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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에 대한 이유있는 반대① 세계 최장기 사형수, 하카마다 이와오

“그녀의 굳건한 신뢰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었다”

하카마다 이와오(Hakamada Iwao)는 1968년 자신이 일하던 공장주 일가족 4명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고문에 의해 강요된 진술과 불공정한 재판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전 세계에서 최장기 사형수로 복역했던 그는 2014년 재심이 결정되면서 48년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3월 27일 오늘은 그가 풀려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삶을 이어가던 하카마다 이와오의 석방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한 그의 누나 히데코(Hideko)와 전세계에서 그를 지지해온 수천에 이르는 지지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지난 2014년 5월 19일 동일본권투협회는 '권투의날' 행사로 하카마다 이와오에게 명예챔피온벨트를 증정했다 왼쪽에는 그의 누나 히데코 하카마다 © Amnesty International

지난 2014년 5월 19일 동일본권투협회는 ‘권투의날’ 행사로 하카마다 이와오에게 명예챔피온벨트를 증정했다 왼쪽에는 그의 누나 히데코 하카마다 © Amnesty International

하카마다 이와오는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오늘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40년을 견뎌왔다. 그리고 마침내 2014년 3월 27일이 왔다. 그는 죽음 대신 자유를 찾아 밖으로 걸어나올 수 있었다. 48년만에 집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권투선수시절, 건강한 모습의 하카마다 이와오 © Private

권투선수시절, 건강한 모습의 하카마다 이와오 © Private

비록 임시석방이지만, 그가 풀려났다는 사실은 수백, 수천에 달하는 그의 지지자들의 승리이다. 하카마다에게는 영국 배우 제레미 아이언스와 같이 유명한 지지자들이 다수 있다. 그들 모두 그에 대한 사형선고는 불공정했다며 석방을 요구했지만, 그의 누나 히데코가 없었다면 누구도 그에 대한 진실을 전해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프로권투선수였던 하카마다가 처음 체포된 1966년, 히데코는 그의 무죄를 믿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처음 10년동안은 단 한 명도 제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어요. 외롭고 고립됐었죠”라고 회상했다. 이어 “모두가 저를 불신했고, 심지어 하카마다가 무죄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도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1968년 하카마다는 폭행과 협박에 못 이겨 강제로 자백한 후 사형선고를 받았다. 일본 언론은 그가 권투선수라는 이유로 그를 폭력적인 범죄자로 그려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히데코는 천천히 주변의 지지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단 한 명 그녀만은 믿었다

야마자키 토시키(Yamazaki Toshiki)는 그의 지지자 중 한명이다. 그는 1981년 11월 하카마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몇 달만에 그가 체포됐던 시미주(Shimizu)시에서 지지단체를 결성하여 그를 돕기 시작했다.

“하카마다를 지지하기 시작하면서 히데코를 알게 됐어요. 그녀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얼마나 강인한지를 알면 깜짝 놀랄 거예요. 하카마다에 대한 그녀의 믿음은 그 무엇도 바꿀 수 없었죠. 저는 단지 그녀를 도와 캠페인을 진행한 것뿐이에요.”

히데코와 하카마다 캠페인을 34년간 벌여온 야마자키 토시키와 함께 한 하카마다 © Amnesty International

히데코와 하카마다 캠페인을 34년간 벌여온 야마자키 토시키와 함께 © Amnesty International

토시키는 하카마다의 사형선고가 확정된 1980년 이후 그를 방문한 몇 안 되는 사람이다. 그러나 하카마다가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면서 심지어 히데코의 면회조차 거부하기 시작했다. 토시키는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면회를 갔어요. 하카마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며 당신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밖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였죠. 카드와 사진, 하카마다의 이야기를 다룬 신문 기사도 보냈어요”라고 말했다.

세계로 확산된 연대의 물결

하카마다가 석방되자, 7상자의 편지가 그의 집으로 날아왔다. 앰네스티의 많은 지지자들로부터 도착한 이 편지들은 수년간 지속된 캠페인과 연대행동의 산물이었다. 하카마다 캠페인을 이끈 와카바야시 히데키(Wakabayashi Hideki) 국제앰네스티 일본지국장은 “매일 세계 각지에서 하카마다가 구금된 교도소로 편지가 도착했어요”라고 말했다.

앰네스티 회원들은 198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캠페인에 동참했다. 독일에서 온 한스 에어트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는 1999년 처음 하카마다에 대해 듣고 편지를 쓰고, 진정을 넣고, 언론에 알리는 일을 반복해서 동참해왔다.

‘도노스티아 산 세바스치앙(Donastia/San Sebastian)’이라는 스페인 단체에서는 약 4만8,000통에 달하는 편지를 썼다. 냑 헤르난도 리랴냐가(Naki Hernando Larranaga) 코디네이터는 하카마다가 마치 할아버지와 같이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공경의 마음이 생겨 많은 사람들이 지지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대한 체계적으로 움직이려고 노력했어요. 100명의 사람들을 네트워크화하여 매달 편지를 쓰도록 했죠.”

마드리드에 위치한 일본대사관에서 하카마다 석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모습 © AI Spain

마드리드에 위치한 일본대사관에서 하카마다 석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모습 © AI Spain

이겼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카마다가 석방된 2014년 3월 전세계의 지지자들은 자축했다. 앰네스티 런던 그룹의 길(Gill)은 “하지만 검찰이 지방법원의 판결에 항소하면서 이번 석방은 한시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긴 시간 동안-상당 시간동안 독방에 구금돼 있었다- 하카마다의 정신세계는 무너졌다. 히데코는 하카마다는 자신이 이겼고,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하고 있는 일은 반복해서 방안을 걸어 다니는 것과 잠시 쉬는 것이 전부예요. 교도소와 다를 바가 없어요. 신문을 읽지도, TV를 보지도 않아요. 그가 회복되는 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할 듯합니다.”

81세의 히데코는 삶을 통틀어 동생의 석방을 위해 싸웠다. 이제 그녀는 그녀를 더 이상 알아보지 못하는 동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그녀와 동생 사이에 존재하는 끈끈한 연결고리는 끊기지 않았다.

“지난 15년동안은 하카마다가 면회를 거부하는 바람에 동생을 거의 보지 못했어요. 48년을 떨어져있었지만 그는 아직까지 나의 동생 이와오로 남아있습니다.”

국제앰네스티 사형제도 폐지 캠페인 "상상해보세요. 45년간 사형수로 산다는 것, 심지어 당신이 무죄라고 믿는 판사가 당신을 그곳에 집어 넣었다는 사실을"

국제앰네스티 사형제도 폐지 캠페인 “상상해보세요. 45년간 사형수로 산다는 것, 심지어 당신이 무죄라고 믿는 판사가 당신을 그곳에 집어 넣었다는 사실을”

 

※이 글은 국제앰네스티 계간지 ‘WIRE’에 실린 글입니다.

① 세계 최장기 사형수, 하카마다 이와오

② 세계가 기억하는 사형수

③ 교수대로부터의 탈출 “나는 아직도 꿈을 꾸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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