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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 : “이래 싸우며는 사방이 지옥이라”

  가을걷이도 하지 못한 채 765KV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싸움을 하고 있는 밀양주민들을 10월 8일부터 10일까지 3일간 만나고 왔습니다. ‘국책사업’이라는 명분으로 강행되고 있는 송전탑 건설 현장에서 권리보유자인 주민들의 목소리는 무시되고 외면당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유로우며, 권리와 존엄성에 있어 평등하다는 것은 모든 인권선언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며, 이것은 모든 사람이 동등한 수준의 기회를 누리고 기초적인 생계, 안전, 자원, 참여 등의 권리를 가질 자격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밀양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국제앰네스티는 빈곤의 특징적인 요소로 박탈, 배제, 불안, 강요된 침묵을 꼽고 있습니다. 이 요소들은 빈곤의 악순환으로 몰고 가는 인권침해입니다. 이 빈곤의 악순환의 경계에서 삶의 끈을 부여잡기 위해 사력을 다해 싸우는 밀양 주민들을 만나봅니다.  [글 : 변정필 캠페인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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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 싸우며는 사방이 지옥이라”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

 

“이래 싸우며는 사방이 지옥이라.”

예순을 갓 넘어 보이는 한 여성이 8일 765KV 송전탑 건설 현장을 지척에 둔 평밭 마을 농성장에서 천주교 사제단이 진행하던 미사를 드리다가 조용히 한숨을 뱉는다.

“아침에 올라올 때 지옥 같은 시간을 어떻게 견디나…이런 마음으로 사람들이 죽는갑다. 이 생각이 들더라고.” 공사 재개 사흘째인 4일 부북면 위양리 126번 공사 현장에서 단식 농성을 하다 119로 응급 후송되었던 신00씨. 퇴원을 하자 마자 9일 공사 현장 인근에 차려진 농성장에 다시 올랐다. 경찰의 1차 통행제한선을 통과해 30분을 족히 걸어 올라야 하는 산길. 갓 퇴원한 몸을 이끌고도 굳이 그 길을 올랐다.

대단한 각오라도 했을까, 어찌하다 단식을 하게 되었냐는 우문(愚問)에 “공사가 들어오니까 밥이 넘어가야지예. 먹을 수가 없었어예. 10월 1일 한전에서 기자회견 했는데, 9월 30일 밤에 단장면에 포크레인이 들어왔어예”라고 답한다.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하는데, 막을 방법도 없는데 공사장으로 장비를 실어나르는 헬기 소리에 그저 밥이 안 넘어갔을 뿐이다. 서럽다, 분하다는 말을 백 번을 해도 다 못할 신씨의 마음을 몸이 대신 말했을 뿐이었다. “크레인이 헬기로 날라지는데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구나, 몸으로 밖에 이렇게 할 수가 없구나. 헬기 소리가 나면 마 미치겠어예.”

밀양은 가는 곳마다 신음 소리다. “제발 살려주이소. 제발 좀 살려주이소.” 주민들은 인권단체에서 왔다고 하니 가던 길을 붙들고 손을 꼭 잡으며 신신당부를 한다. 평생 ‘인권’이라는 말도 굳이 알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체포니, 구속이니, 채증이니 하는 말은 뉴스에나 나오는 말인 줄 알았던 ‘할매’, ‘할배’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일흔을 넘겨서야, 아흔이 다 되어서야 이 말들을 뼛속 깊이 다시 배우고 있다.

사진 4

96번 송전탑 공사현장

배제

신씨는 2005년 7-8월 경에 이장님이 동네에 철탑이 들어온다고 설명회 같은 걸 하는 데 한 번 가보라는 말을 들었다. “그냥 재미삼아 갔어예. 철탑이 아니라 쪼메 큰 전봇대를 꽂는 줄 알았어예. 철탑이 뭔지. 재산상에 하락이 오는지도 모르고 이해가 하나도 안됐어예.” 설명회를 연 한전에서는 크게 건강상에 문제가 없을 거라고 설명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주민들은 그 송전탑이 ‘쪼매 큰 전봇대’가 아니라 765KV가 흐르는 100미터도 넘는 거대한 송전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민들은 싸우기 시작했다. 주민의견서를 통해 765KV 송전탑 건설을 수용할 수 없다는 의견도 냈다. 그러나 사업내용에 반영된 부분은 사실상 없었다.

765KV 송전탑이 인체에 무해하다는 것을 입증하라고 주민들이 요구했지만,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 없었다. 오히려 세계보건기구(WHO) 등에서 나온 연구자료 결과 일부 사실을 확대하고 중요한 정보를 누락시킨다는 의혹만 키웠다.

주민들의 우려는 고압 송전선이 주민들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는 한전 내부 연구보고서가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더욱 커지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장하나 의원은 7월 한전이 2009년 발주해 2010년 보고받은 내부보고서를 분석해 765KV 송전선으로부터 80미터 이내에 거주할 경우 어린이의 백혈병 발병률이 3.8배 가량 높아지는 수준의 전자파에 노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의혹은 더욱 증폭됐다. 먼저 송전탑을 지은 곳에서 암 발병률이 높아지고, 비만 오면 소음에 시달린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알레르기를 앓고 피부 발진이 생긴다는 얘기도 있었다. 이 모든 의문들에 한전도 정부도 안심시킬 만은 답을 내오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 한다고 했으니 주민들이 곡기를 끊고 송전탑을 백지화하라며 이렇게 싸우고 있는데 “보상 이야기만 하고, 이미 송전탑을 어디다 세울지, 언제 어떻게 세울지 다 답을 갖고서 힘없는 동네 주민들을 상대로 억지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서러움과 억울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평리마을 입구 ⓒAmnesty International

평리마을 입구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싸움에 세상이 주목하기 시작한 건 2012년 1월 16일 이치우 어르신이 자신의 몸에 직접을 불을 붙이면서다. 밀양 땅에서 태어나 74년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던 이치우 어르신은 논 가운데 떡하니 들어설 102번 철탑에 속수무책으로 땅을 내놓아야 할 상황에서 굴착기를 갖고 들이닥친 경비 용역의 폭력과 조롱, 폭언에 절망감을 느끼고 이 날 저녁 8시경 “내가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되겠다”는 말을 남기고 분신했다.

밀양 765KV 송전탑 및 송전선로 건설 협의 과정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은 한국전력과 시공사 측이 송전탑 건설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모든 이해 당사자와 합리적인 방법으로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주민들은 “국책사업으로 한전에서 진행한다는 얘기 말고는 제대로 설명된 게 없다”, “국책사업이기 때문에 주민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진행될 것”이라는 이야기만 들었다고 했다. 상동면 고정리의 한 주민은 “주민설명회 한다고 면사무소에 잠깐 나오라고 해서 갔더니 백지에 도장을 찍으라고 했고, 나중에야 설명회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주민 의견수렴은 결국 요식 행위에 불과했다.

정홍원 국무총리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조환익 한전 사장도 밀양 주민들을 설득하겠다고 밀양을 찾았다. 농성을 하고 있는 주민들에게 혹시 9월 방문한 국무총리를 만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본 적도 없지. 밀양에서 피해보는 주민 위주로 합의를 해야지. 그런데 시장 권력 근처에 있는 사람들만 데리고 회의를 했다 아입니꺼. 선하지 주민들은 다 빼고 했어예. 국무총리가 만난 이장협의회 회장들은 경과지에서는 먼 사람들이고, 면장들도 (경과지에서) 먼데 있는 사람들만 왔어예. 선하지 주민들은 이 사람, 저 사람 압력이 많아예. 오죽하면 동장들이, 여수동, 고정리, 고답동, 모정, 도곡, 금호 동장들이 사표를 냈겠습니꺼”라고 했다. 주민들은 한참 밀양시청 앞에서 송전탑 건설을 반대한다고 외치고 있을 때 ‘400만원 보상 타결’이라는 뉴스를 인터넷으로 먼저 봤다고 했다. 국무총리는 주민들을 피해 후문으로 나갔다고 한다.

 

5월, 포크레인에 쇠사슬을 묶고 농성중인 마을 주민과 인터뷰하는 캐서린 베이버 아시아태평양 국장

5월, 포크레인에 쇠사슬을 묶고 농성중인 마을 주민과 인터뷰하는 캐서린 베이버 아시아태평양 국장

박탈

밀양에서 송전탑 건설을 강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1978년 만들어진 ‘전원(電源)개발촉진법’이 있다. 전원개발촉진법은 사업자가 산업통상자원부의 승인을 받으면 바로 사업시행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업자가 개인소유 땅을 강제수용해도 소유자는 아무런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 협의 과정을 거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지만 협의가 잘 안됐을 경우 공사를 그냥 강행해도 된다는 조항도 있다.

전원개발촉진법과 한국전력의 규정에 따르면 송전탑 건설부지는 좌우 30미터까지 감정가로, 전력선이 통과하는 선하지는 선로 송전선로의 양측 가장 바깥선으로부터 수평으로 3미터를 더한 범위에서 감정가의 30퍼센트만 보상된다. 한전에서는 송전탑과 선로가 들어서더라도 ‘농사는 계속 지을 수 있다’는 전제를 두고 보상금을 지불한다.

“손톱이 뭉그러지도록 일군 땅”을 제 값을 팔아도 속이 쓰린데, 150여 만원 남짓의 돈으로 보상을 받고서는 살 수가 없어 재판부에 탄원서를 낸 주민도 있었지만 뾰족한 수가 되지 못했다.

765KV 송전탑이 건설이 가시화되면서 인근 지역 주민들의 땅은 누구도 쳐다보지 않는 쓸모 없는 땅이 되어 버렸다. 송전선 마을 일대 모든 토지 담보대출 및 거래가 사실상 중단되고, 매매하려다 계약이 파기된 사례가 속출했다. 은행이 아예 자산가치를 매기려 들지 않아 대출이 거절당한 사례도 비일비재 했다.

산외면 희곡리에 사는 이00씨는 “송전탑이 들어서기로 한 다음에 철탑부지는 당연히 대출이 안 되고…작년에 철탑부지에서 500미터 떨어진 곳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려고 했더니 대출 불가라고 했다. 철탑부지는 아예 안 되는 거였고, 이젠 500미터가 족히 떨어진 곳에서도 재산권을 행사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고 말했다.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하게 해달라고도 해봤지만, 관련 법이 없어서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속수무책이었다.

 

밀양 송전탑 공사가 재개되며 경찰은 20개 중대 2천여명의 병력을 투입했다

밀양 송전탑 공사가 재개되며 경찰은 20개 중대 2천여명의 병력을 투입했다

불안

한전과 주민 측이 합의점을 찾지 못해 협상이 결렬된 직후에도 한전은 공사를 재개하고 강행했다. 말을 뒤집기도 하고 일부 주민들을 회유하기도 했다. 공사를 강행하는 과정에서 용역직원들은 물리적 폭행과 성폭력, 모욕과 조롱 등의 행태로 연로한 나이의 주민들을 괴롭혔다. 경찰은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현장에 있었지만 주민을 보호하지 못했다.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을 하고 잠시 중단된 것처럼 보였던 공사는 올 해 5월 20일 다시 재개됐다. 5월 공사재개에 알몸으로 저항하는 ‘밀양 할매’들의 사진이 언론을 타던 그 시기 765KV 송전탑 공사 강행을 둘러싼 갈등은 다시 고조되기 시작했다. 경찰이 밀양 송전탑 건설 현장에 대규모로 투입된 것도 바로 이 시점이다.

평리마을 입구

평리마을 입구

한전에서 공사를 강행하겠다고 선언한 10월 1일 이후, 밀양은 말 그대로 ‘전쟁터’다.

주민들은 하루에도 스무 번이고, 서른 번이고 공사소리만 나도 심장이 두근거려서, 미칠 것 같아서 “네 발로 기어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산길을 올랐다. 경찰은 농성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농성장에서 걸어서 30-40분 떨어진 길목에서부터 ‘외부세력’을 차단하고 선택적, 자의적으로 이동의 자유를 제한했다. 오로지 농성하는 주민들만 통과 할 수 있다고 했다. “주민의 안전”을 이유로 내세웠다. 법적으로 정당한 근거를 대지는 못했다.

주민들은 농성장에 올라 하루에도 스무 번이고 서른 번이고 “채증해”, “체포해”, “연행해”라는 말을 들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괜찮다고 했다. 그러나 팔십이 되도록 들어본 적 없는 그 말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을까.

 

한 할머니는 (경찰은 한전의 개다) 라며 분개했다

한 할머니는 (경찰은 한전의 개다) 라며 분개했다

강요된 침묵

15일 레미콘 차량이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주민 30여 명이 89번 송전탑 공사현장으로 들어가는 길을 막았다. 주민 몇몇은 연행에 대비해 목에는 쇠사슬을 걸었다. 주민 4명이 경찰 300명에게 끌려나왔다. 경찰은 할머니들의 사지를 들고 끌어냈다. 상의가 끌어올려지는 수모를 겪었다. 위법 사실에 대한 고지나 근거를 대지도 않았다. 경찰력을 행사하는 경찰의 신분을 식별할 수가 없어 해산을 하는 경찰에게는 포괄적 면책이 보장됐다.

16일에 단장면 바드리 마을 입구에서 주민들은 한전의 공사차량이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고 농성을 했다. 경찰이 농성주민에게 강제 해산작전을 벌였다. 주민 1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그 사이 공사차량인 카고 트럭 8대가 시내로 빠져나갔다. 주민들이 쓰러지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주민들은 “자기들은 법을 만들어서 하고,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럴 수가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투입되었다던 경찰은 ‘안전하게’ 공사를 할 있도록 주민들을 고착시키고, 해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길이 막히고, 주민들의 입도 막혔다. 결국 힘 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만 골라서 송전탑 짓는 거 아니냐는 밀양 주민들의 말에 누구도 제대로 답하는 이가 없다. ‘국책사업’이라는 한 마디에 모든 것이 가로막혔다.

천주교 성직자들 위로 이륙 중인 공사헬기

천주교 성직자들 위로 이륙 중인 공사헬기

결국 도시로 올려 보내야 하는 전기 때문에 시골에 사는 농촌의 할매, 할배들이 기대고 살아야 할 땅이 제 역할을 잃었다. 박탈이다. 765KV 송전탑이 들어서도 괜찮겠냐고 한전도 정부도 제대로 주민들에게 물어본 적이 없었다. 배제다. 용역이 내 땅을 내놓지 않는다고 폭력을 행사한다. 국민을 지켜주는 줄 알았던 경찰은 지켜만 봤다. 체포하겠다고 위협도 했다. 불안이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주민들에 대한 강요된 침묵이 있다.

 

유엔총회에서 결의된 농민인권선언 제2조 4항을 옮겨 적는다. “농민은 자신의 땅과 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프로젝트, 프로그램 및 정책에 대해서 정책구상, 의사결정, 이행 및 모니터링에 참여할 권리를 갖는다.”

바드리 마을 입구 이남이 할머니

바드리 마을 입구 이남이 할머니

탄   원   서


존경하는 판사님!

저는 밀양시 단장면 사연리에서 30년 전부터 밤나무 농사를 지어 생활하고 있는 농부입니다. 가난하고 형제가 많은(10형제) 집안에서 태어난 저는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남들에게 해 한번 끼치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힘들고 어렵게 겨우 땅을 산 저희 두 부부는 내 땅이 있는 것이 너무 좋아서 밥만 먹고 나면 그 곳에 가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정말이지 하루 종일 일을 하여도 힘든 줄을 몰랐습니다. 괭이로 땅을 파고 맨손으로 돌을 골라내고 톱과 낫으로 잡목을 베어내어 모두 밤나무 묘목을 심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밤나무 단지(No.97 철탑주변 밤나무 단지)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현재, 밤 수확으로 버는 돈은 일 년에 7-8백만원 정도이지만 다른 수입이 없는 저희 부부는 그 돈으로 1년을 먹고 산답니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지금까지 행복하게 잘 살아 왔습니다.

 

존경하는 판사님!

이제 제 나이가 72살입니다. 아직까지는 힘이 남아 있어 밤농사를 지어 내 힘으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3년 전에 1억 5000만원에 팔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이를 미루었습니다. 정말로 아무리 힘들어도 내 땅에서 내 힘으로 밤농사를 짓고 그렇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더 힘이 없어 밤농사를 짓게 되면, 그 때 땅을 팔아서 쓸려고 합니다. 그 돈으로 먹고 살고, 그리고 아프면 병원에도 갈 겁니다.

그런데 한전은 내 땅 위로 초고압 송전선을 설치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밤나무 단지는 항공방제를 할 수 없어 밤농사를 지을 수가 없게 됩니다. 벌써 산을 팔려고 해도 아무도 살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정말로 이제는 앞날이 막막해졌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살아갈 방법이 없습니다.

얼마 전에 한전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보상금 154만원을 찾아가라는데…그 때 저는 “154만원 필요 없다, 154만원 안 받을 테니 우리 부부 늙어 죽을 때까지 먹여 살려 달라, 우린 그 땅 없으면 굶어 죽는다,”며 고함을 질렀습니다…

판사님 저희 늙은이를 제발 살려 주십시오. 큰 욕심 안 부리겠습니다. 죽을 때까지 내 땅에서 농사짓고 그렇게 살아가게 해 주십시오. 만약, 그것이 꼭 안 된다면, 송전선을 내 땅 위에 꼭 건설 하여야 한다면…

나라에서라도 우리 부부를 먹여 살리도록 해주십시오. 잘 먹고 살 잘겠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저 밥만 굶지 않고 살아가게 해 주십시오. 저는 무식해서 잘 모르지만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나라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밀양시 단장면 사연리 000번지 양00

* 이 글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회원소식지 <Amnesty Magazine> 2013년 004호 ‘특집’에 실린 글로서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 Amnesty Interna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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