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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와 표현의 자유에 대하여

* 이 글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소식지 2014년 001호 Opinion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Amnesty International

ⓒnewscham

한국사회에서 학교는 민주주의에 빗겨 서 있다. ⓒ 참세상

지난해 12월, 전국에 한 대학생으로부터 시작된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의 바람이 불었다. 처음 대자보에는 철도노조 파업과 철도 민영화 논란 등 현 시국에 대한 우려가 담겨 있었고, 점차 본인 삶이 안녕하지 못한 이유를 담은 대자보가 붙었다. 성소수자는 차별적인 시선에 대해, 취업준비생은 녹록지 않은 취업 현실에 대해 썼다. 저마다의 삶에 맞부딪친 문제에 대해 토로할 수 있는 장이 열렸던 시간이었다.

아직 방학을 앞둔 시기였다. 바람은 물론 초•중•고교에도 가리지 않고 불었다. 학생들은 학교 밖의 안녕을 묻고, 학교 안의 안녕을 물었다. 여느 시민들처럼. 청소년운동단체는 학교에 붙여진 대자보 수를 집계했다. 이에 따르면 대자보가 붙여진 학교는 80개에 이른다. 집계되지 않은 것과 한 학교에 여러 개 붙여진 것을 고려하면 수는 더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대자보는 거의 떼어졌다. 다른 학생들이 훼손한 것이 아니라 학교 측에 의해 떼어졌다. 또 그 중 몇 학교에서는 학생을 나무랐고, 학생에게 징계위협을 가했다.

전반적인 억압은 교육부의 지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 최근 일부 학생들이 사회적 이슈와 관련된 특정 주장이나 개인적 편견을 학교 내에서 벽보 등을 통해 주장함으로써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를 해칠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2. 이와 관련하여 각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게 학생 생활지도에 만전을 기할 수 있도록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사근사근한 어투를 빼고 읽으면, 대자보를 붙일 수 없게 하라는 이야기다. (이에 모든 교육청이 따른 것은 아니다. 광주, 전북 교육청은 학생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침을 잘 따른 학교 사례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구미 O중학교에서는 “징계를 내린다면 등교 정지 감이다”이라는 협박과 함께 학부모를 불렀다. 서울 S여자중학교에서는 대자보를 붙였다는 이유로 학생에게 벌점을 주었다. 경남 D여자고등학교는 대자보를 붙인 학생에게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는 경위서를 쓰게 했다. 이처럼 학생에게 직접적인 불이익을 가하지 않았더라도, 밤에 붙인 대자보는 대개 다음 날 아침에 철거되었다.

그런데 학생 표현의 자유 탄압의 근거로 내세운 ‘학생의 정치적 의무’는 타당한가. 이를 따져보기 위해서는 법 조항을 살펴야 한다. 교육기본법 제6조 1항에서는 ‘교육은 교육 본래의 목적에 따라 그 기능을 다하도록 운영되어야 하며,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 조항은 으레 교사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근거가 되었고, 이제는 학생 정치활동을 막는 데에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본래 법의 취지를 완전히 잘못 해석한 것이다. 교육기본법 6조 2항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한 학교에서는 특정한 종교를 위한 종교교육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 밝힌 것을 보면, 교육의 중립성은 교육이 특정 권력집단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항목이다. 국가가 교육을 장악하여 교육에 국가주의적 가치를 주입했던 제국주의 시대로부터의 교훈이다. 사실, 어떤 정치적 의견도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은 역설적으로 가장 정치적인 공간이다. 학교의 입장, 국가의 입장만이 옹호되고 긍정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학교는 오히려 정치의 공간이어야 한다. 특정한 거대권력의 입김이 작용하는 공간이 아니라, 작은 목소리들이 모일 수 있는 장이어야 한다. 민주사회에서 정치는 말이고, 말은 정치다. 더 많은 사람의 목소리가 존중 받을수록, 더 민주적인 사회다. 한국사회에서 학교는 고고하게 민주주의에 빗겨 서 있다. 지난 1월, 학생들은 새로운 대자보를 붙였다. 수원 D여고, 전주 S고 등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선정한 학교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교과서 선정에 반대한다는 대자보를 붙이고, 떼어지자 다시 붙이는 일종의 시위를 꾸려갔다. 학교 밖, 정치 시국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던 12월과는 조금 다르다. 학생들은 학교 안, 자신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목소리를 냈다. 대자보는 이제 학생들에게 한 표현 수단이다. 학교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배운 적이 없었으나, 이번 대자보 시국에서 학생들은 표현의 자유를 누릴 방법을 알았다. 학교는 그만 민주사회의 영역으로 들어와야 한다. 언제까지 빗겨 서 있을 것인가.

별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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