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책이나 강의로 인권을 ‘공부’ 해 오셨다면, 극장에 앉아 영화 속에 숨겨진 인권의 이야기를 직접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지난 3월 4일 진행된 <앰네스티 수요극장>의 여섯번째 영화 이다(Ida)에 대한 성준근 회원님의 리뷰를 소개합니다.
*글의 특성상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나’를 찾아 떠난 여행
여행은 떠남과 만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떠난다는 것은 자기만의 공간에서 밖으로 걸어나오는 것이고, 만난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행의 진정한 의미는 떠남이 아니라 돌아옴에 있습니다. 다시 돌아오기 위한 떠남, 앰네스티 수요극장에서 만난 여행 <이다>는 18살 소녀 ‘안나’가 자신의 또 다른 이름 ‘이다’를 찾아 떠난 여행 이야기입니다.
안나는 어린시절 고아가 되어 줄곧 수녀원에서만 자라온, 수녀가 되고자 서원을 앞두고 있는 순수한 소녀입니다. 딱히 지루할 것 없이 당연스레 반복되던 일상을 살던중 유일한 혈육인 이모의 존재를 알게되었고, 이모를 만나기 위해 처음으로 수녀원 밖으로 나오면서 고요한 호수 같던 그녀의 내면에 잔잔한 물결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만나본 이모 완다는 안나가 살아온 환경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자유분방한 사람입니다. 혈육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나 대조적인 두 사람의 첫만남은 어색했고, 안나는 완다로 부터 자신의 부모가 유태인이며, 그녀의 원래 이름은 안나가 아닌 ‘이다’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처음 듣게 된 자신의 정체성에 충격을 받을 만도 하지만, 안나는 담담하게 완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녀의 표정에선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런 그녀의 태도와 표정에서 수녀원의 철저한 규율 아래 자라며 자연스레 수녀의 길로 향하게 되었을 그녀의 지난 삶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안나’에서 ‘이다’로
이제 ‘이다’라는 자신의 진짜 이름은 찾았지만, 그녀의 습관과 내면은 여전히 안나에 머물러있습니다. 그렇게 안나를 벗지 못한 이다는 이모 완다와 함께 부모님의 무덤을 찾아 고향으로 향합니다. 그 여정 속에서 이다는 늘 술과 남자에 젖어 지내는, 있는 그대로의 완다를 보게 됩니다.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완다의 삶에 이다는 답답하기만 합니다. 완다와 작은 실갱이 끝에 방을 나온 이다는 음악 소리에 이끌려 호텔 재즈바를 찾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한 남자, 어쩌면 태어나 처음으로 느꼈을 이성에 대한 감정과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당신은 모르죠?”라고 묻는 그의 한마디 말에 이다의 마음은 동요하는 듯합니다. 방으로 돌아와 항상 머리를 감싸고 있는 수건을 벗고, 단정하게 묶인 머리를 풀어봅니다. 그리고는 가만히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가장 처음 하게 되는 행위가 ‘타자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내가 보는 내모습과 비교하며 ‘나’라는 존재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는 것이죠. 이다는 그제서야 비로소 자신의 내면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는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수소문 끝에 비극적으로 살해된 이야기과 함께 이다의 부모님 그리고 완다가 이다의 부모님에게 맡겼던 자기 아들의 유골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는 묘지에다 고이 묻고서 돌아옵니다. 이다는 다시 수녀원으로, 완다는 쾌락을 즐기며 살아가던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조금은 충격적인 반전이 일어납니다. 겉으로는 강인해 보이지만 내면의 슬픔과 고통을 짊어지고 굴곡 많은 인생을 살아온 완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만것입니다. 수녀원에서 서원식을 앞두고 있던 이다는 이모 완다의 집을 찾아갑니다. 주인이 떠나고 없는 텅빈 집에서 이다는 완다가 입었던 옷을 입어 보고 구두를 신어 봅니다. 생전에 완다가 그랬듯 담배를 피고 술도 마셔봅니다. 그렇게 이다는 완다가 자신의 곁을 영영 떠나고 나서야 그녀를 조금씩 이해해 가기 시작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재즈바의 남자를 찾아가 처음으로 격정적인 사랑을 나눕니다. 이어지는 둘의 대화가 많은 여운을 남깁니다. 함께 가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집도 구하자고 말하는 남자에게 이다는 그 다음엔 무얼 할거냐고 되묻습니다. 남자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합니다. 그냥 그렇게 살겠지. 이다에게 있어서 이전에는 알지도 상상할 수도 없었던 삶, 알게된 이후로는 어쩌면 경멸했을 그런 삶. 이모 완다를 따라 그 모든 삶을 경험하고서 이다는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산다는 거 별거 아니구나, 그냥 이렇게 살아가는 거구나.
다시 길 위에서
이다가 다시 수녀복을 차려 입고 길을 나서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주인공을 따라서 공간을 이동해가는 로드무비의 형식이지만, 지금까지 시종일관 고정된 카메라로 정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던 것과는 달리, 이다가 뚜벅뚜벅 거침없이 길을 걸어가는 이 마지막 장면에서는 생동감이 넘쳐납니다. 이다의 새로운 출발을 반기는 무언의 춤사위가 아닐까 하고 즐거운 상상을 해봅니다. 이다의 표정과 눈빛에서도 이전과는 달리 어떤 확신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다시 수녀복을 입은 모습에서 수녀원으로 돌아가는 듯 보이지만, 이제 그녀가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 가슴에서 나온 물음들도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진짜 ‘나’는 누구일까? 안나일까 아니면 이다일까? 나다운 삶이란 뭘까? 나는 진짜 내 삶을 살아내고 있는 걸까? 삶에 필연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온갖 고통들을 애써 외면한 채 나만의 성 안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훌륭한 삶, 괜찮은 삶에 대해서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스스로 선택하고 걸어간 것이라면 어떤 삶이든 멋진 삶이 아닐까, 아무리 빛나고 화려해 보여도 스스로 만들어낸 삶이 아니라면 결코 훌륭한 삶은 될 수 없지 않을까. 저마다 자신의 삶이 가지는 의미는 다를 수 있기에 인생에 정답이란 없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삶을 진짜 나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깊고 까만 눈동자와 함께 했던 여행이 긴긴 여운을 남길 것 같습니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위에서, 손에 쥐여진 조그만 희망 한줌이 참 고맙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