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칼럼

감옥에서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총 권하는 사회에서’

국제앰네스티 ‘위험에 처한 사람들(Individual at Risk)’ 사례자이기도 한 김성민(활동명 들깨)은 지난해 11월 18일, 입영을 거부하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1년6월형을 선고 받아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0월호에 실린 김성민의 – 감옥에서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총 권하는 사회에서’ – 를 발췌 및 요약한 글입니다.

※ 글의 원본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국제앰네스티 '위험에 처한 사람들(Individual at Risk)' 사례자 김성민 ©국제앰네스티

국제앰네스티 ‘위험에 처한 사람들(Individual at Risk)’ 사례자 김성민 © Amnesty International

친구야, 이 곳의 유일한 생방송인 저녁 뉴스에서 총기난사 소식을 들었어. 새삼스레 작년 11월, 내 입영일이 떠올랐어. 논산의 하늘은 시리도록 파랬지. 연병장으로 향하는 길 양편에 천안함 폭침을 성토하는 현수막과 북한 정치범 수용소를 고발하는 사진 판넬들이 죽 늘어서 있었고, 입대 장병들의 바짝 깎은 머리와 탱크들이 운동장을 메웠지. 아무리 돌이켜봐도 삭막했던 그 날의 풍경은 한 편의 거대한 정신교육장 같았어. 군악대의 나팔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친구들과 손 흔들면서 눈물 흘리며 이별하는 입대 장병들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나는 몹시 외로움을 느꼈어. 그날 입대한 그들은 지금쯤 군인티를 물씬 풍기며 훈련을 받고 남은 일수를 세고 있을 것이고, 나는 입영을 거부한 죄로 감옥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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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스로에게 ‘나라면 병역거부를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내 삶의 많은 것들을 다시 고민했었지. 처음에는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상황에서 나의 양심을 거스르며,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군인이 될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나의 고뇌는 깊어졌어.·

“내가 총을 드는 건 어떤 것일까?”

“누군가를 죽이는 훈련을 받고 실제로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나는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열띤 대화를 나누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날도 적지 않았어. 병역거부 활동을 하는 단체를 찾아 회원가입도 하고, 조금씩 활동을 같이 하며 각기 다른 이유와 생각으로 평화를 말하는 사람을 만났어. 그때부터 나는 무엇이 내게 총을 들게 하는지, 내가 왜 그 ‘무엇’앞에서 굴복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군인이 되는 나 자신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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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몇 년 동안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 자신을 바라보려 했어. ‘병역거부를 계기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그들과 함께 느끼고 쌓아온 감정들이, 말하자면 나의 ‘양심’이었던 것 같아. 아주 개인적이면서도 온전히 나의 것만은 아닌, 그 ‘양심’을 스스로 거스르는 것은 내겐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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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nesty Internationa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0월호 ‘총 권하는 사회에서’ © Amnesty International

 

여전히 네가 ‘그래서 대체 왜 군대를 안간 건데?’라고 묻는다면, 한마디로 명쾌하게 답할 재주가 내겐 없네. 그저 수년간의 고민들이 쌓여왔고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들을 내 몸에 새겨가려는 노력을 하고 싶었고, 군인이 되지 않은 것도 그 연장선이 아닐까 하는 애매한 대답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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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란 옳아서가 아니라 훨씬 이득을 얻기 때문에 가는 것이고, 안 가면 너만 손해라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그래서 가장 현실적이고 두려운 충고들이 귓전에 아직도 맴돌아. 총 권하는 사회에서 내가 끊임없이 마주해야 할 진짜 감옥은 아마도 이런 무의미한 충고와의 씨름일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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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와 생각해 보면, 군대만 거부한다고 해서 충분한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어. 나는 단지 내 앞으로 온 영장을 거부했을 뿐이고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은 군대와 전쟁의 원리로 촘촘하고도 단단하게 구성돼 있잖아. 앞으로도 다양한 사람들이 조금씩 군대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고, 나름의 작은 거부를 해나간다면 내 선택이 더욱 의미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어떤 이들을 관심병사로 분류하거나 범법자로 만드는 대신에, 총을 드는 대신에, 다른 목적과 다른 방식의 관계로 조직되는 나름의 역할이 주어진다면, 그들 자신에게도 우리 모두에게도 조금 더 평화로운 삶이 가능하지 않을까? 이런 상상, 해본 적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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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1년 반 동안, 아니 그 이후에도 살아가면서 나름의 여행을 해 나가면서 ‘넌 왜 전쟁이 싫은거냐’라는 사람들의 질문을 간직하려 해. ‘평화’라는 말의 빈 공간을 묵묵히 채워 가는게 내게 주어진 숙제려니 하고 말이야. 네게도 한 가닥 고민이 되었으면 해.

 

병역거부자이기 이전에 여행을 좋아했다던 성민은,
서로 다른 사회의 문화를 살피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들과의 감정을 서로 느껴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고 합니다. 

얼마 전, ‘강제TV시청’으로 고충을 겪다가 복역 중인 방을 옮겨달라고 요구했고,
쉽지 않았지만 다행히 지난주부터 독거실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김성민을 좀 더 알 수 있는 곳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올해의 케이스 ‘김성민’

들깨의 병역거부를 함께하는 사람들의 까페
본격 병역거부 만화, <소견서>
• 연대편지 보낼 곳: 경기도 군포시 군포우체국 사서함 20호 3723 김성민(인터넷 서신 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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