폭력에 맞서는 것은 국민의 권리이지만, 정부와 대치하는 순간 그들은 끊임없이 위험에 노출된다. 소수의 야당이 그들과 함께 싸워주고 있지만, 대다수의 정치 세력과 경찰들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 심지어 다가오는 7월 선거를 앞두고 캄보디아의 개발이 정치적으로 쟁점으로 주목 받으면서, 훈센 총리의 집권 야당과 야당 사이의 긴장은 고조되고 있다. 상황이 이런지라, 정부는 애꿎은 벙깍 지역주민의 하소연을 야당 당원의 정치공작으로 매도한다. 독립적이지 않은 법원뿐만 아니라, 기회주의적이고 본질을 잃어버린 정부의 차가운 시선이 야속하다.

시위대의 맨 앞에는 ‘새들도 둥지가 필요하다’고 써 붙인 상징적 둥지, 새장이 놓여 있다. 잠시 새장이라는 인위적인 둥지가 과연 진정 새를 위한 것일까 하는 불손한 딴지를 걸다가, 문득 새장 안으로 먹이를 넣어 주는 한 여성의 모습에서 이내 할 말을 잃었다. 그들이 정부에 요구한 최소한의 ‘4*16’이라는 공간이 마치 철창 없는 새장 같았기 때문이다. 마음 편히 몸을 누일 공간도 없는, 새만도 못한 그들이 원하는 것은, 새장만치 작은 둥지에서 아내와 엄마 노릇을 하는 소박한 삶이다. 자유롭게 훨훨 날아오르는 인간다운 삶을 꿈꾸는 것이 사치일 만큼 절박한 바람이다.

 

교도소에 수감된 여성 주거권 활동가들이 울부짖고 있다 ⓒEven a bird needs a nest

 

다큐의 촬영 시기인 2012년 5월 이후 현재, 감옥에 수감 중이던 십여 명의 활동가는 석방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욤 보파를 비롯한 두 명의 활동가가 날조된 혐의로 감옥에 수감 중이다. 철창으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는 건 하늘을 날고 싶은 새뿐만이 아니라, 집을 빼앗은 이에게 내 집을 돌려달라고 외치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바깥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렇게 아린데 철창 안의 삶은 오죽하랴. 주민들은 더 이상 개발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이 동의하는 해결책을 요구할 뿐이다.

 

이 악몽이 그들만의 것일까? 우리는 어떻게 그들의 두려움을 나눌 것인가?

그들에게 진실과 자유는 단순히 추상적인 희망의 언어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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