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산탄, 국민연금, 그리고 당신
박승호(무기제로)
2008년 1월 11일, 노르웨이 재무부는 다소 특이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보도자료를 배포한다. 자국이 운영 중인 국영연금기금이 한국의 대표적인 방산업체인 한화에 대한 투자를 철회한다는 내용이었다. 보도자료에는 한화가 확산탄을 생산해 중요한 인권원칙을 위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배경이 쓰여있었다. 도대체 확산탄이 무엇이길래 노르웨이 연기금이 이 무기를 만든다는 이유만으로 투자를 철회했을까?
확산탄(Cluster Munitions)은 하나의 커다란 모탄(母彈) 속에 수십, 수백 개의 작은 폭탄을 담고 있는 일종의 다발 폭탄이다. 확산탄은 공중에서 투하되거나 지상에 발사되고 난 후 공중에서 수십, 수백 개의 자탄(子彈)을 넓은 지역에 흩뿌린다. 흩뿌려진 하나하나의 작은 폭탄들은 지상 인근에서 수류탄과 같이 터지면서 대상 지역을 초토화 시킨다. 단 한 발로 축구장 3~4개에 해당하는 지역을 초토화시킬 수 있다고 한국군이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다연장로켓포는 확산탄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무기체계라고 할 수 있다. 한방에 적이 포진하고 있는 지역을 초토화시킬 수 있다니 군사적으로는 아주 효율적인 무기이지 않은가? 걸프전 당시 확산탄 공격을 받은 이라크 병사가 “강철비가 내린다”며 두려움에 떨었다는 일화는 확산탄의 ‘놀라운 성능’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런데 이렇게나 효율적인 무기인 확산탄이 2008년 8월 1일을 기해 국제적으로 불법화된다. 현재 가입・비준국이 112개국에 달하는 확산탄금지협약(Convention on Cluster Munitions)의 발효 때문인데, 이 협약은 확산탄을 대표적인 비인도무기로 규정하고 이 무기의 생산, 사용, 비축, 이전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한국은 이 협약에 가입하지 않았다) 이유는 바로 한방에 광범위한 지역을 초토화시킨다는 그 효율성 때문이었다. 넓은 지역을 일거에 초토화 시킨다는 것은 그 지역에 있는 군사표적과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고 파괴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국제인도법이 명백히 금지하는 민간인과 군사표적을 구별하지 않는 ’무차별적 공격’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확산탄이 금지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불발탄 문제다. 확산탄이 사용될 때 흩뿌려진 자탄 중 일부는 터지지 않고 불발탄이 되어 땅에 떨어지게 되는데, 이 불발탄은 나중에 언제든지 충격을 받으면 다시 터지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확산탄 불발탄은 분쟁이 종결되더라도 오랫동안 남아서 그 지역을 황폐화 시키고 지속적으로 피해자를 발생시킨다. 40년전 미군이 엄청난 확산탄을 퍼부은 라오스에서는 아직도 매년 평균 300여명이 불발탄 사고로 사망하고 있다는 사실은 확산탄 불발탄 문제를 아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핸디캡인터내셔널의 통계에 따르면 확산탄 피해자 중 98%가 민간인이고 이 중 1/3은 아이들이라고 하니, 이쯤되면 왜 전 세계 112개국이 확산탄을 전면 불법화시켰는지, 왜 노르웨이 연기금이 확산탄을 생산하는 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한화를 투자금지 대상으로 못박았는지가 이해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대표적 비인도무기로 규정되어 국제법에 의해 금지된 확산탄이 바로 우리들의 재정적 지원을 통해서 생산되고 있다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IKV 팍스 크리스티가 2012년 6월 발표한 보고서 「확산탄 세계투자: 공동의 책임」에는 세계 8대 확산탄 생산기업과 그 기업에 투자하는 금융기관들의 명단이 공개되어 있는데, 보고서에 다뤄진 세계 8대 확산탄 생산기업 중에는 한국의 방산업체인 한화와 풍산이 ‘자랑스레’ 그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이 두 기업의 최대 투자자로 한화 주식의 7.17%, 풍산 주식의 8.2%를 보유하고 있다. 우리가 꼬박꼬박 낸 연금보험료 중 일부가 확산탄을 생산하는 이 두 기업에 투자되고 있었던 것이다.
국민연금은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 만들어진 사회적 보험이다. 그런데, 그 국민연금이 누군가의 삶을 아주 앗아버릴, 누군가의 삶의 터전을 초토화시킬 무기를 만드는 데 투자된다는 것은 뭔가 모순이 아닌가? 혹자는 안정적 연금 지급을 위해서는 국민연금이 냉정하게 수익률을 고려해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수익률이라는 미명이 투자의 비윤리성을 감춰주지는 않는다. 국민연금은 한국 최대 공적기금으로 그 투자는 영향력과 사회적 책임을 고려해 신중히 이루어져야 한다. 어떤 기업에 투자한다는 것은 결국 그 기업의 활동(확산탄 생산)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안정적인 노후를 보장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국민연금이 누군가의 삶을 산산조각 낼 무차별 살상무기를 만드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으로 재원을 마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피 묻은 돈으로 나의 행복한 미래를 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 당신도 나와 같은 생각이라면, 지금이라도 1355번(국민연금 대표번호)으로 전화를 걸어 확산탄 생산기업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고 비인도무기 생산기업에 대한 투자금지 원칙을 만들라고 요구해 보는 것은 어떨까?
앰네스티 웹사이트에서 확산탄에 대해 더 알아보세요
http://amnesty.presscat.kr/확산탄
* 이 글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회원소식지 <Amnesty Magazine> 2013년 003호 칼럼에 실린 글으로서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