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하마드 알리는 링 위에서의 챔피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가장 중요한 싸움은 링 밖에서 정의와 평등, 인류애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무하마드 알리는 1942년에 캐시어스 클레이(Cassius Clay)라는 이름으로 태어났고, 부모님은 남북전쟁 이전 노예의 자손이자 노동자계급이었습니다.
인종적으로 분리된 켄터키주에서 식당과 대기실의 문, 식수대에서 “백인만 이용(White Only)”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었고, 알리는 여기서 그의 삶에서 계속될 구조적인 부정의에 대해 깨달았습니다. 알리는 이런 기억을 바탕으로 솔직하게, 때로는 공격적일 만큼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기 거부했습니다.
알리는 1964년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서 소니 리스튼을 이긴 직후, 미국사회를 양분화시키는 배척주의와 “흑인 분리주의”에 반대하는 흑인 무슬림 단체, ‘네이션 오브 이슬람(Nation of Islam)’에 가입했습니다. 알리는 1966년 베트남전쟁에 징집됐을 때 종교적 신념과 여전히 제도적으로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국가를 위해 싸우기는 것에 대한 반감으로 갖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유창한 연설을 하며 이를 거부했습니다.
루이빌의 흑인들은 개처럼 취급받고 기본적인 인권도 누리지 못하고 있는데 왜 그들은 나에게 고향에서 1만 마일이나 떨어진 곳으로 가서 베트남에 사는 갈색 인종들에게 폭탄을 떨어뜨리고 총알을 쏘라고 하는가?”
알리는 챔피언십을 박탈당하고, ‘징병회피’로 기소당해 1만 달러의 벌금형에 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가 3년이 지난 후에야 유죄가 뒤집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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