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리뷰

‘직원도 마음대로 못 자르는 게 무슨 회사야?’

매월 첫째주 수요일 저녁, 작은 영화관 필름포럼 과  함께 <앰네스티 수요극장>이 회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그동안 책이나 강의로 인권을 ‘공부’해 오셨다면, 극장에 앉아 영화 속에 숨겨진 인권의 이야기를 직접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앰네스티 수요극장>의 세번째 영화 카트에 대한 최한별 회원의 리뷰를 소개합니다.

* 글의 특성상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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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기업에서 직원을 ‘상품’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견고하고, 점점 더 차가워지고 있다. 이윤 극대화를 위해 철저하게 계산된 최적의 노무관리 방식이 경영에 도입되고, 노동력은 자본과 함께 생산 요소로, 비용 극소화의 대상으로 인식된다. 일하는 사람들의 웃음과, 눈물과, 한숨은 경영 그 어디에서도 고려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더럽고 치사하지만 어쨌든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기업의 프레임을 수용하고 살아간다. 야근 수당을 주지 않아도, 내가 뭘 입고 언제 화장실을 갈 지까지 정해줘도, ‘회사가 살아야 내가 산다!’는 구호처럼,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승진도 하고 월급도 오르겠지, 나의 미래가 오늘보다는 밝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카트>는 이런 소박한 꿈을 가지고 80만원이 될까 말까 한, 임원들이 보기에는 ‘반찬 값’인 월급으로 나와 가족의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을 기업이 얼마나 단호하게 내칠 수 있는지 보여줬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이야기가 순수한 ‘극’이 아니라 현실을 그린 것이며 이마저도 진짜 현실을 채 담지 못했다는 점이다.

© 명필름

© 명필름

극중 ‘더마트’ 계산원 혜미는 바코드를 찍지 않은 물건을 두고 손님과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은 탈의실에서 손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이 장면을 보고 있으려니 내 시급보다 비싼 커피가 ‘나오셨다고’ 말하지 않고 문법에 맞게 ‘나왔다’고 했다가 어디 손님에게 말을 버릇없이 하느냐고 점장까지 불려 나와 혼이 났다는 한 알바생의 자조 섞인 한탄이 떠올랐다.

혹자는 말한다. 그들은 돈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선택했으므로 회사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 옳다고. 그러나 나는 다시 묻고 싶다. 계산원들이, 카페 알바생들이 대체로 받고 있는 5,000-6,000원 시급에는 그의 감정도 포함되는 것인지. 서비스라는 것은 계산을 하는 행위, 커피를 내리는 행위를 의미해야지 인간의 감정까지 포함해서는 안 된다. 감정은 판매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미소를 강요 받고, 손님의 기분에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무릎을 꿇어가며 모욕적인 사과를 해야 하는 게, 과연 존엄성을 가진 인간에게 요구되는 정당한 노동인지, 나는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우리는 몰랐어요, 그게 부당한 일인지”

노동자들에게 미소를 강요하고 편하게 식사할 시간도 주지 않으며, 저녁에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자본, 즉 회사의 이윤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윤을 추구하는 경영진의 결정이다.

‘외주화’가 뭐냐고 묻는 불안한 목소리들, 계약기간이 명시되지 않은 백지 계약서에 당장 닥친 계약 연장을 위해 그냥 서명했던 사람들, 계약기간이 아직도 한참 남았는데 해고 통보를 문자로 받은 사람들. 그들은 모두 뭔가 이상하다고는 느꼈지만 혜미가 ‘이거 불법이예요!’라고 외치기 전까지는 내 권리가 무엇인지, 그래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실제로 본 영화의 바탕이 되는 이랜드 여성 노동자 파업 당시 파업 참가자들은 평생 투쟁이라는 말을 입에 담아본 적도 없고, 그들이 매일 직면하는 고통과 모욕을 생계를 위해 감내해왔던 사람들이었다.

© 명필름

© 명필름

“추운 겨울에도 스웨터를 입지 못하게 하는 회사, 청소 아주머니들을 해고해 쓰레기가 쌓인 채 근무했던 일터,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을 만큼 심한 일의 강도, 손님인 척 가장해 자신들을 감시하는 모니터링제, 강제로 발리는 빨간색 립스틱, 정규직만 회원 가입할 수 있는 회사 홈페이지, 손님과 회사 사이에서 정지해야만 하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들, 늘 두렵고 쫓기는 생계.”

어쩌면 그녀들에게 ‘노동조합’이란, ‘파업’이란, “말하기조차 구차하게 일상적으로 반복돼 자신들의 삶을 파괴하는” 고통과 모욕으로부터의 탈출 시도였는지도 모른다. “결국 회사가 이분들 노조 가입을 독려한 셈”이라는 이경옥 부위원장의 설명도 이를 뒷받침한다.

프레시안, “우린 아무 것도 아닌 존재구나, 이 나라에서” 기사원문보기

낙숫물이 바위를 뚫을  있을까요?”

© 명필름

© 명필름

© 위즈덤하우스

© 위즈덤하우스

© 최규석

 

 

 

 

 

 

 

 

 

 

요즘 미생이나 송곳 같은 웹툰이 한국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노동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부조리를 묘사하고, 오차장이나 이수인, 구고신같은 메시야적 인물들이 등장하는 판타지물에 가까운 컨텐츠들이 한국에서 유독 인기가 많은 현상은 노동현장에서 마주하는 부당함에 눈은 떴지만 정작 모난 돌이 되어 정 맞기는 싫고, 누군가 나를 이 답답한 상황에서 구원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노동자들 가운데 얼마나 널리 퍼져있는가를 보여준다.

아무리 노동운동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우리는 모두 한 번쯤 쌍용차, 한진 해운, 재능교육, 철도 노조 파업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하지만 우리는 노조의 이야기에, 아니, 한 노조원의 사연에 귀 기울이려는 시도는 선뜻 하지 못했다. 내가 쌍용차, 한진, 재능 노동자가 아니니까. 그리고 나는 아직 참을 만 하니까. 그러나 오늘 저 사람이 당한 폭력이 내일은 나를 향할 수 있음을 기억하자. 극중 강대리의 말처럼, 그 일은 내 일이다.

사람이 아니라 돈을 고려하여 자행되는 비윤리적 비인권적 결정들이 더 이상 우리의 존엄성을 짓밟을 수 없도록, 오늘의 피해자와 내일의 잠재적 피해자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카트는 특히 정규직 사원들과 비정규직 사원들이 함께 투쟁하는 모습을 통해 연대의 중요성을 보여주었다. (물론, 이는 이랜드 파업 당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프레시안, “비정규직 대량해고, 다음은 정규직입니다.” 기사원문보기)

“사람 대접 좀 해달라고! 투명인간 취급 하지 말라고!”

© 명필름

© 명필름

카트가 개봉된 11월 13일은 전태일 열사의 기일이었다. 전태일 열사 분신으로부터 벌써 40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노동법은 빈번히 침범되고 있다. 얼마 전 대법원은 쌍용차 정리해고가 부당했다는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경영상의 급박한 이유’, 즉 돈이 안 되면 과정이 아무리 부당했더라도 사람을 마구잡이로 잘라도 된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국가가 말 한 셈이다. 보팔 참사(http://amnesty.presscat.kr/ai-action/9961)가 일어난지 3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해결된 것은 없고, 책임자 처벌이나 배상도 제대로 이뤄진 것이 하나도 없다. 회사가 인간의 얼굴을 회복하기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존엄을 생계와 맞바꾸는 것을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끊임없이 내 권리를 찾는 움직임이 회사 내에 살아 숨쉬어야 한다. 우리는 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구치소에서도, 길 위에서도, ‘사람 대접’ 받을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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