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리뷰

동료들에게 내가 1,000유로 보다 못한 사람이 되었다

매월 첫째주 수요일 저녁, 작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앰네스티 수요극장>이 회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그동안 책이나 강의로 인권을 ‘공부’ 해 오셨다면, 극장에 앉아 영화 속에 숨겨진 인권의 이야기를 직접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앰네스티 수요극장>의 네번째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Two Days One Night)에 대한 최한별 회원의 리뷰를 소개합니다.

*글의 특성상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린나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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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얼마나 텁텁했는지. 영화의 내용이 썩 밝지 않은 탓도 있지만 2시간 남짓한 러닝타임 동안에도, 심지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때도 음악 한 소절 없던 것이 한 몫 단단히 했다.

영화와 사운드에 관한 짧은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선생님께서 영화의 사운드야말로 감독의 의도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장치라고 하셨다. 철저하게 통제되지 않는 시각적 요소들과 달리, 사운드는 ‘디자인’이 가능하다. 느리고 슬픈 음악이 나오면 아무리 희극적인 장면이 연출되어도 사람들은 슬픔이나 우울함을 느낀다. 빠르고 경쾌한 음악이 나오면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아, 이 장면은 즐겁고 신나는 장면이구나, 나도 즐겁게 봐야지’라고 느끼게 된다. 그런 점에서 <내일을 위한 시간>에서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상당히 꾸준하다. 노골적이기까지 하다. 작위적으로 감정을 강요하지 않음으로써, 영화는 산드라의 삶, 그녀가 마주하는 현실 앞에 관객도 함께 세운다.

 

ⓒ그린나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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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라는 우울증때문에 휴직했지만 이제 회복되어 일터로 복귀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무력감에서 벗어나 아이들에게 파이를 구워줄 정도로 활력을 되찾았지만,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소식은 동료들이 자신의 복직대신 1,000 유로(약 140만원)를 선택했다는 것.

한 번의 보너스를 받으려고 동료를 내치는 ‘비인간적인’ 선택을 한 산드라의 동료들을 향해 선뜻 손가락질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는 이미 ‘나 먹고 살기 급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왔고, 때로는 우리 자신이 그 자리에 있기도 하다. 산드라 역시 이를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만나 분노를 쏟아내기 보다는 ‘이해한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아무 죄책감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산드라를 보며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그녀를 보자마자 눈물을 떨구며 너무 미안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내가 ‘인간답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표현되는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산드라를 향해 이렇게 사람들을 괴롭히고 다니니 좋냐고 으름장을 놓는 사람을 보며 화가 난게 아니라 너무 슬펐다. 눈 한 번 딱 감고 잠시동안의 여유를 누려보고 싶었는데, 왜 감긴 눈을 열려 하느냐고, 다만 일주일이라도 돈 걱정 좀 안 하게 해달라는 비명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린나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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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주소도 다 알 정도로 친했던 동료들에게 내가 140만 원 보다 못한 사람이 되었다. 당장 드는 감정은 동료들에 대한 분노보다 자신에 대한 회의감이 아닐까. 우리는 알고 있다. 나는 존엄하다는 사실을. 스펙이 훌륭하지 않더라도, 외모가 뛰어나지 않더라도, 돈이 없어도. 하지만 내 조건때문에 삶의 모퉁이마다 위축되다 보면 나를 향한 부당한 대우에 익숙해지게 마련이다. 하물며 산드라는 아쉬운 소리를 하며 그들에게 표를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녀의 잘못은 아무것도 없는데, 마치 죄지은 사람이 된 기분, 구걸하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지치고 무너져가는 산드라는 연신 물을 마셔대고, 약을 먹는다. 가끔 숨 쉬기가 힘들어지기까지 한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급기야는 자신을 포기해버리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한다.

살다보면 한 번쯤 산드라나 동료들의 자리에 서게 된다. 살기 위해 남을 떨궈내야 하는 사람, 살다보니 나를 버리게 되는 사람. 그리고 이런 일이 한 번 지나가고 나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깊이 실망하게 된다. 문제는 그 다음, 또 그 상황에 처했을때이다.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은 쉽게 잊혀지고 나의 선택에 변명을 붙여 미화하기란 쉬운 법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머뭇거리는 시간은 짧아지고 마음은 냉담해진다. 그리고 어느 날, 내가 산드라의 자리에 서게 되는 날이 오면 포기 역시 빠르다. 나 자신과 타인의 존엄을 이해하고, 이를 보호하려면 생각보다 더 큰 용기와 에너지가 필요한 것 같이 느껴진다.

 

ⓒ그린나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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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 메마른 고리를 끊는 방법을 보여준다. 좌절하고 낙담하는 것이 수 차례 반복되지만, 그녀를 믿고 지지하는 소수의 동료들과 남편을 통해 그녀는 다음 문을 두드릴 힘을 얻는다. 문 너머의 얼굴이 그녀를 향해 웃을지, 화를 낼지, 아니면 아예 열리지도 않을지 모르지만 그녀는 자신이 동료들과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능력과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믿고 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결과는 정직했다. 정직했기에 더욱 확실한 그녀의 승리였다. 그녀의 성실한 설득은 사람들에게 오롯이 도달했고 거기서 등을 돌린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다들 알듯이, 설득의 첫 번째 단계는 설득을 하는 사람 자신이 그 사실을 완전히 믿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호소에 마음을 여는 사람들을 만나며 점차 자신의 가치와 존엄에 대한 확신을 다진다. 마지막 문을 두드리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그녀는 남편, 동료와 함께 Gloria!를 외치며 함께 노래를 부른다.

 

ⓒ그린나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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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잘 싸웠어, 그렇지?” 

밝게 되묻는 산드라의 모습, 힘차게 발을 옮기는 그녀의 뒷모습은 나에게 완벽한 음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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