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먼저 생각할 것
인터섹스로 태어난 아이들
딸이야, 아들이야?
사람들은 부모에게 가장 먼저 이렇게 물어보곤 한다. 세상이 남자와 여자라는 두 가지 집단으로만 나뉘어 있으며, 모든 사람의 생물학적, 유전적 특징이 그 두 가지 분류에 딱 맞게 해당할 것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 질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생각보다 훨씬 더 많다. 매년 세계에서 약 1.7%의 신생아가 변이된 성적 특징을 갖고 태어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바로 인터섹스(intersex, 간성)이다.
변이는 매우 다양한데, 예를 들면 성기가 일반적인 기준을 벗어나거나, 여성의 신체에 XY(남성) 염색체, 또는 남성의 신체에 XX(여성) 염색체를 가진 경우도 있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 중 많은 수는 ‘정상화’ 수술을 받는다. 응급상황도 아니고, 되돌릴 수도 없는 외과적 수술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받는 것이다.
아이들은 수술 당시에는 너무 어리기 때문에 동의할 수 없고, 부모는 아이에게 무엇이 최선인지를 잘 알고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적절한 정보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관행은 중대한 인권 침해이다.
의사는 내 몸 구석구석에 난 상처가 어렸을 때 받은 수술 흔적이라고 말했다.
나에게 벌어진 일에 대해 화가 난다.
내가 직접 결정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어야 했다.덴마크의 디테(Ditte) / ⓒ Getty Images

INTER*SHADE ⓒ Alex Jürgen
젠더란 이분법적인가, 스펙트럼인가?
인터섹스(intersex, 간성)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전형적인 이분법에 해당하지 않는 성징을 지닌 다양한 사람들을 일컫는 포괄적인 용어다. 이러한 변이 성징을 지닌 사람 중에는 자신을 인터섹스라고 가리키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인터섹스는 내·외부 생식기나 재생산 구조, 호르몬 수준, 성염색체 등 1차 성징에서 보이는 차이도 포함된다. 이러한 변이는 2차 성징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데, 사춘기에 더욱 뚜렷해진다.
인터섹스는 생물학적 특징으로, 성 정체성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적 지향 역시 해당하지 않는다. 인터섹스인 사람이 여러 성적 지향을 가질 수도 있다.

디테, 덴마크의 인터섹스 활동가 ⓒ Amnesty International Denmark
디테Ditte의 이야기
나는 1962년에 태어났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다른 남자아이들과 똑같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25세가 되면서 이 점을 어떻게든 해결해야겠다고 결심했고, 몇 년에 걸쳐 여러 차례 피검사를 받았지만, 의사들은 한결같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39세 때 만난 한 의사는 내 몸의 상처들이 어린 시절 외과수술을 받은 흔적이라고 말했다.
부모님 두 분이 모두 돌아가신 뒤,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이복형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복형은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나를 가리켜 “자연이 실수한 것”이라며 “두 가지 성을 모두 갖고 태어났다”고 설명하셨다고 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의료기록을 볼 권리가 있다. 나는 내게 벌어진 일에 대한 정보를 정부에 요구했지만, 내 인생의 첫 10년은 의료기록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정부는 등록된 내 성별을 받아들이고, 성전환 수술을 신청하라고 말했다.
나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후 정신 장애가 있다고 낙인이 찍혀 직장을 잃었다. 정부는 여전히 나를 트랜스젠더로 분류하고 있다. 나에게 벌어진 일에 대해 화가 난다. 충분한 정보와 상담을 바탕으로 내가 직접 결정할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될 때까지 기다렸어야 했다.
나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불과 2년 전으로, 지금도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든 상태다. 열한 살까지의 기억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내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지 알아내려 노력하고 있다. 다섯 살 때 고환을 제거하는 수술을 비롯해 생식기 관련 수술 여러 번 받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내가 괴물이라고 생각했다.
남자와 성관계를 하는 것이 고통스러웠지만 원래 그런 거라 생각했다. 여성으로서 해야 할 역할을 강요받으며, 치마를 입고, 머리를 길러야 했다. 지난 34년의 인생은 비참했다.
이러한 수술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의사는 부모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의사는 아이가 정상이고 건강하게 자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있다’며 수술로 고칠 수 있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세 번째 성별도 존재한다. 내 인생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런 수술이 다른 아이들에게 이루어지는 것만은 정말로 막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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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위한 지원 부족
최근 국제앰네스티가 독일과 덴마크를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 결과, 변이 성징을 갖고 태어난 사람 중 많은 수가 수술에 동의하기에는 너무 어린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유아기와 아동기에 외형 성별을 ‘정상화’하는 수술을 받았다.
아이들의 수술 여부를 결정할 책임은 부모에게 돌아가는데, 부모도 충분히 잘 알고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만큼 적절한 정보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는 자녀가 앞으로 겪을 심리적 문제나 괴롭힘 당할 것을 걱정하며 남자 또는 여자라는 규격에 ‘맞춰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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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명의 아이들이 되돌릴 수 없는 외과 수술을 받는다. 이는 자신의 몸과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받으며, 신체적 존엄성과 정체성을 결정할 권리, 사생활의 권리, 최상의 건강을 유지할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다.
부모는 자녀에게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 충분한 정보와 지원을 받아야 하고, 사회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모습이 아니라 무엇이 아이들에게 최선인가를 바탕으로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한다.

스테파니 스틴 토프트, 덴마크의 인터섹스 활동가 ⓒ Amnesty International Denmark
스테파니 스틴 토프트Stephanie Stine Toft의 이야기
어린 시절에는 여자아이로 보이던 내 몸은 십 대가 되자 남성과 여성의 특징이 모두 나타났다. 키가 훌쩍 자라는 동시에 가슴도 더 커졌다. 나는 내 몸을 숨기려고 애쓰며 고무밴드로 가슴을 묶고 다녔다. 가슴을 지방으로 보이게 하려고 살을 찌우기도 했다.
한번은 부모님이 안 계실 때 [성기를] 잘라내려고 했지만, 직전에 멈추고 말았다. 과다출혈로 죽을까 봐 걱정됐던 것이다. 내키진 않았지만 나는 최대한 남자처럼 보이게 하고 다녀야겠다고 다짐했고, 그것은 17세가 되자 수염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훨씬 수월해졌다. 나는 더 이상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지 않았다.
21세쯤 되었을 때, 결국 신경쇠약에 시달렸다. 성과학 전문 병원으로 보내 달라고 요청했지만 의사는 정신과 검진을 받게 했다. 일 년 후 정신과 치료를 그만두기로 했고 의사는 나를 성과학 전문병원으로 보내줬지만 결국은 내가 트랜스젠더 진단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 뒤로 1년에서 1년 반 정도를 시설에서 보냈다. 얼마 후 당시 여자친구와 함께 동거를 시작했지만, 결국 그녀에게 보통의 가정적인 남편으로 사는 건 불가능하다고 털어놓았다. 우리는 헤어졌고, 친구로 남았다.
내분비 전문의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 억제제로 치료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의견을 나눴다. 그가 제안한 유일한 방법은 ‘어엿한 남자가 되도록’ 테스토스테론을 투여하고 가슴을 절제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5년 전의 일이었다. 지금은 다시 공공 의료제도를 통해 지원을 받으려 노력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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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적으로 불필요한 일
앰네스티와 인터뷰한 대부분이 어린 시절 받았던 수술이 응급하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여자아이나 남자아이처럼 ‘보여야 할’ 일반적인 기준에 따르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수술로 인한 결과는 가벼운 것이 아니다. 앰네스티와 인터뷰한 사람 중 다수가 자신의 건강과 성생활, 심리적 안정, 성 정체성에 계속해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고, 당사자의 동의도 없이 진행된 수술은 신체가 훼손되지 않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특히 심각한 불임을 초래해 건강권과 성과 재생산권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의사들은 자신이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를 사회에 더 잘 어울리게 했다고요.
그 수술이 몸을 해치는 것 이상으로 심한 일이라는 걸 모르는 거예요.안조, 독일의 활동가 / ⓒ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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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피Steffi의 이야기
올해 40세인 나는 ‘애매한’ 상태로 태어났다. 나에 대한 진단을 우연히 알게 된 건 열한 살 때였다. 정기 건강 검진에서 ‘난소 제거 후 무사히 완전히 치유됨’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후 어머니와의 대화는 충격적이었고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내 자궁은 남아있어야 했지만, 이미 제거된 상태였다. “이 약을 먹으면 더 여자답게 될 거야”라는 말만 들었다. 의사는 내 상태가 너무나 희귀한 경우이기 때문에 다른 비슷한 사례를 찾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28세가 될 때까지 나는 모든 것을 억누르고 행복한 소녀, 행복한 여자를 연기했다. 내 속이 어떤 모습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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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립 모임을 통해 교육을 받게 됐다. 다른 사람들이 비슷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접하는 것은 내게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되었다.
나는 중증 장애인으로 분류되어 있다. 지난 12년 동안 내분비계 치료를 받았다. 2011년에는 보상 요구를 거부당한 데 대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나에게 수술을 한] 전문가가 이미 ‘타당한 진단’을 내렸다며 마찬가지로 기각했다.
충격적인 판결이었다. 사법제도에 버림받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전문가 의견에 대한 부분을 판례로 남겨두고 싶지 않기 때문에 항소해야만 한다. 어떤 결과가 벌어질지는 전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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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하지 않는 것에 대한 효과
지금까지의 조사는 치료를 받지 않은 사람들보다 어린이 또는 청소년기에 ‘이미’ 수술이나 치료를 받은 경우에 주로 집중되었다. 그러므로 수술을 진행한 사람들에 대한 조사 결과는 불만족이 대부분인 반면, 수술을 받지 않은 경우에 대한 증거는 대체로 입증되지 않았다.
독일의 의사 M은 수술을 받지 않은 노년의 인터섹스 환자 여러 명을 치료해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수술을 받지 않은 것이 화가 난다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자신이 다른 남자아이들과 소변을 누는 방식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지만, 그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고 해요.”

인터섹스(intersex, 간성)을 상징하는 로고
활동가들 역시 부모가 수술 여부에 대한 결정을 미루고 있을 때, 아이들에게서 긍정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수술이나 치료를 하지 않은 것이 미치는 영향을 입증할만한 장기적인 연구는 부족한 상태다. 치료를 받지 않은 사람들의 삶의 질과 개인의 건강을 평가하는 것이 수술의 가치를 평가하는 주요 요소가 되어야 한다.
목소리를 내다
1990년대, 변이 성징 때문에 수술을 받아야 했던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정상화’ 치료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으며, ‘인터섹스(intersex, 간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널리 알렸다.
그 이후로 시민단체와 활동가 그룹, 인권 옹호자들과 지지단체들은 이 문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러한 옹호 활동과 인식 제고 노력으로 인터섹스의 인권 문제는 12개 유엔 기구의 선언문에 포함되었다. 이 선언문에서는 세계 각국에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인터섹스인 사람들에 대한 폭력과 차별을 종식할 것을 촉구하고 ‘인터섹스 어린이의 동의 없이 불필요한 수술과 치료가 이루어지는’ 관행에 대해 강조했다.

ⓒ Alex Jürgen
현재에 도전하다
이제 우리는 성과 젠더에 대해 더 자세히 이해하고, 모든 사람이 항상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기준에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이분법적 기준에 맞추기 위해 어린이에게 고통스럽고, 때로는 해롭기까지 한 수술을 하는 관행을 내버려 두어서는 안된다.
모든 의사결정은 때에 따라 알맞게 이루어져야 한다. 순수하게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수술이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인터섹스인 사람들도 자신의 신체에 대해 잘 알고 결정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
저는 이미 여러 차례 수술을 집도했습니다.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죠.
하지만 제가 이대로 침묵한다면 이러한 수술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일 겁니다.
제가 목소리를 내야만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있어요.독일의 의사 D, 5차례의 성기 수술을 집도함 / ⓒ Getty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