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리뷰

그 날 밤, 정동에서

포슬포슬 눈 오던 지난 금요일 밤, 이름만 들어도 왠지 마음이 말랑해지는 ‘정동길’의 한 카페에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떴습니다. 하얗게 쌓인 눈길을 따라 문을 열고 들어서니 책장 전면에 올해의 사례자들의 얼굴이 보입니다.

“어서와, 편지쓰기마라톤은 처음이지?”

“어서와, 편지쓰기마라톤은 처음이지?”

 

편지쓰기 그리고 앰네스티 살펴보기

‘편지쓰는 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물론 탄원 편지를 쓰는 것이지만 요즘 앰네스티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회원들이 서로 직접 만나고 교류하는 자리이기도 해요. 이를 위해 카페 구석구석에는 한국지부 간사들이 몇 주 동안 열심히 준비한 전시와 액션 코너들이 마련됐습니다.

커다란 유리벽에 전시된 이 작은 엽서들은 전국 초등학교 교사들과 어린이들로부터 좋은 호응을 받았던 ‘인권친화교실’의 결과물입니다. 2014년 올 한해 동안 한국지부에서 만든 네 번의 인권친화교육 패키지로 수업을 받은 학생들은 534학급, 18,000여 명에 달합니다. ‘빈곤과 인권’이 주제였던 3차 패키지에서 학생들은 빈곤문제의 근원이 ‘차별’에 있음을 인지하고, 각자가 생각하는 해결방안을 찾아 그림으로 그려보았습니다. 단지 로마족이라는 이유로 강제퇴거 당한 사람들이 사과와 보상을 받고, 다시 이웃들과 함께 행복하게 웃는 모습, 아파도 치료받을 수 없는 산모들을 위해 병원이 건립되는 모습들이 작은 엽서에 가득했습니다.

인권친화교실에 참여한 어린이들이 상상한 ‘빈곤 없는 세상’

인권친화교실에 참여한 어린이들이 상상한 ‘빈곤 없는 세상’

세계빈곤퇴치를 위한 UN의 활동을 독려하기 위해 반기문 UN 사무총장에게 보내는 편지도 있었어요. 인권교육을 받은 초등학생 어린이들이 자라서 함께 편지쓰는 밤에 참여할 날을 상상해 봅니다.

한 켠에서는 올해의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수상작들을 소개하는 공간이 마련됐습니다. 방송프로그램은 영상으로, 주간지와 신문 수상작들은 전시를 통해 수상작들의 내용을 꼼꼼히 살펴볼 수 있는 자리였어요. 같은 날 있었던 시상식 내용은 여기를 참고해 주세요.

기둥 하나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앰네스티 활동을 응원하고 동참하는 많은 회원분들이 모인 자리만큼 서로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간단하게 받았는데요, 특별히 어떻게 해달라고 주문하지도 않았는데 다들 조용히 스스로 멋진 문구들을 적어주셨어요. 역시 백 마디 말보다 실천을 먼저 하는 앰네스티 회원들 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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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같이 하는 세 명이 모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대요. 여기 마음 하나, 보탭니다. – EJ “

 

편지쓰는 밤, 시작합니다!

저녁 7시가 가까워 오자 불금 대신 편지 쓰기를 결심한 앰네스티 회원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다른 지부의 ‘편지쓰는 밤’은  ‘회원들이 알아서 와서 쓰고 알아서 가는’ 컨셉이라고 하는데, 우리는…그러고 그냥 가면 왠지 서운하잖아요~ 어렵게 시간을 내어 오신 분들인만큼 함께 의미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몇 가지 프로그램을 준비했습니다.

무엇보다 오늘 같은 날에 음악이 빠질 수 없죠. 올해 편지쓰는밤에는 지난 시크릿액션 전시를 축하하러 오셨던 고의석 클래식 기타리스트를 초대했습니다. 사실 음악 무지인인 저로서는 ‘옆으로 치는 것이 아닌 안고 치는’ 기타 연주 모습부터가 새롭고 신기했어요, ‘기타 한 대가 이렇게 감정을 빼앗아 갈 수 있구나’고 감탄할 정도로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강렬했던 연주였습니다. 사람들을 생각하고, 위로하는 이 자리에 근사하게 어울리는 멋진 음악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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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연주와 이야기를 들려주신 기타리스트 고의석

편지가 필요한 사람들의 이야기

고의석님의 연주 덕분에 한층 촉촉해진 분위기에 본격적으로 편지쓰기마라톤 사례자들의 이야기를 드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최소한의 의료서비스도 받지 못해서 임신을 하면 죽을 각오를 해야하는 음콘도 지역의 여성들부터 웹사이트를 개설했다고 채찍질 천대를 선고받은 라이프 바다위, 고문과 졸속 재판으로 억울하게 누명을 쓴 제림, 로마족이라는 이유로 강제퇴거 당한 코코니, 위키리크스에 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구속된 챌시 매닝, 가스 유출로 인해 30년째 고통을 받고 있는 인도 보팔지역 주민들 그리고 평화적 병역거부자 성민까지 한국지부 간사들과 회원들이 차례로 나와 이들이 어떤 위험에 처해있는지 왜 우리가 그들을 위해 편지를 써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사실 편지쓰기마라톤 패키지에도 이미 나와 있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생소한 지명이며 이름이 어려워서 그런지 이해가 확 되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회원들이 나와 직접 설명해주니 귀에 쏙쏙 박히기도 하고, 텍스트로는 느낄 수 없었던 마음으로의 공감이 생기더라고요.

짧지만 따뜻했던, 그리고 편지의 힘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다시 그날 밤 늦게까지 편지를 썼습니다. 패키지를 읽으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사람,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편지를 쓰는 사람, 일단 먹을 것을 담고 있는 사람, 구치소에 있는 성민을 위해 응원의 카드와 사진을 찍는 사람들 모두 편지쓰는 밤을 환히 밝히는 작은 촛불들이 아니었을까요?

성민

평화적 병역거부자로 수감중인 성민을 위해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는 ‘평화의 꽃 사진 액션’

 

편지는, 진짜 힘이 셉니다.

사실 저는 처음에 ‘편지쓰기마라톤’에 대해 듣자마자 ‘요즘 세상에 왠 편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군대 간 남자친구한테도 인터넷으로 편지 보내는 시대에 손 편지를, 그것도 외국 장관이나 대통령한테 보낸다고? 바쁜 현대인(…)들이 과연 얼마나 참여할는지, 쓰고 보내는 정성과 노력에 비해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는지 걱정과 우려가 앞섰던 것이 사실이에요.

그런데, 이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방식이 그 어떤 첨단의 것보다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더라고요. 한 두 장의 편지야 아무 힘이 없지만 수백, 수천, 수 만 통이 되는 순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에 인권 침해자들은 ‘멈칫’하게 되고, 피해자들은 용기와 희망을 갖게 됩니다. 억울하고 힘들 때 주변 사람들이 보내는 격려와 지지가 그 무엇보다 큰 힘이 됨을, 우리 역시 크고 작은 경험들을 통해 느꼈던 것처럼요.

작년 한 해에만 수만 명의 사람들이 앰네스티 편지쓰기마라톤 캠페인을 통해 230만 건의 탄원 편지를 썼습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그 어느 때 보다 힘든 요즘,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쉽고 강력한 행동이 바로 편지쓰기가 아닐까요? 코코니, 제림, 챌시, 음콘도, 보팔..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대한민국 용산에서, 강정에서, 밀양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과 본질은 똑같습니다.

 

벌써 12월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위험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춥고 힘든 계절입니다. 그들이 내년에는 조금 더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그래서 내가 사는 이 세상이 조금 더 살만해질 수 있도록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함께 편지 한 통 쓰시지 않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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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쓰는 밤을 함께 한 한국지부 회원들

 

*국제앰네스티의 편지쓰기마라톤이 궁금한 분들에게 추천하는 영상!

 EBS 지식채널e  <최한순 할머니가 미리암에게>

http://ebs.daum.net/knowledge/episode/29824/inner?ou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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