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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이 되지 못한 대체 주거지, 프놈밧(Phnom Bat)을 가다

왜 사람들은 나쁜 것을 먼저 배울까? 엊그제 5월 29일, 프놈펜 시내에서는 물대포의 출현으로 부상자가 발생했다. 주거권을 주장하는 시위대를 향해 공권력은 가공할 만한 압력으로 무장한 물줄기를 퍼부었다. 어디서 많이 본 그림이다. 이명박 정권이 한겨울, 집회자들을 얼음 인간으로 냉동시켜버리던 것과 흡사한 모습이다. 이쯤 되면 MB가 현 캄보디아 총리이자 28년째 장기 집권하면서 독재자로 군림하는 훈센의 재정 자문처라는 사실이 놀랍지도 않다. 사람들 중에는 부끄러움 모르는 치들도 많다.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에서였던가? 천민자본주의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수치심도 없이, 명예도 없이 물질과 돈의 축적으로 존재를 증명하려 드는 사람은 고귀함과 영예로움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나쁜 것을 먼저 배운다.

뿌리가 뽑혀 나간 나무는 어디에서 다시 나이테를 그릴까? 일상의 뿌리를 뽑힌 사람들은 어디에서 다시 삶을 일굴 수 있을까? 이 글은 정부의 개발 논리와 기업의 효율적 운영 논리에 밀려 본거지를 떠나 대체 거주지로 이주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슬라이드로 지어진 집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보레 켈라 주민들의 대체 거주지인 프놈밧(Phnom Bat)의 모습 ⓒ이주영

보레 켈라(Borei Keila)는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중심부에 자리한 동네이다. 주변에 종합경기장과 대형 쇼핑몰이 위치한 노른자 지역이다. 보레 켈라 주민들은 벙깍 호수 지역과 함께 강제 퇴거로 인해 많은 진통을 앓았다.  (물론 지금도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강제퇴거 관련 시위에 두 지역 주민 커뮤니티는 연대하여 강제퇴거의 해결책을 찾고자 한다. 아직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보레 켈라의 1,776가구 가운데 일부 사람들은 기업이 조건으로 제시한 보상금과 대체 거주지 가운데 후자를 선택했다. 대략 140가구가 프놈펜에서 45km 떨어진 이곳, 프놈밧(Phnom Bat)으로 터전을 옮겨 2012년 1월부터 지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대체’될 수 없는 곳에 대체 주거지가 있다는 사실을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어차피 밀어붙이기식으로 진행하는 정부와 기업의 합리 경영 논리 아래에서 퇴거는 자명한 현실이고, 자진 퇴거하지 않는다면 강제퇴거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마을 대표는 자신의 집 안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주영

그러나 도시와 떨어진 곳에서는 윤택한 삶은 둘째치고라도 생계를 유지하는 것조차 수월하지 않다. 일자리를 찾을 수도 없고,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할 수도 없이 그저 방치된 것처럼 지내고 있다.

마을 주변은 농토로 둘러 싸여 있지만, 기존 지역민의 소유여서 농사를 지을 수 없으니 자급자족할 쌀을 구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주영

내가 프놈밧을 찾은 날은 유독 햇볕이 뜨거웠다. 캄보디아에는 나무가 흔한데, 보레 켈라에서 온 주민들이 살고 있는 이곳 프놈밭에는 나무 그늘 한 점 찾을 수 없었다. 이주민들은 30도와 40도를 오르내리는 열대 기후에 그대로 노출된 채 가공할 만한 더위에 혹사당하고 있는 것이다.

대체 주거지의 모습이 이랬다. 그야말로 집도, 절도 없는 곳, 허허한 벌판 한복판에 캄보디아식 집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외관으로 봤을 때는 슬라이드 지붕이 40도에 육박하는 이 열기를 어떻게 해결해줄지 알 수 없다는 것만을 제외하면 그런대로 집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흔히 말하는 비빌 언덕이 되지 못한다. 줄잡아 4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생계에 손을 놓고 있다. 프놈펜에서라면 손수레에 수박이라도 담아 팔러 다닐 텐데, 이곳에는 그저 황망하게 나무와 슬라이드로 엮어 만든 집들만이 늘어서 있다. 아이들을 보낼 수 있는 학교도 보이지 않고, 의사를 만날 수 있는 병원도 찾을 수 없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삶을 이어가는 대체 거주지, 프놈밧(Phnom Bat) 이주민의 모습. ⓒ이주영

마을 대표자는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천막으로 비바람을 막았다고 했다. 마실 물조차 없는 허허벌판에서 기독교 단체 등의 도움으로 1년 반 동안 이렇게 마을 모양을 갖춘 모습으로 나아졌다. 기부 단체의 간헐적인 원조가 그들의 유일한 도움처였다고 한다. 하지만 수질을 알 수 없는 우물물을 마시고, 또 그 물로 씻는 건 일상이 되었다.

이주민들은 마을 중앙에 서너 개의 우물물로 생활한다. 일부는 수질이 나빠 씻는 용도로만 사용한다고 했다. ⓒ이주영

마을 대표자는 전기라도 있으면, 재봉틀을 돌려 무엇이라도 만들어 팔 수 있을 텐데, 그럴 수조차 없다며 한탄스러워했다.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 전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주변이 논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이미 토착 주민들 소유해 오던 것이라 농사를 지을 수도 없다. 자급자족할 수 있는 농토가 없으니 이곳으로 새로 이주해 온 다음부터는 입에 풀칠하는 정도로 끼니를 이어가고 있다. 멀지 않은 곳에 섬유 공장이 있지만 그들에게는 그림의 떡 같은 존재이다. “왜 공장에서 일하지 않느냐“는 나의 질문에 마을 대표는 공장 근무를 하려면,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있는데, 급하게 퇴거되어 대체거주지인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각종 신분증명서를 분실해서 일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공장에서는 지원 자격 요건에 18세~40세라는 나이 제한이 있어서 마흔을 넘은 사람들은 지원 자격조차 되지 못한다. 사방이 농토로 뻥 뚫려 있지만, 일거리를 찾을 수 없으므로 이곳 사람들에게는 사방이 가로막힌 셈이다.

학교에 가지 못한 아이들은 자동차 소리가 들리자, 가파른 사다리를 타고 쏜살같이 내려왔다. 대체 거주지에서도 이렇게 아이들이 자라고 있었다. ⓒ이주영

내가 만약 그들이라면, 나는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자문해본다.

어떤 선택을 해야 더 불행해지지 않고, 내 삶의 뿌리를 지켜낼 수 있을까?

도시가 도시의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도시계획이 필요하다. 시민의 편의와 안전, 도시 외관과 전통 등을 고려한 큰 그림 위에 복지 정책 등을 추진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불편 없이 생활하기 위해서는 지속 가능한 프랜이어야 한다. 그러나 보레 켈라와 벙깍 호수 지역의 강제 퇴거는 큰 그림이 빠져 있다. 지속 가능하지도 않으며, 지역민의 삶의 뿌리 자체를 흔들어 놓는다. 오수가 흘러드는 벙깍 호수를 모래로 모두 메워버렸으니 일 년 중 넉 달간 이어지는 우기 기간에 홍수가 발생한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지속 가능한 도시 계획이 아니다. 또한, 의료시설, 교육시설, 전기 및 수도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은 지역으로 사람들을 방기했으므로 끊임없는 불안과 불행을 재생산한다. 적지 않은 수의 주민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면 우리가 미처 상상하지 못한 문제들이 또한 불거져 나올 것이다.

2012년 1월 3일, 보레 켈라 지역 강제 철거 당시의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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