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회원소식지 <Amnesty Magazine> 2013년 002호 Member Story ‘회원이야기’에 실린 글입니다.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Amnesty International
2013 정기총회와 무기거래조약을 지지하는 촛불문화제에 덥수룩한 수염에 우쿨렐레 하나를 달랑 멘 가수 ‘사이’가 등장했다. ‘젠틀맨’도 아니고 ‘강남스타일’과도 거리가 멀지만 탄탄한 매니아층을 가진 사이는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비공식 음반이 2천장 이상 팔리고 2010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한 실력파 뮤지션이다. 가수 사이가 무슨 사연으로 국제앰네스티의 무대 위에서 노래를 하게 되었는지 듣기 위해 서울 부암동의 간판도 없는 작은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본인 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유기농 펑크 포크의 창시자이며 슈퍼백수이자 떠돌이 뮤지션 사이입니다. 충북 괴산에 살고 있어요. 사이라는 닉네임은 90년대 초반 처음 네티즌이 됐을 때 사용했던 이름입니다. 당시엔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질 않네요.
국제앰네스티에 어떻게 가입하게 되었나요?
2011년 9월에 여느 때처럼 서울에 잠시 올라왔다가, 홍대입구역에서 거리캠페인 하는 분들을 만나 충동적으로 가입했습니다. 후원하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고, 지금도 유일하게 후원하는 곳이 앰네스티입니다. 기부, 후원 이런 거에 익숙하지 않아요. 예전에 환경단체에서 일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도 후원하는 곳이 없었거든요. 십일조처럼 1할은 이웃을 위해 사용해야 하지 않냐며 한 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죠. 결국 후원하고 있는 곳이 국제앰네스티입니다.
국제앰네스티를 알고 계셨나요?
부산에서 살 때 아는 누님이 앰네스티 탄원 편지를 쓰셨어요. 그렇게 앰네스티를 자연스럽게 알고 있었죠. 그때는 편지 쓰는 것이 무슨 힘이 있겠나 싶었는데, 그 편지들이 실제로 변화를 만들더라고요. 풀려난 사람들도 많고요. 굶주린 아이들에게 직접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는 앰네스티의 방향에 공감하고 있어요.
왜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10년 전 명동성당에서 하던 이주노동자 농성투쟁에서 1주일에 한 번씩 밥을 배식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사람들 중에도 힘든 사람 많은데 왜 이주노동자를 위해 싸우냐’는 말을 들었었어요.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해 봤는데 5분 만에 답이 나오더라고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거죠. 이주노동자 문제도, 노동 문제도, 굶주리는 아이들도 모든 문제가 연결되어있어요. 상관없는 것이 없습니다. 인권과 빈곤문제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잖아요. 빈곤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고, 그걸 바꾸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어떤 계기로 앰네스티에 재능기부를 시작하셨나요?
인권재단 공연 때 앰네스티 공연을 꼭 하겠다고 한 적이 있어요. 그러다 앰네스티에서 전화가 왔어요. 증액을 요청하는 전화였는데, 내가 노래하는 사람이고 재능기부를 할 수 있다고 몇 번이나 말을 했지만 연락이 없더라고요. 그러다 잘못 들어간 술집에서 앰네스티 캠페이너를 우연히 만났던 거죠. 그것을 인연으로 총회에서 공연을 할 기회를 갖게 됐어요. 이어서 무기거래조약 체결을 요구하는 촛불문화제도 함께하게 됐어요. 생각해보니 우연의 연속이네요.
홍대에서 음악 활동을 하다가 귀농 생활을 하고 있는 걸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우연히 석유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석유문명)를 보고 귀촌을 생각하게 됐어요. 귀농은 마음의 문제가 90%라고 생각해요. 여건, 나이, 성별 등은 작은 부분이에요. 제가 처음 경남 산청으로 내려갔을 때는 냉장고, TV, 휴대전화 없이 살았어요. 전기세가 한 달에 1천 6백 원이 나왔었죠. 그렇게 2년 생활을 하다가 괴산으로 이사하면서 일반적인 삶을 살고 있어요. 지금 괴산에서 살면서 딱히 불편한 건 없어요.
왜 연대활동을 하게 되었나요?
한국 사회에서 산재해 있는 문제들을 보면 상식이 통하지 않는 부분이 답답해서요. 전 운동권도 아니었고, 대학도 나오지 않았어요. 모든 사람은 마땅히 인권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이 세계인권선언이나 헌법에도 명시가 되어있지만,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이러한 대원칙이 쉽게 무시되는 듯해요. 권력관계에 놓인 것이 아니라 이웃 간이었다면 적어도 농성천막을 무자비하게 철거시키진 않았을 거에요. 만약 시골 사람들이었다면 천막 철거하는 것을 보며 ‘쯧쯧’ 혀를 찼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은 문제를 쉽게 잊어요. 기억의 힘은 무서운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기억하고, 상식을 벗어난 일들이 순순히 풀리게 두고 보지만은 않겠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지금 회원님께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요?
지금 가장 소중한 건 가족입니다. 아내와 아들 느티가 가장 소중하죠. 느티가 지금 여섯 살인데 학교 진학이 아니라 다른 선택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어요. 학교를 보내기보단 같이 여행을 다니고 싶은데, 본인이 학교를 가겠다고 하면 보낼 거에요. 대안학교를 보내는 것도 좋긴 하지만, 그것도 다른 누군가에게 맡기는 거잖아요. 아이를 키우는 게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앰네스티 회원으로서 앞으로는 그 동안 쓰지 않았던 탄원편지를 좀 써보려고 합니다. 내가 쓰는 작은 편지 한 통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꼭 써야죠. 그리고 올해 안에 신곡 앨범을 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다른 회원님들도 저의 신곡을 한번 들어 봐주시면 좋을 듯 합니다. 앰네스티에서 또 뵙겠습니다. 또 만나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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