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칼럼

나는 국민연금이 확산탄 제조기업에 투자되는 것을 반대한다

6월 15일 촛불모임에서 ‘국민연금은 확산탄 투자를 철회하라’는 탄원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보냈습니다. 이후, 회원들은 보건복지부로부터 서면 답장을 받았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앞으로 의견을 잘 검토하여 국민연금 원칙 및 방향 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짧은 서신을 보내왔지만, 회원들의 소중한 탄원이 이렇게 전달되고 있다는 소식은 반가운 일인 것 같습니다. 이 글은 촛불모임 박지용 회원님께서 캠페인 참여 후 작성해 주셨습니다.

 

확산탄이란, 집속탄이라고도 불리며 넓은 지형에서 다수의 인명 살상을 목적으로 하는 대표적인 비인도적 무기다. 항공기 등에서 투하된 대형폭탄이 공중에서 수백 개의 소형 폭탄으로 분리되면서 폭발해, 반경 25m 안에 있는 사람들에 치명상을 입힌다. 소형 폭탄의 40%는 불발탄으로 남았다가 대인지뢰처럼 터져 민간인에 큰 피해를 준다. 코소보·이라크·레바논 등에서 사용됐으며, 지금까지 알려진 사상자만 1만 3천여 명에 달한다.

시리아 공군은 인구가 밀집된 주거지역에 확산탄을 투척했다 © Amnesty International

올리브 과수원에 떨어진 확산탄 © simon conway


군용수첩 속의 담겨있던 “확산탄”

경기도에 있는 육군의 포병대대에서 2년간 군 복무를 한 나에게 ‘확산탄’은 꽤 익숙한 용어다. 하지만 절대 친숙한 용어는 아니다. 이등병 신분으로 자대배치 받던 날. 무섭게만 느껴졌던 일병 고참은 “내일까지 외워!!” 라는 한마디의 말과 함께 수첩 한 권을 나에게 건넸다. 그날부터 군대 용어에 대한 암기 강요가 시작되었다. 머리가 영민하지 못한 탓에 수첩에 담긴 용어들을 다음날까지 암기하지 못했고 나는 얼차려와 폭언, 욕설을 피할 수 없었다. “확산탄”은 그때 그 수첩에 담겨있던 용어 중 하나이다.

나에게 확산탄은 비인도적인 살상무기라기보다는, 군대 시절 나를 옥죄었던 폭력으로서의 인지되고 있었다.

고참들은 확산탄의 효율성만을 강조했었다. 나는 확산탄이 전쟁에서 적들을 압도적으로 물리칠 수 있는 강력한 화력무기라고 배웠다. 하지만 그 어떤 고참도 확산탄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다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나는 확산탄에 의하여 피해를 당하는 98%가 민간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없었다. 그 중의 1/3 이상이 어린아이라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불발탄으로 남아있는 “확산탄”의 잔해를 장난감인 줄 알고 만졌다가 엄지손가락이 날아가 버린 꼬마 소녀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었다. 이와 유사한 피해사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들어본 적 없었다.

확산탄피해 생존자, 자라 후세인 수판, 레바논 ⓒ Alison Locke

어떤 동료는 확산탄의 강력한 화력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다른 동료는 북한은 더욱 강력한 무기를 가졌다며 확산탄만으로는 부족하다고도 이야기했다. 군대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폭력성을 지니기에 무자비해 보이는 많은 것들이 합리화됐다. 나 역시 폭력에 희생양이었고, 또한 폭력에 동조하던 시절이었기에 확산탄의 비인도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설사 확산탄의 비인도성을 이야기했다 할지라도 받아들이는 동료가 있었을지도 의문이다.

나는 이렇게 확산탄의 자랑스러움만을 인지한 채로 전역했다.

국민연금이 확산탄 제조 기업에 투자되고 있었다.

얼마 전 국제앰네스티와 13개의 연대단체(국민연금 확산탄 투자철회 공동행동)가 함께 진행한 캠페인은 내가 공유하고 있던 확산탄에 대한 인식을 전환할 수 있는 기회였다. 캠페인은 확산탄을 생산하는 한화와 풍산에 대한 국민연금의 투자 철회를 촉구하고, 비인도적 무기에 대한 투자를 금지하는 윤리투자원칙을 마련하자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캠페인에 익숙한 용어가 나왔기에 반가워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던 내용과는 사뭇 달랐다. 내용을 인지한 후, 더는 나에게 확산탄은 자랑스러운 무기가 아니었다.

민간인까지 가리지 않고 공격지점을 초토화하는 확산탄의 무자비함에 두려움을 느꼈다. 확산탄으로 인하여 발생한 수많은 피해사례를 접하고는 연민을 느꼈다. 확산탄을 대한민국의 굴지의 기업이 생산 하고, 내가 낸 국민연금이 관련 기업에 투자되고 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현재 국제사회에서는 확산탄의 사용과 생산, 수출, 비축, 이전을 금지한 확산탄금지협약(Convention on Cluster Munitions, CCM)을 취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이 가입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실망감을 느꼈다.

촛불모임 회원들이 작성한 확산탄 투자철회 탄원서

2013년 6월 15일 국제앰네스티 촛불모임의 회원들과 함께 보건복지부에 확산탄 생산 기업에 대한 국민연금 투자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한 엽서를 썼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 앰네스티의 노란 로고가 담긴 예쁜 엽서였다. 보낸 사람에는 집 주소를 적고 받는 사람에는 보건복지부 주소를 적어 넣었다. 혹여 잘못 배달되지는 않을까 봐 정자로 또박또박 적어 넣었다.

나의 미래를 위해 국민연금 재정의 장기적 안정과 수익증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국민연금 재정이 어떠한 원칙과 방향으로 관리되는지는 더욱 중요한 문제이다. 수많은 인명을 앗아갈 수 있는 확산탄 생산에 국민연금 재원을 투자하는 것은 그것이 비록 화수분과 같은 효과가 있을지라도 온당한 방향이라 이야기할 수 없다. 나의 미래에 대한 안녕이 누군가의 생명을 위협함으로 인해 보장 된다면 나는 이를 받아들일 자신이 없다.

나는 국민연금이 확산탄 제조기업에 투자되는 것을 반대한다.

평범한 개인이 세상을 바꾼다!

며칠이 지나 집으로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되었다. 보낸 사람에는 “보건복지부 국민연금재정과”라고 적혀있었다. 내가 보낸 편지에 대한 답신이었다. 답신에 담긴 내용은 형식적이었다. 하지만 개인의 의견이 보건복지부에 전달되었고, 그에 따른 반응이 있다는 것은 나름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개인의 가치가 존중받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개인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평범한 개인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By 박지용 회원(촛불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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