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인 감옥, 구체적인 인권
제가 서울의 어느 길거리에서 회원가입을 한지 어느덧 8년이 됐습니다. 게으른 활동을 해 왔지만 그래도 적잖은 편지를 썼습니다. ‘Amnesty’ 단어의 뜻처럼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풀어주라거나 갇힌 이들을 격려하는 내용이었죠. 그런데 이제는 제가 감옥 안에 들어와 밖으로 나가는 편지를 쓰자니 기분이 묘하네요. 수감 되고 나서 돌이켜 보니 그 동안 꽤 많은 탄원편지나 격려편지를 쓰면서도 그들이 갇혀 있는 구체적인 감옥을 떠올려 본적이 별로 없더군요. 다양한 나라에서 갖가지 이유로 갇힌 이들이 저마다 어떤 모습으로 어떤 환경의 감옥에서 지내고 있을지 이제야 상상해 봅니다.
재작년에 저는 인도나 네팔, 캄보디아와 같은 소위 ‘가난한 나라’들로 여행을 다녔습니다. 저렴한 숙소나 현지인들의 집에 묶으며 일년 정도를 떠돌아 다녀왔는데. 대부분 전기나 깨끗한 물이 넉넉치 않았죠. 집들은 대부분 작았고(특히 도시에서는) 창문이 작거나 아예 없어서 어둡고 답답했습니다. 단순하게 비교하긴 어렵지만 제가 들어온 감옥은 그 나라의 평균적인 생활 환경보다 훨씬 쾌적하고 풍족합니다. 세끼 밥이 시간 맞춰 나오고 너른 창으로 빛이 잘 들어와 밝으며 환기도 잘 됩니다. 천장에 있는 전등은 24시간 꺼지지 않고(잘 땐 밝기를 줄입니다) 깨끗한 물도 평펑 쓰는데다 건강과 안전이 최우선시 되는 곳이라 위생과 청결이 강조되며 아프면 제깍제깍 약도 줍니다. 여기서 주는 속옷, 비누, 치약 등은 바깥에서 쓰는 것들보다 품질이 나쁘다곤 하지만 제게는 인도나 캄보디아에서 쓰던 것들보다 좋게 느껴집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제가 만났던 인도의 포스코 반대 활동가들이나 캄보디아의 강제퇴거 주민들이 갇혀 있던 감옥은 사뭇 다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 사회가 보여주는 최소한의 인권, 감옥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겠으나 한국에 잡혀와 감옥에서 생활하는 소말리아 해적들이 본국으로 송환되지 않기를 원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한국의 감옥이 소말리아에서의 그들의 삶의 수준보다 풍요롭다는 뜻이겠죠. 어떤 이들은 ‘죄인’들에게 왜 그렇게 잘 해주냐고 물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한국의 감옥에서 누리고 있는 것들은 한국사회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로 정해놓은 것들입니다. 어느 사회나 감옥은 그 사회의 최하층의 수준보다 조금 낮은 여건을 갖춰놓는다고 하더군요.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최소한의 의식주와 종교, 건강, 운동, 독서 등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인권은 전 세계 어디서나 보편적이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은 사회마다 다른 듯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인권은 사회적인 것이란 걸, 또 그 속에서 드러나는 경제적 격차를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물론 감옥 생활이 마냥 좋진 않습니다. 많은 자유가 제약됩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하루 30분 운동시간을 제외하고는 건물 밖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컴퓨터, 스마트폰, 이어폰 등 제 몫의 일부처럼 갖고 다니던 것들이 없는 불편도 크지요. 친구와 가족들의 손도 한번 잡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런 제약보다도 가장 힘든 것은 같이 사는 사람들입니다. 방 한 칸에 6-8명이 24시간동안 부대끼며 하루종일 TV 소리, 수다소리, 서로가 서로를 들볶는 간섭과 미묘한 갈등, 남성적으로 짜여진 위계적 문화 등에 시달리다 보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커녕 정신없이 멍해지기 십상입니다. 어찌됐건 병역을 거부한다는 선택은 감옥이라는 결과를 고려해서 내린 결정이니만큼 적응할 건 적응하고 이왕이면 좀 더 건강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하루하루 생활하고 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계기가 된 앰네스티 활동
제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앰네스티 활동을 통해서였습니다. 5년 전, 앰네스티 대학생 네트워크를 막 시작하던 무렵 한 병역거부자를 초대해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지요. 당시 병역 미필이었던 저는 처음으로 병역거부를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군인이 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기에 그것을 거부하는 것을 결정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국제앰네스티는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를 요구하고 있었지만 그 권리를 지지하는 것과 제가 병역거부를 하는 다른 얘기였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왜 병역을 거부하는지 찾아서 읽고, 직접 만나보고 병역거부 운동을 하는 단체에 찾아가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군인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친구들, 가족들과 함께한 고민과 대화를 이어 나가며 어느덧 제 나름대로의 평화에 대한 신념은 무척 중요한 것이 됐고 어느 시점에 저는 입영을 거부함으로써 제 가치관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선택이 있기까지 또 선택 이후의 재판 과정과 지금의 수감생활을 하면서도 앰네스티 활동에서 만난 사람들의 도움과 지지는 큰 힘이 됐습니다.
어쩌면 이 편지를 읽는 분들께 병역거부자는 여전히 낯선 존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연히 앰네스티에 가입했고 회원활동을 하던 학생이었으며 영장의 명령에 따랐다면 지금쯤 군인이 되어 총을 들고 있었을 겁니다. 제가 수감이 되고 나서 한국은 연일 군대문제로 시끄러웠습니다. 그 뉴스들을 안에서 보면서 군대 내 폭력으로 인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역할을 바꿔가며 괴롭히고 때리고 맞고, 때로는 죽고 죽이는 장병들의 모습들이 어쩌면 제가 택했어야 하는 길이었을지도 몰랐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폭력적인 사회에서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아가는 것을 우리의 권리입니다
이 편지를 읽는 분들 중엔 군대를 과거의 경험으로 갖고 있거나 앞으로 겪어야 할 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혹은 자녀의 일로 걱정하거나 남동생, 오빠, 애인의 일로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걱정하는 분들도 있겠죠. 군인과 병역거부자는 동전의 양면이기도 하며 우리 사회에서 사는 이들은 누구나 이 문제와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또한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최근 들어 남북간의 긴장도 높아지고 일본은 전쟁할 수 있는 국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이러한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덜 폭력적인 사회에서 전쟁에 대한 위협을 덜 느끼며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아가는 건 우리 모두가 누려야 하는 권리이기도 합니다. 제 이후에도 계속해서 저마다의 고민을 담아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의 편지를 읽으시고 병역거부권을 지지하는 걸 넘어 왜 병역을 거부하는가에 대해 또 평화에 대해 어떠한 견해들이 있는지 귀를 기울여 주신다면 제가 병역거부를 선택한 것에 대한 가장 큰 격려가 될 것입니다.
펜으로 혹은 현장에서 다른 이의 삶에 관심을 가져 주세요
날씨가 추워지고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전세계 앰네스티 회원들의 펜이 바빠지는 시기입니다. 저 또한 이맘때 쯤이면 세계인권선언 기념일 행사나 편지쓰기 마라톤, 레터나잇 등의 행사에 참여해 왔었죠. 때론 펜으로만 활동하는 게 답답하게 느껴져서 직접 정치현장에 나가보기도 하고, 여행 중에 인권과 관련된 장소를 찾아가서 사람들을 만나보기도 했습니다. 그런 경험들은 간단 명료한 글자로 남아있던 인권선언문을 여러 이야기와 사람들 그리고 다양한 느낌과 추억을 담아 떠올릴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물론 책상 위에 앉아 펜으로 누군가의 권리를 옹호할 수 있다는 건 앰네스티 회원들의 특권이지요. 하지만 간단하게 서명하고 편지를 보내는 것을 넘어서 보다 구체적으로 사례들을 찾아보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우리들의 인권이란 더욱 풍요로워 지는 게 아닐까요? 물론 우리들은 바쁘고 세계 곳곳에 우리의 편지를 기다리는 곳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더 깊은 관심과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한 게 아닐까요? 저 또한 이 안에서 앰네스티 소식지를 받아보며 연말의 편지쓰기에 함께 하겠습니다.
2014.10.19
서울구치소에서 성민(들깨)
P.S. 최근에 다행히도 1인실로 옮겨 생활하게 됐습니다. 제주해군기지 관련 집회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인데 이것이 마무리될 때까지는 독거실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서울구치소에서 성민을 접견하면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지지하는 한국지부 회원에게 한마디 해 줄 수 있겠냐고 요청했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해주었습니다.
“앰네스티 활동을 하며 병역거부를 만났습니다. 감옥에 있지만 편지쓰기로 앰네스티 활동을 함께 하겠습니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잠시 뭉클,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