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에도 일본군 ‘위안부’들은 해방다운 해방을 맞지 못했어요.”
제1회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기념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하신 김복동 할머니의 말씀이다.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마다 한국 정부는 뭘 하고 있냐는 질문을 받아요. 박정희 대통령 때 이 문제를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대신 그 딸인 박근혜 대통령이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있어요.”
2011년 8월 30일, 헌법재판소는 ‘정부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상 분쟁해결절차가 마련되어 있음에도 일본이 위안부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입힌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한국 정부는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피해자들의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국민을 위해 분쟁해결절차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의무가 있지만 제대로 된 행동을 취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하여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고 일침을 놓았다. 헌법재판소는 왜 ‘청구권 협정’을 주요한 해결절차로 본 것일까? 바로 ‘청구권 협정’이 일본이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사안을 부정할 때 가장 먼저 내놓는 카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카드는 바로, (일본의 입장에서는) 김복동 할머니께서 말씀하신 ‘(한국 정부의)포기’와 같은 맥락으로 읽힐 수 있다.
<해방다운 해방을 앗아간 청구권 협정>
청구권 이야기를 하자면 1965년까지 거슬러 올라 가야 한다. 1965년 6월 22일 도쿄에서 ‘한일 양국의 국교관계에 관한 조약(기본조약)’이 체결되었다. 1951년부터 미국의 주도 하에 꾸준히 추진되었던 이 조약은 이승만 정권의 전략적인 반일 정책 때문에 65년에 조약 체결이 완료되기 까지 약 14년간 난항을 겪었었다. (당시 이승만 정권은 박정희 정권이 ‘반공’을 국시로 삼고 이를 이용했듯이 ‘반일’과 ‘반공’ 모두를 국시로 삼아 국내 정치에 이용했다.)
-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한일협정의 기본조약이 아닌 부속 협정이었던 ‘청구권 협정’이다. 청구권과 경제 협력에 관한 협정 관련 조항은 불안했던 경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많은 돈이 필요했던 박정희 정부의 돌파구였다. 이 협정을 이용하여 박정희 정부는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하기에 이른다.
- 62년에 이를 비밀리에 합의한 것이 바로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종필과 일본 외무장관 오히라 마사요시의 비밀회담으로, 일본은 청구권 협정을 통해 약 8억 달러를 ‘독립 축하금’이라는 명목으로 한국 정부에 주었다. 이 8억 달러를 흥정한 숫자가 적힌 종이가 「김종필-오히라 메모」였고, 이 메모가 공개되자 돈을 받고 모든 걸 용인하겠다는 저자세 외교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일제 강점기 일본 정부가 저지른 강제 징용을 식민지배에 대한 것과 함께 배상하는 형식으로 하여,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돈을 피해자들에게 직접 전달하겠다는 뜻으로 이 돈을 받았었다. 그러나 박정희 정부는 이 돈을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포항제철 건설에 쏟아 부었고 8천 명 가량의 일부 참전 군인에게만 배상하는 데에 그쳤다.
<같은 협정, 다른 해석>
그럼 청구권 협정은 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일까? 이 조약을 두고 양 국가의 해석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 협정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법적으로 해결이 끝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은 청구권 협정이 애초에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었다고 본다. 이와 관련, 대법원이 청구권 협정은 한일 양국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판결한 바가 있다. 또한 2012년 5월 일제 강제 징용 노동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대해 대법원은 “청구권 협정 협상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칙적으로 거부하였고,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은 일제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으므로 이와 관련한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따라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법적으로도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 청구권 협정이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었다는 대법원의 판결
1. 청구권 협정은 한일 양국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2. 청구권 협정 협상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칙적으로 거부했다.
3. 2의 명시에 따라 한일 양국은 일제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으므로 이와 관련한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
이것을 다시 쉽게 말하자면, 일본은 ‘청구권 협정에서 이미 이 사안에 대한 법적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합의를 보았으니, 소송을 걸어도 소용이 없소. 돈도 이미 주었지 않은가’ 하는 것이고, 한국 대법원은 이에 대해 ‘청구권 협정 합의 때 식민지에 관한 내용은 없었기 때문에 개인청구권이 소멸한 것은 아니니 소송을 제기할 수 있소’ 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초 일본의 아베 총리와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의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한 발언이 큰 파장을 일으켰었다. 아베 총리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증거가 없다”고 했고, 하시모토 시장은 “당시 일본군 ‘위안부’는 필요했다”고 했다. 이후 발언에 대한 해명을 내놓았지만, 두 사람 모두 청구권 협정 때문에 법적인 배상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라고, 또 다시 청구권 협정을 들먹였다.
우리는 흔히 사람들이 싸울 때 ‘법적으로 하자!’라는 말을 쉽게 듣는다. 그래서일까, 일본은 자꾸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법적인 문제로만 접근하려고 한다. 한일 양국 정부간 합의는 끝났으며, 따라서 개인 자격으로도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이미 없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일본의 형법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자체가 불법이다. 하지만 일본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계속해서 비논리적인 법 이야기만 하고 있다.
<버림 받은 내 청춘>
제1회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기념 국제심포지엄에서 중국서 오신 하상숙 할머니께서는 “배상금을 바라는 게 아니라 버림받은 내 청춘에 대한 일본의 사과가 듣고 싶습니다”고 하셨다. ‘버림 받은 내 청춘’이라는 말이 참으로 시렸다. 하상숙 할머니 당신의 청춘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모든 청춘, 그리고 스무 살도 훌쩍 넘은 정대협의 청춘은 도대체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보듬어야 할지……. 일본의 위안부 존재 부정, 책임 회피 등은 그 시절 그 모든 고통을 온 몸으로 받아낸 진짜 ‘증인’이자 피해자인 할머니들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9월 4일, 독일 대통령은 프랑스 방문 중에 나치 학살이 자행됐던 마을을 찾아가 과거 독일의 잘못에 대해 사과 했다. 독일은 이미 2차 대전에서 패망 후, 여러 차례 사과와 보상을 했다. 7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이미 사과 했고, 끝난 일이야’라며 외면하지 않고, 피해자들이 겪는 후속적인 고통 등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자 사과하는 것. 우리가 이것을 일본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독일의 이 행보가 일본에게 있어서도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클 것이다.
- ▲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왼쪽)과 요하임 가우크 독일 대통령(오른쪽), 나치의 오라두쉬르글란 마을 학살 당시 생존자 중 한 명인 로베르 에브라(88)가 오라두쉬르글란 마을의 폐허가 된 교회 내부에서 손을 잡고 걷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일 양국의 문제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일본과 아시아의 문제, 더 나아가서는 전시 여성 폭력의 문제까지도 나아가야 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9월 11일에 열린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유엔(UN)진실정의특별보고관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사과는 충분치 않다”고 지적하면서 “피해자들이 공식적 사죄나 국가적 책임이 결여된 경제적 보상은 원치 않는다”고도 말했다. 또한 일본 교과서의 일본군 ‘위안부’ 삭제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시했다. 국제사회의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초청국이었지만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일본을 포함한 G8국가들(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러시아)이 2013년 4월 11일 G8 외무장관회담에서 채택한 ‘전시성폭력 근절에 관한 G8 선언’을 발표한 바 있다. 일본 정부는 선언 이행을 위해서 먼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전시성폭력 문제임을 인정하고,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일본은 이제 청구권 협정이라는 방패막이를 내려 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